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로 노는 걸 단 한번도 온전히 즐겨본 적이 없다. 친구는 모아 놓은 둔 쓰며 노는게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나는 뭐 모아둔, 쓸 돈도 없거니와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거 그냥 쓰는게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 웬만하면 안 쓰려고 하다가 그래도 술취하면 없는 돈 뿌려대는게 버릇인지라, 이렇게 놀 수만은 없겠어서 어제는 알바사이트를 뒤져서 동네 커피숍에 면접을 보고 왔다.
커피숍 경력 하루이틀도 아니고, 게다가 외국유학(?) 바리스타이니 어디서 안뽑아주겠냐 생각했는데, 나이가 걸렸고, 부담스러운 경력도 걸렸다. 파트타이머 마구 부려먹으려면 얕잡아봐야할텐데 난 공부도 좀 했고.... 사회생활 경험도 있고...... 영어도 잘하고.... 인상도 좀 심하게 좋고..... 커피숍 알바하기에 나는 너무 고.급.인력이었던 것이다........................ 너무 재수없나?
사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유는 다른 거 다 둘째치고서, 나이였던 것 같다. 일단 매니저급의 정직원들부터도 나보다 어리니 아무래도 일하는데 지장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 같더라. 캐나다에선 나이고 매니저고 상관없이 다 똑같은 조건으로 일하고, 3개월, 6개월마다 시급 1달러씩 올려줬었는데 아무리 한국에서 한국인처럼 생각하고 살려고 해도 약간 불합리한 게 많다.
뽑히지도 않았지만 일단 조건이 그랬다. 8개월 이상 일해야 할것. 처음 1주일치 월급은 8개월을 채워야 그 때 주겠음, 수습기간인 첫 3개월의 시급은 4200원. 그 다음은 4,500원. 하하 이렇게 강조하셔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아야만 했다. 정직원과의 노동 강도 차이도 은근슬쩍 언급하셨고. 그런 조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쓸했다. 나 한 시간에 11달러 받고, 팁도 받고, 유급 점심시간도 있는 파트타이머였는데... 지인이 내게 이제 한국에 왔으니 한국에 적응하라고 했지만, 그게 스위치 껐다 키는 것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씁쓸하다. 심지어 그런 일자리마저 구하지도 못했다니! 웃기기도 하고.
요즘 시간이 많아서 낮에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데 한 곡에서 단조가 장조로 막 바뀌고 미에 샾 붙고 난리도 아니다. 고작 피아노 칠 때 단조, 장조 바뀌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1년 동안 살던 버릇 스위치 하려니 여간 몸이 쑤신게 아니다. 그래도 아예 잃어버리는게 아니랬으니 그 말 철썩같이 믿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오자마자 책 선물 2번 받았다.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안나 까레리나] 1~3권 양.장.본. 맘같아선 선물 받은 책 좀 읽다가, 지겨워지면 피아노 연습좀 하고, 배고파지면 1300원짜리 막걸리 한병 사와서 김치볶음에 밥 먹고, 그러다 밤되면 나가서 친구들이랑 술먹고. 이런 생활 평생 했으면 좋겠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