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즐링 주식회사 - The Darjeeling Limite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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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 

처음 30분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도 좋을까, 싶어서 지하철에서 미친 사람처럼 내내 실실거렸다. 그러다가 이렇게 지하철에서 소비할 수는 없는 영화라고 결론을 내리고 과감하게 끄고는 아껴두었다가 주말에 나머지 부분을 시청했다. 

갈수록 처음의 강렬한 힘이 어떻게 손 쓸 시간도 없이 무지하게 떨어져 가고, 코믹한 요소도 처음 30분의 것이 전부이고, 상징적인 장면 장면은 너무 뻔해서 실망했지만......
그래도 어느 영화에서 이렇게 매력적인 3형제를 만날 수 있을까!
[다즐링 주식회사] 뿐이다. 


 

목에 건 꽃목걸이며, 싸구려 신발, 이마에 찍은 빨간 점, 뱀!!!! (나라도 샀을거다, 정말정말정말)
아, 미치겠다. 
인도 가고싶다.. 저 뒤에서 쳐다보고 있는 인도남- (인도남들은 거의 90프로 저렇게 어디에선가 쳐다보고 있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 그 배경을 직접 체험해 봤느냐, 아니냐는 감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마 [다즐링 주식회사]의 배경이 근처의 네팔이었더래도 난 이만큼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즐링이 어딘지 알고, 중간에 내린 곳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곳인지 알고, 시장이, 버스가, 사원이, 기차가 어떤 지 알기에 이 영화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 + 배경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로 중요하다.
최근의 [로마인 이야기]나, [펭귄의 실종]은 세계지리를 배웠어야 한다고 한탄에 한탄을 거듭하게 하는 책이다.)

이들은 엄마찾아 삼만리 여행을 하는 중인데, 모든 여행이 다 그렇듯이 이 신성한 여행은 사실 그 목적보다는 그 목적에 방해되는 일거수 일투족이 더 여행스럽다. 매일 아침의 일정표와 매번 놓칠 뻔 하는 기차, 안지켜도 그만인 일정표를 겨우겨우 따라가다시피하는 그들의 여행은 나의 마구잡이식 여행을 떠올리게 했고 그래서 나는 더 행복했다.  

  
 

- 여행객들이면서 좋은 오토바이도 타고 있다 ㅎㅎ

또 한가지 재밌었던 건 이들이 'spiritual journey' 를 위하여 행하는 말도 안되는 기도와 의식이었는데, 멀쩡해보이는 백인 남자 셋이서 로컬들 사이에서 엄청 열심히 엎드려 기도하고, 두손 모아 기도하고, 깃털에 소원을 빌며 날리고, 돌 밑에 묻는 행위들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 같지만 내게는 엄청난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재밌어하는 동시에 은근히 진심으로 소원을 빌며 우스꽝스러운 기도를 열심히 하는 건 정말이지 완전 내 스타일이다.  

영화에서 발견한 내 인생 최초의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삼인방이다!

한가지 약간 억지스러운 것이 있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기차를 놓치는데, 인도에서 기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겠지만 이 나라에서 기차를 놓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99프로의 기차들이 연착되거나 늦게 출발하기 때문. 그러니 이렇게 매번 기차를 놓치는 것은 '달리는 기차를 따라잡기 씬'에 대단한 로망을 가진 감독때문에 억지로 끼워 넣어진 매우 영화스러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나름 시간을 지키는 비싼 열차(이름은 까먹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거의 KTX 수준의 열차가 있긴 있다. 나도 한 번 타봤다.) 만 타고 다녀서 진짜 로컬 기차는 안타봐서 모르거나.
로망때문일 거라고 백프로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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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쉽게 사랑에 빠지지 말자-
    from My own private affairs 2009-03-03 09:14 
      아- 이사람 너무 좋다. 비록, 처음 [피아니스트]를 보고 마구 열광하며 찾아보곤 잊어버리고,  두번째로 [킹콩]을 보며 마구 떨려하며 또 찾아보고 아 이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라며 감탄하곤 또 잊어버리고,    세번째로 [다즐링 주식회사]를 보며 이 매력적인 생명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라며 홀딱 반해서 또 찾아보니  위의 두 사람이다.  당신은
 
 
Mephistopheles 2009-03-04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텔 슈발리에는 이 영화의 부록같은 영화이므로 꼭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속 3형제 중 막내인 잭과 그의 연인이였던 나탈리 포트만의 이야기입니다..^^

Forgettable. 2009-03-04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메피님 리뷰를 써 놓으신 영화들을 보면 스타일이 저랑 좀 다른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도 보셨군요!!!
개인적으로는 피터와 앨리스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이남자 너무 멋져서요-ㅋㅋ
잭도 귀엽지만 :) 잭은 이 영화 감독이랑 작업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근데 이 삼형제는 엄청 부자인가요?
그리고 이 영화는 어디서 구해요? ㅜㅜ 단편이라 찾기가 쉽지 않군요!
(엄청 말많기)


Mephistopheles 2009-03-04 09:37   좋아요 0 | URL
삼형제의 아버지가 부자였던걸로 기억합니다. 피터와 앨리스의 이야기는....아마도 피터역을 맡은 배우에게 꽂히셨기 때문인 것 같고요..ㅋㅋ 잭역을 맡은 제이슨 슈왈츠만은 웨스 앤더슨 감독과는 이 영화와 호텔 슈발리에가 다에요..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서 배우로만이 아닌 각본가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호텔 슈발리에는....음...지금 상황에선 열심히 넷을 뒤져보면 나올껍니다. 혹은 영화가 짧으니까 유튜브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가도 나탈리 포트만의 누드가 나오기에 힘들 것 같고 입니다..(엄청 대답하게주기)

Forgettable. 2009-03-04 09:49   좋아요 0 | URL
오호 당장 유투브에 가봤더니 있는 것 같아요+_+ 바로 뜨는군요!!
감사감사 ㅋㅋㅋ 잭은 머리스타일도, 수염도 그대로네요 ㅎㅎ
집에가서 봐야겠어요.

다방면에 방대한 지식을 갖고 계시는군요^^

Mephistopheles 2009-03-04 12:38   좋아요 0 | URL
어..전 다방에 출입하진 않습니다.

Forgettable. 2009-03-05 09: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메피님이 제게도 유머댓글을 남겨주시니 황송황송-

어제 유투브에 있던건 집에가서 보니 호텔슈발리에 앞부분 6분만 있더라구요.
유투브에 19금영상은 짤리나봅니다 ㅜㅜ
 
so adorable _ 다즐링 주식회사


 

아- 이사람 너무 좋다.
비록, 처음 [피아니스트]를 보고 마구 열광하며 찾아보곤 잊어버리고, 



두번째로 [킹콩]을 보며 마구 떨려하며 또 찾아보고 아 이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라며 감탄하곤 또 잊어버리고, 

 

세번째로 [다즐링 주식회사]를 보며 이 매력적인 생명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라며 홀딱 반해서 또 찾아보니 

위의 두 사람이다. 

당신은 매번 새로운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나의 기억력이 당신을 붙잡고 있기엔 너무 미약한 것인지. 

본명은 애드리언 어쩌고- 외모는 그저 나의 이상형, 성격은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본 세개의 캐릭터 모두 완전 내스타일임.
며칠전 [숏버스]를 보며 세스의 '소다샾'을 들으며 두근두근한 지가 언제라고,
또 사랑에 빠져서 상사병 걸릴 지경이다.  

예전에 [미안하다, 사랑하다]를 보며 소지섭이 너무 멋있어서 중간에 안봐버리는 사태가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다즐링 주식회사]를 못보겠다. 한 30분 봤는데, 좀 아련한 짝사랑의 기분이랄까,, 가슴이 미어진다; 

쉽게 사랑에 빠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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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2-2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배우 잘 기억 못하는게 저랑 비슷하신군요.ㅎㅎ

Forgettable. 2009-02-2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면서도 기억 못하는건 정말 자랑이 아닌데 말이죠 ㅠㅠ 배우보다는 캐릭터가 좋은 것이었다고 위안을 해봅니다^^
 
널 사랑해_ 숏버스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쉽게 사랑에 빠져 뻑가는 미소를 뿌려대는 세스. ㅠㅠ 작곡가 겸 배우인 제이 브래넌이다.   

외모만 봐도 두근두근한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랠 부르면 그가 내것이 될 수 없단 사실이 정말 완전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유투브에 가면 뭔가 셔츠를 벗고 기타로 몸을 가린 채 노래하는 동영상도 있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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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도의 걸쭉한 막걸리를 판다는 종로의 '백세주마을'에 가려고 하였으나 만원인 관계로, 또 기다리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싶은 심정은 아니어서 근처의 아무 술집에나 들어갔다.  언젠간 마시고말테다!!

어제의 모임은 참으로 오랜만에 술파들의 모임(우린 '차'파와 '술'파로 나뉘어져있는데 요즘은 다 술파로 전향했다 ㅎㅎ)이었는데 ROTC후배의 졸업+군대 송별회 기념모임이었다. 그를 위해 가진 모임이었는데 결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의 음담패설로 마무리지어졌다는 슬픈 사실이 전해져온다,, 

얼마전에 중국에 다녀온 친구의 고량주를 몰래 소주병에 넣어와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좋더라. ㅎㅎ 차라리 소주가 낫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어서 두어명이서만 귀한 술을 다량으로 섭취했는데, 좋았다. 목넘김이 예전의 스미노프 보드카를 주로 마실 때보단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옛 기억을 되살려주는 동시에 향도 달콤해서 ㅎㅎ  앱솔루트 바닐라보다도 나은듯.. 

예전엔 소주보다 보드카나 위스키가 훨씬 싼 곳에 있었을 땐 별별 술을 다 마셨었는데- 소주는 취하는게 느껴지는데, 센 술은 멀쩡한 상태 계속 유지하다가 급 꽐라되서 문제인 것 같다. 양주는 뭐 다음날 숙취가 없다네 어쩌네 하지만 그건 덜마셨을 때나 그렇다. ㅎㅎ

애들이 다 좋은 상태가 아니다. 심적으로나 신적으로나- 다들 며칠전에 꽐라되서 속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던데 이러다보니 낄낄대다가도 급 루즈해지는 분위기여서 좀 탈피해보고자 게임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이미지게임. 알거 다 아는 친구들끼리 이미지게임을 하려다보니 문제가 자극적이될 수밖에 없었는데... 

기억나는 걸 몇개 적다가 말았다. -_- 적다보니 공개하기엔 너무 누워서 침뱉기인 저급질문들이어서 ㅋㅋ 나름 친분도 쌓고 있는 분들도 있기에 이미지관리를 위해서, 하하호호 :)

나의 술버릇은 집에가서 자기(!!)이다. 술이 오른다 싶으면 술을 그만마시고 집에 가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내 가방 혹은 지갑을 숨긴다. 결국 그래서 내가 포기하고 남기로하면, 난 막차 다 끊겼는데 다들 집에 간단다. 하아... 어제도 똑같은 패턴.  

친구에게 주었던 '나폴레옹광'이 돌아왔다. 물론 물에 젖었다가 말린 쭈글쭈글한채로. 사실 받지 않을 예정이었는데 읽지 않은 세편의 이야기를 친구가 들먹이며 엄청 궁금하게 만들어서, 마침 어제 갖고 있다길래 받아왔다. 난 책 정말 소중하게 보는데, 이건 뭐 차라리 주는게 나으려나 괜히 찜찜하다. 그러고보면 그녀에게 빌려줬던 귀걸이는 한짝만 돌아왔고, 파우더케이스는 조각나서 왔고, 책은 물에 젖어서 퉁퉁 불어서 왔네. 그렇지만 아깝거나 하진 않다.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걸 분명 알지만 난 앞으로도 계속 그녀에게 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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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2-22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양주 마시면, 술이 안 깨요. 다음날까지도 피에 양주가 흐르는지 헤롱헤롱

Forgettable. 2009-02-22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도 양주로 갈데까지 가시는군요! ㅋㅋ 전 어제 마신 게 오늘 오후에 두통이 오드라구요 ㅠㅠ 언제 같이 위스키나 한병... :)

Mephistopheles 2009-02-2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포도주가 숙취해소에 가장 애먹는 주종입니다.다음 날 하루종일 두통을 끼고 산다죠.

Forgettable. 2009-02-2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다른 서재에서 빵터지는 댓글들만 보다가 이렇게 진지한 댓글을 보니 매우 어색어색;; 와인도 숙취 대단하죠. 그런데 어떤 술이든 많이 마시면 힘든건 비슷한듯 해요. 그래도 하나 꼽자면 전 이상하게 맥주가 제일 힘들어요, ㅎㅎ

꿈꾸는섬 2009-02-2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마시고 취하면 다음날까지 괴로운데 양주마시고 취한 다음날은 말짱하네요.

JH 2009-02-2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주 먹고싶다. 카스레드도 치킨이랑. 동동주도. 젠장 너무비싸!!!!!!!!!!!!

Forgettable. 2009-02-27 09:37   좋아요 0 | URL
공부해 ㅋㅋ
 
아투안의 무덤 어스시 전집 2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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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스시의 마법사 1권을 보면서 괴상한 번역에 치를 떨며 '이게 뭔가ㅜㅜ'라며 아연해했기에 2권을 봐야하나 말아야하나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쭉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중고샵을 통해 2권 [아투안의 무덤]을 구매했다. 

 일단 1권에 비해 책은 얇다. 그리고 전혀 쌩뚱맞은 무녀 아르하의 이야기였다. 리뷰를 통해 알고 있어서 새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번역은 거슬리기는 해도 각오하고 봐서인지 그냥저냥 봐줄만했다. 그래서 일단은 또 3권까지 가볼 예정이다.  

 [아투안의 무덤]이 지루하다거나,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전체로 봤을 땐 하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리뷰가 많았는데 내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속에는 나의 로망들이 잔뜩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1. 지하무덤, 미궁 

 내가 동굴을 좋아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아무 빛이 없는 곳에서 벽을 더듬어 그 촉감만으로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면 무한한 암흑속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독한 악몽이 아닌가! 축축한 벽을 만지다가 벌레라도 만진다거나 올빼미를 쓰다듬기라도 한다면.... 소릴 지르며 방방 뛰어다니다 길을 잃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똑똑한 그녀 테나는 마치 그 곳이 처음부터 자신의 세계였던 양 그 동굴에서 아늑함을 느낀다. 

 계절도 없고, 낮과 밤도 물론 없으며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곳. 지친 하루를 암흑 속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아늑한 나만의 세계는 나의 로망이다. 이전에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나던 선배가 '남자는 로망!!!'이란 말을 반복해서 왠 로망타령인가 싶어 아주 조금 짜증이 났던 적이 있는데 이제 그마음 안다. 이런 공간은 정말이지.. 나의 꿈, 희망사항이라는 말보단 로망이란 말이 딱이다.  
 그리고 내가 믿는 분들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을 수 있는 그곳에 이방인인 마법사가 나타났을 때 내가 취하고 싶은, 취했을 행동을 테나는 그대로 행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것 처럼 그녀도 똑같이 느끼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그녀도 행동했다.  

2. 새매같은 남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암울하게 지내던 그녀의 세상게 강인하고 조금은 냉정하기도 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낯선'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내가 평생 알아왔던 온 세상을 떨쳐버리게 할 만큼 날 사로잡지만 사실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착해 있기엔 내재된 힘이 지진도 가라앉힐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잊혀진 이름을 주었고, 암흑 속에 덮여서 찾을 수도 없었던 나의 빛을 찾아주었고, '신뢰'라는 이름으로 우릴 묶어주었고, 우릴 구하기 위해 힘을 소진하였으며, 내 앞에선 지친 기색도 보여주고, 무엇보다도 내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세계를 선사해주었다. 

 그는 내 옆에 있을 수는 없지만 내가 필요할 때라면 언제든지 내게 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이란 언제나 가슴 아픈 것이다. 현재 불가능한 것을 나중에 언젠가는 해달라고 손가락을 걸지만, 그 기대때문에 설레기보단 지금은 불가능하니까, 나중에도 안될까봐 달달 떨며 가슴아파하는 것이다.  

 새매덕분에 세상에 나체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으나 그는 더 이상 날 지켜주지 않는다. 왜냐면 나만의 빛이 날 충분히 태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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