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징조들 ㅣ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구판절판


"기억이에요, 그건. 앞으로만이 아니라 뒤로도 움직이는 거죠. 종종 기억 말이에요."
뉴튼은 그녀에게 정중하지만 텅 빈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참을성을 갖고 설명했다.
"아그네스가 미래를 본 게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거예요. 그건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죠. 그녀는 미래를 기억한 거라고요. 물론 그렇게 잘 기억한 편은 아니었고, 그녀 자신의 이해를 통해 걸러질 때면 좀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죠. 우린 그녀가 자기 자손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잘 기억했다고 생가해요."-326~327쪽

때로 인간은 너무나 벌과 흡사하다. 벌들은 적이 밖에 있을 때에는 맹렬하게 벌집을 방어한다. 일단 적이 안에 들어가면, 그들은 적이 어떻게든 사라졌다고 믿고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497쪽

"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놓고선 그들이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는 게 뭐 그리 멋있는 건지 모르겠어요.[...]"-53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p59~60. 크롤리[Crawly: '기어 다니는 벌레'라는 뜻의 Crawly와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Crowly로 이름을 바꿈. 크롤린는 또한 20세기 최고의 악마주의자이자 마법의 대가로, 프리메이슨의 사도이며 비틀즈가 존경했다는 인물.]는 언제나 세상이 끝나는 날, 자신이 그 부근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지도 않는 몸이었고 다른 대안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날이 먼 미래이길 바랐다.

사람들이 좋았으니까. 그건 악마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결함이었다.

물론, 그는 직분에 충실했고, 사람들의 짧은 생애를 비참하게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그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봐야 사람들이 스스로 고안해 내는 것들에 비하면 새 발에 피였다. 인간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재능을 타고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겠지. 그들은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세상에 태어나, 그 문제들을 더 악화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역스러움이 널리 퍼진 세상에서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악마적인 것을 찾아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지난 천년기를 거치면서 ‘아래’에다 말하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보쇼, 지금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디스건 판데모니엄이건, 다 문 닫고 이리로 이사하는 게 낫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녀석들이 직접 하고 있고, 게다가 녀석들은 우리가 꿈도 못 꿔본 짓깢지 벌인다고요. 전극에 연루된 일들 말이죠. 녀석들에겐 우리에게 없는 게 있어요. 인간에겐 ‘상상력’이 있다고요. 그리고 물론 전력도 있죠.

어떤 놈인가가 그렇게 쓰지 않았던가. “지옥은 비어 있다. 악마는 모두 여기에 있다”고.  

확실히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능력은 뛰어난 듯 하다. 외려 그런 비참함 속에서 위안조차 얻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선과 악을 구별 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게 있을까도 싶다. 어느 위치에 어떤 상황에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보게되곤 하게 마련인 것 같은데.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존재가 있긴 한 걸까?  

 p 351~352. "[...] 빛과 어둠의 차이점은 전부 어디에 있는지 아니?"
"몰라. 어째서인지 이런 것들은 가르쳐주질 않아. 구체적으로 공식화하기 어려워서 그럴까?"
"전혀 어려운 게 아니야. 만약에 네가 자신과 자신의 이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 네가 갈 길은 어둠이야. 만약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한다면 빛에 가까운거야. 경험 많은 암흑의 주술사는 신참에게 뭐라고 말할까? 이런 아름답고 바른 말일까?"
"그래. 자유에 대해서지. 그들은 모든 이가 삶에서 받을 자격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거라고 말해. 모든 동정심은 모멸적이며, 진정한 사랑은 눈먼 것이며, 진짜 선량함은 무력하며, 참된 자유는 모든 면에서의 자유라고 말하지."
"그건 거짓이지?"
"아니. 그 또한 진실의 일부야. 스베타,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고르지 못해. 진리란 항상 두 얼굴을 갖고 있는 거야. 우리가 지닌 전부란 더 불쾌한 거짓을 거부할 권리야. 내가 신참들에게 어스름의 세계에 대해서 처음에 뭐라고 말해 주는지 아니?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입장료로서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 진실의 일부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은 훨씬 편하지. 백만 배 더 편해. 그들의 모든 고통과 문제와 걱정거리들을 감안한대도, 그조차 존재하지 않는 '다른 존재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지. 인간들은 선택의 문제에 놓이지 않기 때문이야. 그들은 선량한 자도, 악한 자도 될 수 있어. 모든 것은 순간, 주위 환경, 전날 밤에 읽은 책, 점심으로 먹은 비프스테이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지. 이것이 바로 그들을 조정하기 쉬운 이유야. 가장 못된 악인이라도 빛의 편으로 쉽게 돌릴 수 있으며 가장 선량한 인간이라도 어둠 속으로 밀어 넣기 쉬워. 그런데 우리는 선택을 한 거야."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 누군가에게나 주어지는 '선택의 자유'. [나이트 워치]에서 말하는 '다른 존재들'의 선택. 그런데, 난 왜 인간들이 가진 선택의 자유가 '다른 존재들'이 갖게되는 선택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난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어떤 이에 의해 배에 식칼이 꽂힌 타인의 고통보다 커터에 살짝 베인 내 손가락의 고통이 더 큰 것 처럼. 평범한 인간인 나는 '넌 빛이다', '넌 어둠이다'라고 정의를 내려주기 전엔 항상 선과 악을 선택해야하는 귀로에 서게 된다. 그것도 어느게 선이 될지 악이 될지 모르는 귀로에 말이다. 지금은 선으로 보이는 선택도 결론적으로 악이 될 수도 있는 또는 그 반대의 결과에 서게되기도 하고 말이다.   

   p14. "잘한 것이겠지?" 

"자네가 나쁜 일을 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군." 

크롤리는 냉소저으로 대꾸했지만, 아지라파엘[]은 그것이 비꼬는 말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오후 내내 그 일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다고." 

그들은 한동안 비가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크롤리가 말했다. 

"웃기는 건 말이야. 내가 그놈의 사과 문제가 옳은 일은 아니었는지 계속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 악마가 옳은 일을 했다간 진짜 골치 아프게 될 수도 있거든." 그는 천사를 슬쩍 찔렀다. "우리 둘 다 잘못한 거라면 얼마나 웃기겠어?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자네가 나쁜 일을 한 거라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이냐고. 안 그래?"

"별로 우습지 않은걸." 아지라파엘이 그렇게 대답하자 크롤리는 빗줄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우습지 않겠지." 컴컴한 장막이 에덴 동산 위로 내려왔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천둥이 울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악일까? 자유에 의무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의무나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자들에게서 난 한 없는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왜 내가 자유를 즐기면 안되는데? 꼭 책임을 져야 하는거야? 난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것 뿐이라고"라고 처절하게 외쳐대던 친구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와 다른 공간 속에서 여전히 그 자유를 외치며 살고 있겠지만, 어느 순간 난 그 친구의 자유가 너무 버거워 졌던 것 같다. 애초에 감당하겠다고 했던 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자만이었던게 아닐까.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하고 바란 적이 왜 없을까마는 그 친구로 인해 그런 자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자신이 누리는 자유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그 불행이 결국 자신에게 전염되고 혼자만의 자유가 결국 더 큰 불행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나조차도 그 친구가 말하는 자유를 갖고 싶었었다. 그러나 마지막의 그 친구 외침이 내 귀에 아직 선명하게 들려오곤 한다. "왜 행복하지 않은거야! 난 행복해지고 싶어! 난 행복하면 안돼!?" 다른 이들에게 조차 행복해하라고 강요하던 그 친구. 난 아직도 자유의 경계를 제대로 인해하진 못하지만, 자유=행복이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듯 하다. 물론, 자유라는 정의 자체에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이트 워치 - 상 ㅣ 밀리언셀러 클럽 26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0월
절판


"[...] 빛과 어둠의 차이점은 전부 어디에 있는지 아니?"
"몰라. 어째서인지 이런 것들은 가르쳐주질 않아. 구체적으로 공식화하기 어려워서 그럴까?"
"전혀 어려운 게 아니야. 만약에 네가 자신과 자신의 이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 네가 갈 길은 어둠이야. 만약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한다면 빛에 가까운거야"-351쪽

"[...] 경험 많은 암흑의 주술사는 신참에게 뭐라고 말할까? 이런 아름답고 바른 말일까?"
"그래. 자유에 대해서지. 그들은 모든 이가 삶에서 받을 자격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거라고 말해. 모든 동정심은 모멸적이며, 진정한 사랑은 눈먼 것이며, 진짜 선량함은 무력하며, 참된 자유는 모든 면에서의 자유라고 말하지."
"그건 거짓이지?"
"아니. 그 또한 진실의 일부야. 스베타,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고르지 못해. 진리란 항상 두 얼굴을 갖고 있는 거야. 우리가 지닌 전부란 더 불쾌한 거짓을 거부할 권리야. 내가 신참들에게 어스름의 세계에 대해서 처음에 뭐라고 말해 주는지 아니?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입장료로서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 진실의 일부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해. [...]"-351~352쪽

"[...] 사람들은 훨씬 편하지. 백만 배 더 편해. 그들의 모든 고통과 문제와 걱정거리들을 감안한대도, 그조차 존재하지 않는 '다른 존재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지. 인간들은 선택의 문제에 놓이지 않기 때문이야. 그들은 선량한 자도, 악한 자도 될 수 있어. 모든 것은 순간, 주위 환경, 전날 밤에 읽은 책, 점심으로 먹은 비프스테이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지. 이것이 바로 그들을 조정하기 쉬운 이유야. 가장 못된 악인이라도 빛의 편으로 쉽게 돌릴 수 있으며 가장 선량한 인간이라도 어둠 속으로 밀어 넣기 쉬워. 그런데 우리는 선택을 한 거야."-35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재철 목사의 매듭짓기 ㅣ 믿음의 글들 223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05년 5월
장바구니담기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입은 한국에서보다 무성하였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첫해라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 것이었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 용어로 '춘화현상'(vemalization)이라 하는데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고 한다. 인생은 마치 춘화현상의 꽃과 같다. 눈부신 인생의 꽃은 인생의 혹한을 거친 뒤에야 꽃망울이 맺히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봄에 뿌리는 봄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인 훨씬 더 많다. 인생의 열매는 마치 가을보리와 같아 인생 겨울을 거치면서 그 열매는 더욱 풍성하고 또 견실해진다. -20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개처럼 살지 않는 방법: 이지 – 분서]
P43.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 「속분서續焚書/성교소인聖敎小引」

[집단의 조화로부터 주체의 책임으로: 레비나스 – 시간과 타자]
P127. 과거 사람들은 욕망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금욕禁慾”이나 ‘절욕節欲’이 성숙함의 척도처럼 가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들이 과거 사람들이 우리보다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긍정했다가는 살아남기도 힘든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여성이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녀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원칙을 맹목적으로 지키면서 살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말에, 결혼해서는 남편의 말에,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남성들은 여성을 타자로 경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거나 숨기고 있는 여성에게서 어떻게 낯섦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생각과 욕망에 상대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만 그는 나에게 타자로 드러날 수 있다.

P128. 플라톤 이후부터 사람들은 사회적인 것의 이상을 하나가 됨이라는 이상에서 찾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주체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타자를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을 갖게 되고, 마침내 집단적 표상이나 공동의 이상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우리’라고 말하는 집단성이고, 인식 가능한 태양이며, 진리로 향하면서 타자를 자신과 얼굴을 맞댄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자로 인식하는 집단성이다.
- 「시간과타자Le Temps et L’autre」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사르트르 – 존재와 무]
P137~138. “사랑에 빠진 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이제야 분명해진다. 조건이 달라졌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버려질 수도 있다면, 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거의 노이로제에 가까운 정신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조건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기를, 다시 말해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하기’를 그토록 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 아닐까? 상대방은 자신의 자유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아니 정확히 말해 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현재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가 자유로운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나를 버리는 것도 역시 그의 자유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다. 상대방이 나를 절대적으로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불가능한 소망 이면에는, 상대방 역시 나와 마친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불길한 직감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타자란 치명적이지만 동시에 멋진 지옥 아닌가? 한때는 즐겨 앉았던 의자도 시간이 지나면 싫증이 난다. 의자는 더 이상 우리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상태에 바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의자는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반성할 수가 없고, 따라서 이런 불행한 상황을 자유롭게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자유를 가진 타자의 경우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리의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는 언제든지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우리를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다시 그를 붙잡기 위해 고뇌의 나날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사유의 의무: 아렌트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152~154. 아렌트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히만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이웃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이 관여했던 유대인 학살이란 전대미문의 악은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가 숙고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문제였다. 그녀의 대답을 들어보자.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히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는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휸이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주체로 사는 것의 어려움: 바디우 – 윤리학]
P284~285. “선생님, 이상과 현실은 타협할 수 있는 것인가요?” 잠시 숙고하다가 나는 그 학생에게 말했다. “이상과 현실의 타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실이란 급류, 그러니까 모든 것을 휩쓸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압도적인 강물과 같은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이런 급류 속에 있는 겁니다. 그럼 이상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나무토막 같은 겁니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 나무토막을 강바닥에 박고 버텨야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급류의 힘이 너무 강해 질질 끌려가기 쉬울 겁니다. 그렇지만 강바닥에 박은 나무토막이 없다면, 우리는 급류의 힘에 저항할 수도 없을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