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 들었다 꾼 꿈처럼 짧았지만 어렸을 때 대통령을 꿈꾼 적이 있다. 대놓고 남동생과 나를 차별하는 외할머니 때문에 `나 원 참 대통령이라도 되던가 해야지` 그랬다. 그전까지는 서문시장 옷장수 아저씨랑 결혼해서 매일매일 다른 옷을 실컷 입는 게 꿈이었던 평범한 아이였는데 외할머니의 차별이 세상을 바꿔버려야겠다는 패기를 품게 했다.

외할머니의 논리는 딸내미는 시집 가면 그만이지만 아들내미는 조상님 제사도 지내주고 집안의 핏줄을 이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할머니의 예측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다. 시집 가는 게 아니라 장가 가는 세상이 될 줄은 아마 모르셨을 거다. 더구나 지금 그 딸내미는 아직 이 집에 붙어있고 정작 아들내미가 진작에 남의 집 사위가 돼 버렸다는 걸 외할머니는 보고 계실랑가 모르겠다.

얼마 전 외할머니 제사를 지낸 밤에 꿈에 외할머니가 나온 건 아마도 살아생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구박한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꿈에서 외할머니는 마치 살아계실 때 모습 그대로 방윗목에 조자 앉으셔서는 엄지에서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현금뭉치를 들고 있었다. 방 안엔 할머니와 나 둘 뿐이었는데 내게 용돈을 주시겠다는 거다. 얼핏 보니 죄다 천원짜리인 것 같아서 꿈임에도 맘속으로 저거 얼마 되겠나 그랬는데 자세히보니 수표가 엄청 많았다.

꿈에서 깬 나는 외삼촌에게 가까운 복권방이 어딘지 물었다. 확신에 찬 내 목소리에 온 식구가 절대 복권 추첨날까지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지만 슬프게도 그날은 일요일이라 문 연 곳을 못 찾았다. 하지만 꿈이 워낙 직관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잊지 않고 다음날 복권을 샀고, 이제 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꿈에서 할머니는 정작 내게 줄 돈을 세고만 계셨지 아직 건네주진 않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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