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관계의 끝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이미 저만치서 해가 떠서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그 형체를 드러내는데,
때로는 진짜로 너무 어려서, 때로는 인정하기 싫어서 어리광부리는 마음으로, 눈가리고 아웅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리지도 않고(정말?) 어리광부리기에는 그닥 귀엽지도 않으니. 
저어기 드러나기 시작하는 관계의 바닥을 응시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세네카같은 사람은 그러한 절망도 미리미리 예상해둔다면 막상 그 상황이 닥칠 때를 대비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니 죽음에 그렇게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했지만 존경스럽지 않다. 이 사상으로 똘똘 뭉쳐 가르쳤던 네로황제가 제 스승에게 명령한 죽음이었거든. 이 사상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네로황제가 초기에 다 숙청해버린건 이 사상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를 선생으로 둔 불행한 이여,,) 
관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끝나기 전까지 미리미리 준비를 해둔다면 이별통보의 상황을 의연히 견딜 수 있을까-
미리미리 울어두고, 미리미리 추억을 정리해두고, 미리미리 나락에 떨어져본다면.
난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과연 멋지고 쿨하게 참아낼 수 있을까. 
아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거야. 라며 평소처럼 무조건적인 낙관을 백치처럼 들먹이고 싶은 욕구. 

진짜로 절망했을 때 난 술을 마실 수가 없다.
술을 마시면 우울과 좌절 속에서도 언뜻 판도라가 상자에 실수로 남겨둔 헛된 희망이 보이는데, 난 그게 견딜 수 없다.
낯선이들의 위로는 독이지만, 미치도록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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