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었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소가죽 구두)쪽
물렁물렁한 힘이 조금씩 제 몸을 녹이며 건조한 곳들을 적셔 길을 냈던 자리, 얼룩 -(얼룩)쪽
한번도 떠보지 못한 눈과 한번도 뛰어보지 못한 심장과 물 한 모금 먹어본 적 없는 노란 부리와 똥 한번 싸본 적 없는 똥구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뒤섞야 응고된 계란 프라이-(계란 프라이)쪽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짐만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소)쪽
벙어리장갑처럼 뭉툭한 혀
그가 수박씨 다음으로 내뱉은 말들-(혀)쪽
비둘기들은 검은 먼지와 매연을 뒤집어쓰고 언제나 아스팔트를 보호색으로 입고 다녀서 상계역에 비둘기들이 사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상계동 비둘기)쪽
둘은 지휘봉처럼 떨리는 팔을 힘차게 휘둘렀고
그들은 때로 너무 격앙되어 상대방 손과 팔 사이의 말을 장풍으로 잘라내고 그 사이에다 제 말을 끼워 넣기도 하였다. 나는 그들의 논쟁에서 끓어 넘친 침들이 내 얼굴로 튈까 봐 자주 움찔하였다.-(수화)쪽
습관화된 적개심이 욕이 되어 튀어나왔다.
아무리 급해도 도저히 빨라지지 않는 걸음이었다.
속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본 걸음이었다.-(무단 횡단)쪽
눈물은 눈알을 밀어낼 듯 쏟아져나왔으며-(재채기 세 번)쪽
방바닥이 발바닥에 와 닿지 않는다.-(다리가 저리다)쪽
작살 같은 햇살을 꽂아본다. 액셀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에 익숙한 발바닥으로 흙을 맛나게 핥아본다. -(주말 농장)쪽
갑자기 그 위에 엉뚱한 미래가 겹쳐보였다. 어린 토끼 한 마리를 가슴에 안아보니 뜻밖에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 속에서 떨고 있었다. 토끼의 두려움은 내가 쓸데없이 걱정한 미래와 상관없이 오로지 지금 내 팔에만 집중되어 있었다.-(토끼)쪽
피리 구멍 같은 코는 얼마나 정확하게 바람을 조절하던지 배는 큰북처럼 얼마나 탄력 있게 진동하던지
숨 쉴 겨를도 없이 말들이 쏟아져나왔으나 어느 발음도 이에 깨물리거나 혀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수다 예찬)쪽
상한 데 없는 맑고 어린 웃음이 경로당에서 나온다.-(전자레인지)쪽
그 나이테의 무늬 속에는 생명이 바삐 드나들던 맑은 소리와 함께
아랑곳하지 않는 저돌적인 생명,-(가로수)쪽
말린 명태들은 간신히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물고기보다는 막대기에 더 가까운 몸이 되어 있다 -(명태)쪽
막힘 없이 춤추는 물로 건축한 얼음의 결정체처럼
겨울 하늘에 검은 점으로 촘촘하게 박혔다. -(교동도에서)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