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집엔 창고처럼 짐만 넣어놓고 오랜만에 왔더니, 버스에서 내려 집을 찾아갈 때 지도앱이 필요했다. 여행지에서 숙소 찾아가듯 지도 들고 캐리어 들고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현관 비번이 생각나지 않았다. 부동산 담당자가 보내준 예전 문자를 찾아냈지만 비번 앞뒤로 뭘 더 눌러야만 열리는 것 같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 뭘 눌러도 현관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이사한 날 도와준 이에게 우리집 현관을 어떻게 여는지 물어봐야했다.

소설창작수업을 통해 단편을 썼고 여행 가서 퇴고를 마친 소설이 담긴 문집이 나왔다. 이렇게 사람이 여럿이 모이는 자리는 오랜만이다. 대구 있는 동안에 한 주된 발화는 빠지지 않고 간 크로스핏 수업에서 옹알이 하듯 뱉어낸 신음소리와 퇴근한 엄마와의 일상적인 대화들-엄마는 자꾸 뭘 먹으라고 하고 나는 엄마 때문에 다이어트를 못한다고 원망하는 루틴-이 주였다. 내가 이야기하는 법을 까먹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요즘 유행하는 듯한 자몽 섞은 소주를 맛봄으로써 나도 그거 먹어보기는 했는데 역시 별로더라고 말할 기회를 획득한 밤이었다.

엄마에겐 내가 쓴 소설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선생님이 쓴 소설을 보고 우셨다고 한다.

내일은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부케를 한 번 더 받는다. 뭐, 내일의 부케는 내일의 내가 받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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