플래티넘 엔드 8
오바 츠쿠미 지음, 오바타 타케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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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계를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긴 세월에 걸쳐 모든 노력을 다해 왔다. 하지만 이제 때가 왔다. 신의 자리를 다음 인간에게… 젊은 힘에게 맡길 것이다. 관례대로, 너희 열세 천사가 선택한 열세 명 중에서 다음 신을 정하도록 해라. 선택한 인간이 신이 됐을 때는 천사의 업을 끝내고 그 신의 곁에서 평온한 삶을 보낼 수 있다.

신의 세대교체

일단, 신이 존재한다. 기독교, 이슬람교같은 유대교 계열에서 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인지,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해탈한 부처같은 존재인지, 그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인간과 부대끼며 사는 신인지는 알 수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신이 교체될 때가 왔고, 자신이 선발되었을 때처럼 선택된 열세 명의 인간 중에서 신에 '어울리는' 사람이 차세대 신으로 '뽑히게' 된다. 신의 명령을 받은 열세 마리의 천사는 절망에 의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들 중에서 열세 명의 후보를 정한다.


특급 천사인 나세가 선택한 신 후보는 학교의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려고 하던 카케하시 미라이. 일곱 살에 가족을 잃고 이모의 집에 얹혀 살면서 학교에서는 이지메를 당하는 희망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뜻밖에 신이 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지만 죽으려고 했던 사람에게 그런 의지는 없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날개와 빨간 화살, 하얀 화살을 받고 자동적으로 신 후보가 된다. 후보는 되었지만 신이 되려는 의지는 약하다. 단지, 신의 도구를 버리는 순간 자신의 목숨도 끊어지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도구를 버리지는 못한다. 어차피 죽으려고 했었는데, 이제와서 죽는게 두려운 건 이상하다든지 하는 생각은 그냥 잊어버리자.

 


<플래티넘 엔드>에 등장하는 천사는 자살하려던 사람에게 붙어서 그 사람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천사끼리는 사이가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여성형 신과 남성형 신이 있으며, 특급, 1급, 2급으로 나뉜다.


<데스노트>의 설정을 비틀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관

<데스노트>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이후 <바쿠만>을 함께 만든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다케시 콤비의 신작이다. 신작이라고 하기엔 벌써 8권까지 정식 발매되었으니 꽤 오래된 작품인데, 내가 최근에 만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아서 이런 작품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플래티넘 엔드>는 <데스노트>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바로 알 수 있을만큼 설정이 <데스노트>와 많이 닮았다. 닮긴 했는데 <데스노트>를 묘하게 비틀어 놓았다.

<데스노트>의 사신은 <플래티넘 엔드>에서는 천사로 바뀌었다. 사신은 보통 생각하기에 악한 존재이지만 인간에게 딱히 피해를 입히지 않는 반면, 천사는 선한 존재이지만 인간에게 피해를 입힌다. 둘다 인간은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특정한 조건이 선행되어야 볼 수 있다. 신 후보들은 서로 정확한 정체를 모른다.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면 생명을 잃을 수 있고, 상대방의 정체를 알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데스노트에 게임의 룰이 있듯이, 신이 되는 게임의 룰도 존재한다. 게다가 그 룰은 빈틈이 있어서 빈틈을 노려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가할 수 있다. 결국 룰을 숙지하고 그 룰에 따라 전략을 만들어 내야 한다. 사신이든 천사든 그 룰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룰을 해석해 주는 룰 마스터가 존재한다.

 


빨간 화살에 찔린 사람은 화살을 찌른 사람을 33일 동안 사랑하게 된다. 사키는 미라이를 만나자마자 빨간 화살로 미라이를 찔러서 자신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미라이는 원래 사키를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33일이 지난 후에도 둘은 동맹을 이어간다. 하얀 화살을 줄 수 없는 1급 이하의 천사들이 선택한 후보들은 다른 후보를 만나자 마자 빨간 화살을 맞춰서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공격수단이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 신 선발전

미라이가 어정쩡하게 지내는 동안 또다른 후보인 개그맨 로드리게스 토마가 빨간 화살의 능력을 이용해 유명 여성 다섯 명과 동시에 연애를 하는 것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 진다. 로드리게스 토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천사를 보고 후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챈다. 신이고 뭐고 욕망에 충실한 '솔직한' 사람이다. 그런데 매스컴을 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명의 여자와 욕망을 채우던 로드리게스 토마가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토마를 죽인 범인은 후보자와 천사만이 알 수 있는데 그 정체는 메트로폴리맨. 메트로폴리맨은 본심을 숨기고 도시의 범죄자들을 응징하면서 영웅이 되고, 방송에서 후보들만이 알 수 있는 말로 다른 후보들에게 모여서 '대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 대화는 사실은 후보들을 모아 모두 죽이려는 메트로폴리맨의 계략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분명히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신으로 '뽑히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신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한 기준점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 기준이 차차 밝혀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런 기준은 필요가 없었다. 신이 되기 위해서 다른 후보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미친 놈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다른 후보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신을 뽑는 과정이 악마를 뽑는 과정이라고 해도 별반 거부감이 없을 정도이다. 결국 <플래티넘 엔드>의 후보들의 목표는 <데스노트>의 두 주인공처럼 주어진 룰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 빈틈을 찾아내서 적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 적을 죽이는 것이다. <데스노트>는 일대일의 대결이었고, <플래티넘 엔드>는 열세 명의 참가자가 있는 배틀로얄이라는 것이 다른 점일 뿐이다.

 


<플래티넘 엔드>는 여러모로 <데스노트>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작품 속의 초월적 존재인 천사는 사신의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존재이다. <플래티넘 엔드>에서는 선할 것 같은 천사가 아름답지만 굉장히 잔혹하게 묘사되는데, <데스노트>에서 사악할 것 같은 사신은 흉악하게 생겼지만 굉장히 정감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던 점에서 정확하게 대비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과 최고의 작화

전체적으로 <데스노트>와 비슷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데스노트>가 첫 화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이후 데스노트라는 아이템은 일반명사처럼 사용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플래티넘 엔드>에 나오는 하얀화살, 빨간화살, 날개 역시 데스노트만큼이나 이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이템들이지만 데스노트에 비해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 같다. 아이템의 매력이 좀 떨어지기도 하고 단 하나의 절대적인 존재였던 데스노트에 비해서 세 개나 되어서 아이템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설정 자체는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데스노트>에서도 그렇지만 <플래티넘 엔드>에서도 굉장히 전략적인 수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하지만 굉장히 유치한 점이 함께 보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안티히어로의 이름이 '메트로폴리맨'이다. 처음 나왔을 때,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그걸 또 진지한 척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오바 츠구미의 뻔뻔스러움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유아적인 상상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려내고 그 속에 복잡한 룰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진지하게 목숨까지 걸고 경쟁하는 인물들을 볼 수 있는 언밸런스한 재미가 있다.


오바타 다케시가 그린 작화는 최상이다. <고스트 바둑왕>을 처음 시작할 때 뭉툭했던 선들이 작품 후반부에 굉장히 가늘어 지면서 섬세해 지더니 <데스노트>에서 최고를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플래티넘 엔드>에서는 선은 더 날카롭고 섬세해졌다. 게다가 사신이 아닌 천사를 페이지마다 그려대니 아름다움이 더 극대화되기도 했다. 만화책을 사는 걸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바타 다케시의 작품은 내용 때문이 아니라 작화 때문에라도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데스노트>는 글을 읽으면서 설정에 맞춰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그림도 자세히 보면서 봤기 때문에 만화책치고는 읽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는데, <플래티넘 엔드>도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이다.

 


미라이는 '미래'라는 희망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고, 천사도 감탄할 정도로 살인을 하지 않으며, 특급천사가 붙어 있다는 점에서 (주인공이기도 하고..) 신에 가장 가까운 후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점이 있어 보여서 때로는 단호한 결정을 해야 하는 절대자에 딱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좋은 것과 그 좋은 사람이 좋은 신이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8권을 끝으로 미라이의 최대의 적이자 안티히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메트로폴리맨이 죽었다. <데스노트>에서 L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메트로폴리맨의 모든 자산은 다른 꼬마에게 넘어갔다. 이제 새로운 경쟁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리고 열세 명의 후보 중에 일곱 명이 죽고 여섯 명만이 남았다. 여섯 명에 붙어 있던 천사 여섯 마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신 후보가 '절반 밑으로 떨어지면' 남은 후보의 천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이 상례인 것 같다. 이 회의에서 신을 정하는 새로운 룰이 발표될 것 같다. 결정적으로 단 세 마리밖에 없는 특급 천사 중에 아직 두 마리의 천사만이 등장했다. 세 번째 특급천사가 붙어 있는 새로운 인물이 언제 등장할지도 포인트.


<데스노트>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단, <데스노트>에 비해서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폭력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초반에는 성적인 면도 꽤 나온다. 그런데 전략적인 수싸움도 살펴 보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좀 머리를 굴리면서 봐야 한다. 만화책 보면서까지 머리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좋아하기 힘들어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플래티넘 엔드>와 <데스노트>의 세계관을 합쳐서 작품을 하나 만든다면 굉장히 흥미진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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