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의 말이 그에게서 새 떼처럼 날아갔다. 그 자신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그는 세상을 얻었을 것이다. 이 교양을 얻을 수 있다면! 외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다면! 많은 걸 배워서 여자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척척 응답하며 대화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랜 세월이 필요한 일이다. 점심 한 시간, 그리고 저녁나절의 산만한 몇시간을 가지고 어떻게 어릴 적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 온 이 유한계급 여자를 따라간단 말인가? 그도 머릿속에 제법 많은 이름이 들어 있고, 어쩌면 모네와 드뷔시의 이름도 들어본 것 같았다. 문제는 그걸 문장으로 엮어낼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그것을 <말할>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잃어버린 우산 생각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p.56

 

   
 

그들은 행운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모두 위컴 플레이스의 좁고 호사스러운 계단을 올라서 어떤 널따란 방으로 사라졌고, 그가 하루에 열 시간을 독서에 바친다 해도 거기까지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아, 이런 식을 줄 모르는 열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교양을 타고 난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자신에게 편한 것을 추구하는 편이 낫다. 인생을 견실히 또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p.74

 

[하워즈엔드]를 원서로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때려치고, 친구가 보내준 번역본을 읽고 있다. 영어로 읽는다고 끼적대던 순간들이 불쌍할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을 놓쳤다는 걸 발견했고, 또 의외로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이해했다는 것도 발견하는 중이다.  

예전에 TV 채널 돌리다가 가쉽걸 어떤 에피에서 예쁘장한 어떤 여자애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뉴욕출신이냐고 묻는 남자에게 자기 프렌치에 액센트가 있지는 않을텐데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장면을 봤다. 그 장면에서 그 부잣집 딸래미가 어렸을 때부터 받을 수 있었던 교육이 너무 부러워서 로또 당첨되면 뭐하고 싶냐는 질문에 언어나 악기같은거 배우고 싶은거 다 배울거라고 대답했다.  

[하워즈엔드]의 초입부에 잠시 등장한 레너드의 마음은 나의 마음과 무척 흡사하다. '어떤 사람들은 교양을 타고 난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자신에게 편한 것을 추구하는 편이 낫다.'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다룬 친구의 집에 놀러가면 무척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이름도 알 수 없는 브라질의 인디 밴드부터 에릭 사티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이 공짜로 주어진다. 나는 그만한 음악을 찾을 열정도, 기억할 기억력도, 수집할 음반도, 없기에 그저 그처럼 나 편한대로 들리는 음악 듣고, 보이는 영상 보면서 그냥저냥 산다. 

원래는 이렇게 자조적인 페이퍼를 쓸 작정이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어쩐지 이 사람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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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1-1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에 오고 나서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교양이 있다는 사실에 헉하고 놀랐답니다.
그건... 제 계급에선 가질수가 없어요..
제가 그래서 풍물이나 하고 우리소리를 들은건지도 몰라요.
그런데 얄밉게도 이런것도 그런놈들은 잽싸게 배우더라는...

Forgettable. 2011-01-10 12:33   좋아요 0 | URL
그쵸? 전 포스터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그런 계급에 대한 동경심이 자리 잡았어요.
풍물이나 우리소리도 요즘 돈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전 정말 거문고 배우고 싶은데 비싸더군요. ㅠㅠ

기웃 2011-01-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워즈 엔드를 작년 여름쯤에 읽은 기억이 나네요. 마가릿이 누군가한테 '애정은 주고 받을 때 서로 권리가 생긴다고 아주 중요한 말이니까 어딘가에 적어 두라고' 했던 말이 왠지 기억에 남아 있어요. 읽는 내내 하워즈엔드-집 자체가 배경이자 주인공인 느낌이 들더군요.

단조로운 서술 방식에 굉장히 오래 붙잡고 읽었었지요. 그렇지만 다 읽고나니, 포스터만의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그래서 포스터의 다른 책도 찾아 결국 몇 권 읽어보게 되었지요. 마르케스처럼 이야기의 무궁무진한 확대가 아닌 해변가에 쭉 뻗은 도로를 달리며 창 밖의 얼핏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미소짓는 느낌이랄까..ㅎㅎㅎ 그래서 고즈넉한 포스터만의 시간이 좋더군요.

Forgettable. 2011-01-10 12:44   좋아요 0 | URL
얼마 안되셨군요. 전 포스터 소설 무지 좋아해요. 지금 세권째 보고 있어요. 이야기도 재밌지만 사람에 대한 묘사들이 재밌고 공감도 많이 되고 그래요. 어떤거 읽으셨어요? 전 [전망 좋은 방]이랑 [모리스] 읽고 지금 [하워즈 엔드] 읽고 있는데,, 초반부만 2번째 읽고 있어서 더 진도가 안나가는듯;;; 하지만 책 읽다보면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에요. 아 정말 어찌 이리 정확한지..

그나저나 요즘도 가끔 오시는군요. :) 기웃님 댓글 받을려면 종종 책 얘기 써야겠어요. 근데 요즘 정말 책 많이 못읽어서 ㅠㅠ

기웃 2011-01-11 21:1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모리스]는 읽지 못했지만 [전망 좋은 방]은 읽었지요. 동생,비브목사,에머슨이 호수인가?에서 장난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겪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읽으면서 깔깔대며 보았었죠.ㅎㅎㅎ

따로 블로그나 알라딘 서재를 하지 않아 유동닉으로 글을 남겼었는데,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군요.^^.

늦었지만,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Forgettable. 2011-01-12 12:38   좋아요 0 | URL
와.. 비슷한 경험이라니 완전 궁금한데요!!!! ㅋㅋㅋㅋㅋ 저도 그 장면 기억하고 있어요. 비브 목사 캐릭터가 참 특이하기도 하고 ㅋㅋ

그럼 기억하죠. 다른 글도 아니고 마르케스 관련 글에 댓글(그것도 길게!) 남기셨는데.. ㅎㅎㅎ 오시면 인사도 주시고 그러세요~ ㅎㅎㅎ

새해군요. 벌써. 이제 올해면 한국 가네요. 이렇게 얼마 안남았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ㅠㅠ

루체오페르 2011-01-1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겟님이 그러시다는건 아니죠?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Forgettable. 2011-01-10 12: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하하 전 딱 저 젊은이가 속해 있는 계급입니다. ㅠㅠ

루체오페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

치니 2011-01-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윽, 저도 공감 되네요. 하지만 뭐, 듣고 싶은 거 막 듣고 내키면 찾아보고, 이런 세상살이도 나름 재밌다고 우겨봅시다.

Forgettable. 2011-01-10 12:50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그냥 이렇게 살아도 얻어 듣고 얻어 보는게 많아서 그나마 살만한 것 같아요. 너무 부러워할 것 없는 인생도 어쩌면 지루할지도요.

라로 2011-01-1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저는 이런 글을 올리는 포게터블님이 좋다고요!!!!!!!!!!!그나저나 우리 너무 오랫많이잖아욧!!!!!!!!!!!!!!ㅠㅠ올해 한국에 오시나요?????????????????????암튼 새해 복은 많이 받을 수 있는 만큼 많이,,,,그러니까 이빠이 받으세요~~~~~~~~~~~~~.

Forgettable. 2011-01-12 12:3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진짜 ㅋㅋㅋㅋㅋ 열심히 책 읽고 글 남겨야겠다고 나비님 댓글보며 다짐해봅니다. ㅋㅋㅋㅋ
제가 여기서 워낙 서재질을 안해서 ㅠㅠㅠㅠ 저 봄되면 한국 가요!!!!! 그럼 우리도 볼 수 있겠죠? 나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다 잘되시길 바라요. ^^

라로 2011-01-12 23:00   좋아요 0 | URL
저 이 댓글 달때 혼자 아사히 드라이 맥주 2L마시다가 1L는 변기에 버리고,,,,암튼 그래서 그랬는지 지금 보니까 오타가 있어요~!!!!ㅎㅎㅎㅎㅎ뭐 취중 댓글이 아니어도 오타 수두룩이지만,,,괜히 우리도 볼 수 있다는 댓글을 보고~~~~~꼬옥 만납시다!!!우리의 만남이 비록 이모와 조카의 만남 스럽겠더라도 말이에요,,,ㅋㅎㅎㅎㅎㅎ

Forgettable. 2011-01-13 14:45   좋아요 0 | URL
도대체.. 1L는 왜버리십니까. ㅠㅠㅠㅠ 하하 2L 정도면 하루 저녁에 금세 먹을 양인데, 아깝네요. 여기와서 술만 는 것 같아요. 지금도 혼자 보드카에 오렌지 쥬스 타마시고 있네요. 홀짝홀짝

안그래도 여기서 만난 어린 친구가 저보고 이모라고 해서 ㅠㅠㅠㅠ 제가 그 때마다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었는데.. 그래서 전 나비님께 절대 이모라고 하지 않을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

Joule 2011-01-11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me are born cultured; the rest had better go in for whatever comes easy. To see life steadily and to see it whole was not for the likes of him.

줄모 양의 이런 성실함, 쫌 감동적이다, 그죠?


근데, others가 아니라 the rest라는 게 좀 서글프네요. (속으로는 격하게 공감하지만.)

Forgettable. 2011-01-12 12:42   좋아요 0 | URL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이 댓글 보고 ㅋㅋㅋㅋㅋㅋㅋ 저 쥴님 꿈꿨어요;;;;;;;;;;;;;;;;;;;;
제가 쥴님 집에 놀러가는 꿈. 하하하하 꿈속에서의 쥴님은 아름답고(고현정의 느낌이랄까) 무서웠어요. 왜 무섭지?? 하여간에 제가 좀 쫄아 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부분은 제가 원서로도 읽은 부분이라 기억이 나요. 근데 하워즈 엔드 원서로도 갖고 계신거에요? 전 빌려봤는데. ^^ 참 영어로는 간단한데 한국어로는 복잡한 것 같기도 하고.. 슬퍼도 the rest라 더 좋은 것 같아요. 냉혹하긴 하지만 현실이잖아요.

2011-01-1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요즘엔 이런 교양의 부족을 많이 실감하고 있어요.
어른들이 인생에서 후회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젊어서 공부 좀 할 걸' 이라는데,
단지 입신양명을 위한 공부 외에도 교양 공부도 그 공부에 속하지 않을까 싶네요.

악기도 잘 다루고, 외국어도 세계 시민 수준으로 하고, 와인도 감별할 줄 알고, 요리도 잘 하고,
말도 탈 줄 알았으면 좋겠고, 성경이나 세계사 지식도 풍부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당장 배워야 하는 것도 다음 날 다 까먹어서 또 외우고 외우고...
아 돌이 되고 싶네요 ㅠ

Forgettable. 2011-01-12 12:45   좋아요 0 | URL
그쵸?? 전 뭐 하나라도 깊게 파는 사람이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나 뭐는 할 줄 안다. 이러게요.
그래도 코님은 카메라나 만년필 이런거도 잘 아시잖아요. 남들보다도 훨씬 많이 ㅠㅠㅠㅠㅠㅠ
전 정말.................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겉핧기만 하다가 끝나는 것 같아서;; 항상 열등감에 찌들어 있네요.

오늘 안그래도 승마할 줄 알았음 좋겠다, 생각했는데. ㅋㅋㅋㅋㅋ 그나마 좋아하는 사진도 여기저기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거라 ㅠㅠ 더 우울해졌어요 ㅠㅠㅠㅠ 저도 같이 돌이 되고 싶네요. ㅠㅠ

카스피 2011-01-1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세상살이가 참 공평하진 않은것 같아요.그나저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Forgettable. 2011-01-12 12:4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기 편한 걸 추구하면서 살라고 했나봐요.

으 제가 먼저 인사드리러 갔어야 했는데 어째 인터넷 하는 것도 귀찮아하는지 요즘은 ㅠㅠ 카스피님 올 한해 댓글 감사해요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11-01-1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 [악의] 재밌어요?
지금보니 반값이라 살까 말까 생각중이거든요. ㅎㅎ

Forgettable. 2011-01-12 13:20   좋아요 0 | URL
네. 재밌어요. 하지만 교고쿠도의 감동은 아니에요.
그냥 반값이라면 사서 보고 누구에게 선물해도 괜춘할듯??

그나저나 [이유]는 뭥미.................................................................. 주택 이야기에 너무 깜놀해서 책 읽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1-01-12 14:03   좋아요 0 | URL
[유리망치] 다 읽었는데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아 밀실살인이 뭐 그렇게 머리 터지게 어휴. 유리망치도 나한테는 이유 랑 같네요. 아 진짜 이런 공간적 설명 같은것 좀 책에 안나왔으면 좋겠어요. 머리 터져 진짜. 아놔.

Forgettable. 2011-01-12 14:22   좋아요 0 | URL
전 사실 그 부분 대충 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 트릭 간당간당하게 이해했다능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