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_ 줄리엣(Juliettttttt)


 

2013년 3월 30일 토요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극이 시작되기 전 얇은 장막 뒤로 몇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사라지고 화면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몇 문단이 뜹니다. 덕분에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리고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이 앞에 앉은 사람들의 실루엣을 부각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홍성민의 줄리엣 영문 제목에는 t가 7개입니다. 아마 2010년 처음 공연됐을 때는 5개였겠지요. 그 때는 줄리엣이 5명이었고, 지금은 7명이니까요.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홍성민 연출가는 줄리엣이 5명에서 7명이 된 이유는 공연할 무대가 넓어졌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농담 같은 대답이었지만 연극은 공연장의 공간에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에 50명의 줄리엣이 등장하는 줄리엣(Julie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냐는 질문에도 역시 가능하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저 역시도 아마 연출가에게 공간과 제작비만 주어진다면 아마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줄리엣에 등장하는 줄리엣 7명은 모두 과거에 한국에서 공연됐던 주인공들입니다. 고전 그대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경성시대 댄스홀을 배경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마치 춘향이 같은 모습의 고전으로도 만들어졌었나 봅니다. 그렇게 공연됐던 7개의 서로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7명의 줄리엣과 그녀들이 입었던 의상들을 빌려오거나 재연해 그녀들이 한꺼번에 다시 연기하게 합니다.


 

배경을 서로 달리 하는 줄리엣들은 성격에서도 두드러지는 차이를 보입니다. 극에서 인물의 성격은 주로 말투나 행동, 목소리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해 한복을 입히거나 근대를 배경으로 해 미니드레스를 입힌 3명의 줄리엣들의 개성이 두드러졌습니다. 나머지 4명은 사실 의상도, 목소리도, 성격도 비슷비슷해보였습니다만 이것은 홍성민 연출가의 의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정말 말 그대로 기존에 공연된 작품 속에서 인물들을 거의 그대로 빌려온 것이니까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캐릭터들이 비슷비슷해서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다시 극을 다듬는다면 좀 더 다양한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줄리엣 하나하나와 그녀들의 의상, 연기를 보는 재미가 이 극의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 매력이 다양할수록 더욱 재미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홍성민의 줄리엣은 지금 이대로도 또 어떤 부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7명 중 4명이 입는 옷의 분위기나 성격이나 대사가 비슷했다는 것은 그만큼 원작에 충실한 해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많이 공연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이고, 이 이야기를 써서 알린 것은 영국의 세익스피어인데,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또 대부분 구전들을 정리해서 쓴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탈리아 한 마을의 이야기가 흘러흘러 영국인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이것이 세익스피어에 의해 정리되어 고전으로 남고 또 이것을 전세계 수많은 예술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하고 재공연하고 있습니다. 홍성민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만든 이유입니다.


 

이 작품은 곧 유럽에서도 공연된다고 합니다. 그 때는 한국인 배우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줄리엣들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말을 하고, 창을 하고, 일본말을 하고, 영어를 하고, 불어를 하는 줄리엣들이 동시에 나와 각자의 연기와 대사를 하면, 동시에 같은 언어의 대사를 할 때 만들어지는 소리와는 또 다른 소리들이 만들어 질 것 같습니다.


 

7명이 나오기 때문에 각 여배우들은 서로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펼칩니다. 누가 먼저 등장하고 누가 가운데에 서고 또 누가 더 예쁜 의상을 입고 누구 목소리가 더 크냐에 따라 관객의 시선이 쏠리기 때문이죠. 각자의 취향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서로 다른 대사들을 뱉고 있는데 누구 하나를 정해서 따라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어떤 관객은 그 상태로 소리의 뭉침을 들었을 것이고, 또 어떤 관객은 그 중 특정 인물을 처음부터 따라갔을 것이고, 또 다른 관객은 매 장면마다 서로 다른 인물을 정하고 그 인물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번 공연을 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해외에서 공연된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더라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는 언어는 듣고 나머지 언어들은 배경음으로 삼는 것이지요. 그리고 뜻은 몰라도 그 때 각 배우들은 비슷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으니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모두가 아는 것이기도 하고요.


 

원래 연극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서 배우들의 연극톤 발성이나 극적인 연기 자체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전체의 완결성이나 작품성이 대단하다는 인상은 솔직히 받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어떤 완결성이나 작품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품 같습니다. 발상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배우들도 연기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예술이라는 건 때로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가치를 가집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이렇게도 보여줄 수 있구나 하는 것 자체가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영감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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