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맹
손창섭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손창섭 ㅣ 유맹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이런 음침한 소설이 실리다니..
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비오는 날',
도덕이라는 가치관 자체에 물음표를 마구 던지는 '생활적'..
암튼 손창섭의 이름 석자 앞에는, '문제 작가'라는 머릿말이 붙고,
손창섭의 문학을 평하는 사람들의 글에는 늘
불구, 비도덕성, 니힐리즘, 허무주의, 병, 무기력, 우울이라는
단어들이 가득, 가득하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장편소설 '유맹'은, 의외라는 느낌이었다.
 
방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유맹'이라는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우선 손창섭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선, 손창섭은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적이 한국인 작가다.
정식으로 일본인이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인데,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고, 전후에는 남한에서도 생활했고,
아내는 일본인이고, 일본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에 손창섭은
가족들과 함께 일본에 가버렸는데,
지금은 그냥 '행방불명' 찾을 수가 없다.
이번에 '유맹'이라는 소설을 내면서 출판사에서는,
인세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에
'손창섭을 아시나요' 뭐 이렇게 손창섭을 찾고 있다고도 한다.
손창섭은, 무정부주의자라는 소문도 있다.
허무주의가 곧 무정부주의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서인지,
실제로 그렇게 얘기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손창섭이 한국을 버리고 간 곳이 왜 하필이면,
일본인지, 그냥 아내가 일본인이어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유맹'은,
손창섭이 일본에 가서 어떻게 살았나를 짐작하게 해준다.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거다.
 
일본인 아내와,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일본에서 살고 있는 '나'와
일제강점기에 돈벌이를 위해서 일본노역자로 와서
아예 정착해버렸지만, 한국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최원복 노인의 집안 이야기가 큰 줄기이다.
 
그리고, 최원복 노인의 집안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참으로 다양한 재일한국인의 모습이 나온다.
 
재일한국인이지만 일본에 사는 것이 더 편해져버린 사람,
늘 한국에 돌아가기만을 꿈꾸는 사람,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의 혼란을 느껴서
오히려 한국인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사람,
어느 쪽에서 정 못 붙이는 사람,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 완벽하게 일본인이 되고 싶은 사람,
한국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당시 남한에 대한 잘못된 홍보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정말, 다양한 군상들이 나온다.
 
그리고 결국 그 중의 몇몇은 그런 혼란을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스스로를 죽이거나,
꿈을 이루거나,
꿈을 이루지 못한채로 끝이 나는데,
다른 단편에서처럼 굉장히 허무하거나,
그렇다고 굉장히 밝고 명쾌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은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이다.
 
손창섭의 분신이라고 짐작해볼 '나'는,
한국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멸시에 흥분도 하고,
냉정하게 재일한국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일본인 아내와 일본에서 사는 것이 편하다고 느끼면서도,
한국을 무작정 그리워하기도 하는 인물이고.
또,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은연중에 굉장히 많이 드러내기도 한다.
'여성답지 않게'라든지, '여성으로서는 의외로'라든지,
전후상황, 특히 재일한국인의 입장에서 처한 현실을
굉장히 냉정하게 꿰뚫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굉장히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인 모습을 흘리기도 한다.
 
마치 전후의 모든 정신적, 신체적 불구자들,
그리고 '불구'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이야기방식에 매력을 느껴서
유맹을 집어들게 된 나로서는,
정말, 의외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긴 했지만-
암튼 '유맹'은 기록의 의미,
그리고 공중으로 사라진 손창섭이라는
중요한 소설가를 이해하는 자료로서의 의미만으로도
충분한 소설이다. 그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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