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이야기 1~11 세트 - 전11권 춘추전국이야기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동북아 역사의 출발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역사를 읽기 시작할까? 나는 어릴 때 그리스 로마신화를 처음 읽고나서부터 각 나라의 신화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각 나라의 신화를 읽다 보니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직도 초등학교 때 처음 그리스신화를 읽고서,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 준 벌로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면서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는 것을 상상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결국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신화를 읽으면서부터였다. 거창할 것도 별로 없다. 그저 옛날 얘기 읽듯이 역사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사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읽다 보니 처음부터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단계에서 역사를 여러 문명권별로 나눠서 초기 역사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 읽기 시작한 것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 중국의 역사였다. (이상하게 인도의 고대사는 크게 관심이 끌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화가 너무 복잡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네 지역의 역사 중에서 아무래도 제일 늦지만 우리나라와 가장 연관이 있는 중국의 역사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고, 귀동냥으로 들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가장 쉽기도 했다. 중국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읽어 왔지만 아무래도 지식은 파편화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춘추전국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한나라 이전 중국고대사를 총정리할 수 있는 책이었다.

 


공원국. 서울대 동양사학과 및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 현재 중국 푸단 대학에서 인류학 공부중.


자세하고 또 자세하다


저자인 공원국은 중국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학자이며, 지금도 중국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춘추전국이야기>는 정통 중국역사학자가 쓴 책답게 굉장히 자세하다. 물론 <사기>나 <후한서>, 또는 역사서라고 하긴 좀 거리가 있는 <동주열국지>같은 당시의 사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같이 원서를 접할 수 없는 아마츄어 역사 애호가가 접할 수 있는 책 중에서는 아마도 분량이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무려 11권 한 세트가 최근에 완간되었다. 처음 다섯 권은 삼황오제로부터 춘추시대까지, 6권은 당시의 사상가들을 대화 형식으로 설명한 해설서, 7권에서 11권은 전국시대에서 진, 한 제국의 성립까지 다루고 있다. 따라서 열한 권을 모두 읽으면 중국의 고대사의 중요인물과 사건을 조망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관중, ? ~ BC. 645 이름은 이오이며 중은 자이다. 춘추오패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제환공 시대 명재상이며, 관포지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춘추전국이야기>는 춘추시대의 질서를 확립한 사람으로 관중을 꼽고 있다.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노력과 굳이 숨기지 않는 관점


저자는 엄청난 공부벌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춘추전국이야기>에서 인용한 책은 상당히 많은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책들 외에도 가장 최근에 발굴되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죽간까지 책 속에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최근의 발굴성과에 의해서 <사기>에 기재되어 있는 역사를 바로잡기도 한다. 그만큼 최대한 정확한 역사를 재현해 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쏟았다. 역사라는게 어차피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정도로 철저하게 당시 상황을 기술하지 않는 한 정확한 사건의 전후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수십년에서 수백년이 지난 후에 당시의 자료(라고 추정되는 자료)나 구전을 통해서 내려오는 내용들을 토대로 해서 씌이기 때문에 더욱 실제 역사를 알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그렇게 적었다고 하더라도 편집을 거쳐 정본이 나오는 사이에 편집 책임자의 의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왜곡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역사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당시 상황에 비추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텐데, 그 점에서 저자는 책을 쓰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 책이 모두 열한 권이나 되고 페이지로 따지면 4,000페이지가 넘지만 중국의 고대사를 모두 기술하기에는 당연히 부족하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인물, 사건이 선택되고 있다. 이 때 저자는 딱히 자신의 관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취사선택의 이유를 밝힌다. 예를 들면 전국시대 초기 가장 스펙타클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손빈과 방연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건조하게 몇가지 중요한 사건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좀 많이 아쉬웠다.) 대신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인물이 부각되는 경우도 있고, 부정적이었던 인물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역사는 기술하는 사람의 철학이 깃들 수밖에 없으므로 크게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비판적으로 보기엔 많은 자료를 제시하면서 충분한 근거를 대기 때문이다. 공부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토를 다는게 아니다.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 BC ? ~ 195. <춘추전국이야기>는 유방의 한나라 건국으로 마무리된다.


이야기 책이 아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읽을 때, 이 책을 원래부터 소설인 <삼국지>나 <열국지>, 소설로 많이 씌여진 <초한지>같은 책을 기대하면 좀 읽기 힘들다. 이 책은 본격적인 역사책이고, 저자는 각 권마다 머릿말에서 해당 권의 역사를 다루는 방향이 설명했고, 마지막 권에는 당시 시대에 대한 평가를 기술해 놓았다. 역사에 있었던 얘기를 많이 적어 놓으면서, 고전 사서를 인용한 부분도 많고,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 나름대로 논증도 해 놓았다. 그러니까 일반 아마츄어가 읽기에는 좀 어려운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도 읽으면서 이해는 했지만 몇 장 읽고 나면 앞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대략 뜻만 이해하고 잊어버리는 식으로 열한 권을 읽었다. 정독이라고는 할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체 역사를 훑어 보면서 끼워 맞추고 모르고 있던 사이사이의 지식을 이해하면서 읽었으니 완전히 책을 소화해냈다고 볼 수는 없다. 20%나 제대로 읽은 건지 잘 모를 정도다.

 


춘추시대의 지도. 진 晉은 아직 조, 위, 한으로 갈라지지 않았고, 진 秦도 전국시대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없다.초가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해서 남쪽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오와 월은 춘추시대 후반기에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하다 전국시대로 진입하기 전에 멸망해 버린다. 전통의 강자 제는 풍요로운 땅 산동을 차지하고 있고, 전국칠웅 중에 가장 약했던 연은 한반도와 맞붙어 있다.


★★★★☆


한 번 읽고 치워 둘 책이 아니다. 역사에 관한 책은 앞으로도 많이 읽게 될 것 같은데, <춘추전국이야기>는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나라 이전 시대 역사에 대한 길잡이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기본으로 삼아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살을 붙여 나가면 중국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는 앞으로 교과서와 같은 책이 될 것 같다.


전체 열한 권의 책 중에서 6권과 11권은 책을 쓴 방향이 좀 다르다. 6권은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인 제자백가,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강했던 맹자, 한비자, 묵자, 순자, 장자의 사상을 대화식으로 조망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 불만스럽다.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다양한 제자백가 사상의 계통을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11권은 6권을 제외한 10권까지와는 다르게 진 멸망 후 항우와 유방의 투쟁을 이야기 식으로 썼다. 요약한 <초한지>를 보는 느낌이다. 좋게 평가하자면 앞부분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나쁘게 평가하자면 11권의 대단원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서 좀 급하게 쓴 것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11권은 이전권에서는 그다지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던 오타가 좀 많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책이고, 열한 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뿌듯함과 함께 성취감도 든다. 세트로 살 때 함께 따라오는 <춘추전국이야기 길라잡이>는 책 속의 인물과 지도 중 중요한 것들을 담아 놓았지만 개별 책에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는 들춰볼 일이 없었는데, 다른 증정품인 춘추전국시대 지도는 책을 읽으면서 보면 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봤던 춘추전국시대 지도중에 가장 보기에 편했다.


엄청난 작업을 완료한 공원국 저자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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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12-1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산만했던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어요. 위진남북조도 이렇게 정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