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9~60. 크롤리[Crawly: '기어 다니는 벌레'라는 뜻의 Crawly와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Crowly로 이름을 바꿈. 크롤린는 또한 20세기 최고의 악마주의자이자 마법의 대가로, 프리메이슨의 사도이며 비틀즈가 존경했다는 인물.]는 언제나 세상이 끝나는 날, 자신이 그 부근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지도 않는 몸이었고 다른 대안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날이 먼 미래이길 바랐다.

사람들이 좋았으니까. 그건 악마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결함이었다.

물론, 그는 직분에 충실했고, 사람들의 짧은 생애를 비참하게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그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봐야 사람들이 스스로 고안해 내는 것들에 비하면 새 발에 피였다. 인간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재능을 타고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겠지. 그들은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세상에 태어나, 그 문제들을 더 악화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역스러움이 널리 퍼진 세상에서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악마적인 것을 찾아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지난 천년기를 거치면서 ‘아래’에다 말하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보쇼, 지금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디스건 판데모니엄이건, 다 문 닫고 이리로 이사하는 게 낫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녀석들이 직접 하고 있고, 게다가 녀석들은 우리가 꿈도 못 꿔본 짓깢지 벌인다고요. 전극에 연루된 일들 말이죠. 녀석들에겐 우리에게 없는 게 있어요. 인간에겐 ‘상상력’이 있다고요. 그리고 물론 전력도 있죠.

어떤 놈인가가 그렇게 쓰지 않았던가. “지옥은 비어 있다. 악마는 모두 여기에 있다”고.  

확실히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능력은 뛰어난 듯 하다. 외려 그런 비참함 속에서 위안조차 얻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선과 악을 구별 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게 있을까도 싶다. 어느 위치에 어떤 상황에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보게되곤 하게 마련인 것 같은데.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존재가 있긴 한 걸까?  

 p 351~352. "[...] 빛과 어둠의 차이점은 전부 어디에 있는지 아니?"
"몰라. 어째서인지 이런 것들은 가르쳐주질 않아. 구체적으로 공식화하기 어려워서 그럴까?"
"전혀 어려운 게 아니야. 만약에 네가 자신과 자신의 이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 네가 갈 길은 어둠이야. 만약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한다면 빛에 가까운거야. 경험 많은 암흑의 주술사는 신참에게 뭐라고 말할까? 이런 아름답고 바른 말일까?"
"그래. 자유에 대해서지. 그들은 모든 이가 삶에서 받을 자격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거라고 말해. 모든 동정심은 모멸적이며, 진정한 사랑은 눈먼 것이며, 진짜 선량함은 무력하며, 참된 자유는 모든 면에서의 자유라고 말하지."
"그건 거짓이지?"
"아니. 그 또한 진실의 일부야. 스베타,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고르지 못해. 진리란 항상 두 얼굴을 갖고 있는 거야. 우리가 지닌 전부란 더 불쾌한 거짓을 거부할 권리야. 내가 신참들에게 어스름의 세계에 대해서 처음에 뭐라고 말해 주는지 아니?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입장료로서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 진실의 일부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은 훨씬 편하지. 백만 배 더 편해. 그들의 모든 고통과 문제와 걱정거리들을 감안한대도, 그조차 존재하지 않는 '다른 존재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지. 인간들은 선택의 문제에 놓이지 않기 때문이야. 그들은 선량한 자도, 악한 자도 될 수 있어. 모든 것은 순간, 주위 환경, 전날 밤에 읽은 책, 점심으로 먹은 비프스테이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지. 이것이 바로 그들을 조정하기 쉬운 이유야. 가장 못된 악인이라도 빛의 편으로 쉽게 돌릴 수 있으며 가장 선량한 인간이라도 어둠 속으로 밀어 넣기 쉬워. 그런데 우리는 선택을 한 거야."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 누군가에게나 주어지는 '선택의 자유'. [나이트 워치]에서 말하는 '다른 존재들'의 선택. 그런데, 난 왜 인간들이 가진 선택의 자유가 '다른 존재들'이 갖게되는 선택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난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어떤 이에 의해 배에 식칼이 꽂힌 타인의 고통보다 커터에 살짝 베인 내 손가락의 고통이 더 큰 것 처럼. 평범한 인간인 나는 '넌 빛이다', '넌 어둠이다'라고 정의를 내려주기 전엔 항상 선과 악을 선택해야하는 귀로에 서게 된다. 그것도 어느게 선이 될지 악이 될지 모르는 귀로에 말이다. 지금은 선으로 보이는 선택도 결론적으로 악이 될 수도 있는 또는 그 반대의 결과에 서게되기도 하고 말이다.   

   p14. "잘한 것이겠지?" 

"자네가 나쁜 일을 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군." 

크롤리는 냉소저으로 대꾸했지만, 아지라파엘[]은 그것이 비꼬는 말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오후 내내 그 일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다고." 

그들은 한동안 비가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크롤리가 말했다. 

"웃기는 건 말이야. 내가 그놈의 사과 문제가 옳은 일은 아니었는지 계속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 악마가 옳은 일을 했다간 진짜 골치 아프게 될 수도 있거든." 그는 천사를 슬쩍 찔렀다. "우리 둘 다 잘못한 거라면 얼마나 웃기겠어?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자네가 나쁜 일을 한 거라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이냐고. 안 그래?"

"별로 우습지 않은걸." 아지라파엘이 그렇게 대답하자 크롤리는 빗줄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우습지 않겠지." 컴컴한 장막이 에덴 동산 위로 내려왔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천둥이 울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악일까? 자유에 의무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의무나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자들에게서 난 한 없는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왜 내가 자유를 즐기면 안되는데? 꼭 책임을 져야 하는거야? 난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것 뿐이라고"라고 처절하게 외쳐대던 친구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와 다른 공간 속에서 여전히 그 자유를 외치며 살고 있겠지만, 어느 순간 난 그 친구의 자유가 너무 버거워 졌던 것 같다. 애초에 감당하겠다고 했던 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자만이었던게 아닐까.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하고 바란 적이 왜 없을까마는 그 친구로 인해 그런 자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자신이 누리는 자유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그 불행이 결국 자신에게 전염되고 혼자만의 자유가 결국 더 큰 불행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나조차도 그 친구가 말하는 자유를 갖고 싶었었다. 그러나 마지막의 그 친구 외침이 내 귀에 아직 선명하게 들려오곤 한다. "왜 행복하지 않은거야! 난 행복해지고 싶어! 난 행복하면 안돼!?" 다른 이들에게 조차 행복해하라고 강요하던 그 친구. 난 아직도 자유의 경계를 제대로 인해하진 못하지만, 자유=행복이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듯 하다. 물론, 자유라는 정의 자체에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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