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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P.50~52
[…] 선전관 양호가 내 숙사로 찾아왔다. 그는 도원수를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나에게 왔다. 그는 임금의 교서敎書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교서를 내밀 때, 나는 그가 사약을 들고 온 의금부 도사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마당으로 내려가 교서 두루마리에 절했다. 양호가 두루마리를 펼쳐서 큰 소리로 읽었다. 임금의 수사는 장려했다.
[…] 지난 번 그대의 벼슬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 종군케 한 것은 역시 나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니리오.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니리오 […]
이것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에게 임금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를 죽여왔다.
[…] 이제 그대를 상복을 입은 채로 다시 기용하여 옛날같이 전라 좌수사 겹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부하를 어루만지고 도망간 자들을 불러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회복하고 요해지를 지켜 군의 위엄을 떨치게 하라. 그대는 힘쓸지어다. 군율을 범하는 자는 장졸을 막론하고 그대의 지휘로 처단하려니와, 그대가 나라 위해 몸을 잊고 나아감은이미 다 겪어보아 아는 바이니 내 구태여 무슨 말을 길게 하리오 […]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라 좌수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무武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번역공부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필사를 하게 된 책이 김훈의 <칼의 노래>다. 필사하느라 읽는 속도는 너무 느리기만 하다. 그저 문체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래도 워낙 문장이 좋다고하니 끝까지 해봐야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일단 다른 책이 없는 한 해보자하는 생각에 그저 묵묵히 했다.
그래서 이제 겨우 50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확~~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윗분들은 그랬나보다. 임금에 대한 이순신의 견해(? 감정?) 너무 공감이 됐다. 물론, 그 시대의 잔인성은 지금 현대에 비할 수 없지만, 그리고 임금에 대한 감정도 조금은 다른지만(현대의 내 입장에서 논한다면, 무섭다고까지는 안할 것 같다. 내 상사가 그정도는 아닐테니.. 나를 곤장치거나 목을 베진 않을테니까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안쓰럽고 답이 없어 짜증났다 정도랄까.
그리고 결국 자신의 결정으로 다 말아먹어놓은 조직을 니가 알아서 하라고 해놓고 너도 답이 없지? (난 이순신처럼 능력자가 아니니까...ㅠㅠ;)라고 동지의식을 느끼는 그런 상사(동지의식이면 그나마 좋게 봐준거다.. 너같은게 나만큼은 할 수 있겠어? 쪽이 더 가깝겠지...) 밑에서 일하다보면, 그런 상사 밑에서 자란 밑의 직원들은 또 판박이다. 답이 없다... 잘난게 없는 내가 보는 못난 이들의 수준은 어찌 되는 걸까?
이순신이 임금의 교서를 받아들이며 다짐하는 부분은 정말 가슴이 아리다. 그는 그 길에 답이 없음을... 그게 소멸될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알면서도 택한다.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여야 마땅'하다라니 어느 누가 그런걸 바라겠는가? 나라면 도망갔을 것이다. 더구나 어차피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으로 찍힌 마당에 그런게 무슨 대수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어려운 길을 자신이 옳다고(아직은 그가 정말 옳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내가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길을 택한다. 옳다라. 도대체 어떤게 옳다는 걸까?
p.53
[''']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길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군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난 감히 말할 거다. '신臣 이李'는 제정신이 아닌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