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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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일곱 편의 작품들 가운데 이 책 이전에 읽어본 작품이 있습니다. 황정은의 <양산 펴기>입니다. 이 말은 제가 원래 좋아하거나 관심 갖는 작가가 황정은이라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읽어본 작품이라서 이 작품집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처음 듣는 노래보다 반복해서 들은 노래가 더 좋은 것처럼요. 정리하자면 이 작품집 가운데 역시 저는 황정은의 <양산 펴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황정은_ 양산 펴기

이 단편의 백미는 시위구호와 호객멘트가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요즘 예능을 보면 서로 말 할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자막 없이 듣기만 해서는 해독이 불가할 정도로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가 말하죠. 마이크 물리니까 한 명씩 좀 말하자고. 실제로 세상은 마이크가 동시에 물리는 곳 같습니다. 누군가가 말하면 다른 이가 말을 멈추고 들어주는 곳이 아닌 겁니다. 그냥 동시에 각자가 자기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황정은이 이 단편에서 바로 그런 세상의 단면을 절묘하게 잡아낸 것 같습니다. 


이웃돕기 자선바자회와 노점상연합, 공무원노조, 철거민연합이 생존권을 외치는 집회에서, 장어를 먹고 싶어하는 녹두에게 매몰차게 말한 것이 못내 걸려, 꿀 같은 하루 휴가를 반납하고 양산 겸용 우산을 판매하는 이 젊은이의 모습이라니. 이 사람의 사정과 저 사람의 사정들을 굳이 줄줄줄줄 설명하지 않고 간단한 상황묘사와 대화만으로 보여주는 황정은의 수법이라니. 그리고 잠꼬대를 하는 주인공과 그 잠꼬대까지를 궁금해하며 곁에서 듣고 있는 녹두와의 잠결 대화라니. 


아르바이트라고요 아저씨. 단 한 줄로 끝난 작가노트처럼 황정은 작가는 구구절절 이게 삶이고 그래서 처량하거나 쓸쓸하기도 하고 뭐 이렇게 설명하는 대신 그냥 '누군가의 세상살이라고요 독자여러분'이라고 무심하고 덤덤하게 쓰윽 내뱉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쓰윽 내뱉는 말을 냉큼 주워담아야 할 우리 독자들은 '소설일뿐이라고요 여러분' 할 만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지는 못하는 거고요.


손보미_ 폭우

폭우는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는 불행을 맞이한 한 부부와 그 부부의 이야기와 교차하는 다른 부부의 이야기가 교차합니다(앗 이것은 일종의 반전이라서 스포일러일 수 있지만 읽다보면 잊으실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는 불행을 맞이한 부부의 현재 이야기와 다른 부부의 과거 이야기가 교차합니다. 


역시 이 안에도 고통이 있고 불행이 있고 '불행'이라기보다는 '행복하지 않음'으로 써야할 것 같은 권태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그래 뭐 그렇지' 하는 느낌으로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손보미의 말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담담합니다. 문장들은 너무 빨리 마침표로 마무리돼서 냉정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작가들의 단편 소설들은 대부분 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 무심해보이는 말투 등이 거의 대부분의 젊은작가들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이런 말을 할 때는 항상 요즘 모든 젊은작가들의 모든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많은 작가들의 수준을 고르게 해주는 장치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꼭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미월_ 프라자 호텔

구글에서 '프라자 호텔'을 검색해봤습니다. 이제는 '플라자 호텔'이었습니다. 리뷰를 클릭해보니 첫 페이지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작성한 후기가 더욱 많았습니다. 첫 페이지에 보이는 평은 대부분 좋았습니다.


프라자 호텔은 아마 이런 곳일 겁니다. 과거에는 프라자 호텔이었던 곳, 리노베이션 후 플라자 호텔이 됐고 현재 특급호텔이랄 만한 곳은 아니지만 과거 어느 연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곳이었던 장소 말입니다. 알고 보면 현재도 일정 영향을 미치고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역시나 이 부분도 일종의 반전이므로 더 이상의 말은 아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단편에는 윤서로 불리는 여자와 아내로 불리는 여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가 그 날 약속된 그 장소로 갔는지는 윤서도, 아내도 모릅니다. 단지 분명한 것은 그 때의 나, 그 때의 그녀, 그 때의 우리가 지금의 나나 그녀, 우리와는 조금 다를 수도, 전혀 다르다는 것이 아닐까요. 설사 그 때 그들과 지금의 그들이 꼭 같다고 하더라도 그걸 증명할 수 있을까요.


김이설_ 부고

엄마가 죽었다는 부고를 엄마에게 전해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엄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전해줬다는 사실을 편견 없이 말 그대로 이해하고 나면, 사실 이야기는 뻔합니다. 여자에게 엄마가 2명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그 안에 담길 얘기도 어느 정도는 짐작 가능하니까요. 작가 역시 기대와 다른 이야기 진행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낳아준 엄마와 길러준 엄마, 나를 학대한 아빠, 상처 받은 나, 그걸로도 부족해 더 심각하게 꼬인 가족사들,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어떻게 보면 막장이라 불리는 TV드라마의 단골 소재를 그대로 따른 그렇고 그런 소설입니다. 오히려 TV드라마보다 수위가 높고 꼬인 정도도 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은 막장이야를 외치며 채널을 돌릴 수만은 없습니다. 김이설 작가가 꾸준히 들여다보고 써 온 상처들, TV드라마에서 나오면 막장이라고 할 만큼 익숙하고 진부한 소재지만 정작 그런 일들을 실제로 겪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진부하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고통들을 진심으로 쓴 것이니까요. 예전에도 김이설 작가의 장편을 읽고 비슷한 감상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눈 돌리지 않고 끈질기게 써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정소현_ 너를 닮은 사람

스릴러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계속해서 만나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나는 너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내가 너에게 저지른 잘못을 너가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한 때 너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이였습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싫어해서 '사람의 적은 사람'이라고 변형시키고 싶은 저이지만 이럴 때 보면 여자의 적은 여자인 것 같습니다. 나는 너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니까요. 그것이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너의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너의 능력,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네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네가 꿈꾸는 삶, 그 모든 것을 빼앗지만 결국 끝까지 그걸 지키지도 못합니다. 


이후의 삶은 고통, 너가 나타난 이후로의 삶은 공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가장 적나라한 치부를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이 나의 가장 가까운 곳을 배회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조여옵니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을 들키고 난 후가 가장 후련합니다. 그나마도 나는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것, 너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빼앗아버리지만요.


김성중_ 국경시장

환상소설입니다. 강을 건너면 기억을 팔아 국경야시장에서 파는 어떤 것과든 교환가능한 화폐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코와 로나와 나는 모두 다릅니다. 별 고민 없이 어차피 기억도 나지 않는 출생 직후의 기억을 파는 주코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파는 로나, 별로 기억을 팔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너무 갖고 싶은 것이 생기자 가장 행복했던 기억 직후의 기억을 파는 나. 잘은 모르지만 다른 집단에서 어떤 3명을 무작위로 이 곳에 데려다놔도 대략적으로 이런 패턴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것이 소설의 역할이랄까, 기능이겠죠.


작가는 <국경시장>에서 배낭여행에서 만난 젊은이들, 그들이 가진 각자의 상처, 이국의 낯설음과 현실세계와의 이질성, 국경시장이 열리는 만월이라는 시간적 설정 등 낭만적인 것들을 끄러모아 국경시장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그런데 막상 다 읽고 나면 좀 허전합니다. 단편이라는 장르적 한계가 분명 있겠지만 뭔가 꽉 조이는 힘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등장하는 젊은 주인공들처럼 상처가 있으나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쓰여져 깊이 공감이 되지 않고, 잘 쓰여졌으나 다소 가벼운 로맨스소설을 읽은 듯합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가 명확히 있었다면 제가 그것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걸지도 모릅니다.


이영훈_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이영훈의 단편은 저의 개인적인 기억 때문에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화장실은 급한데 눈 앞에는 화장실이 없고, 찾아가면 마침 사정으로 이용할 수가 없고 하는 상황 말입니다. 아마 누구나 겪어본 일이겠지만 저에게는 정말로 흡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모든 상황까지를 원망하고 누구에게든 의지하게 되는 남자의 심리나 상황묘사는 참으로 그럴듯했습니다.


소녀시대 광고판이나 나를 화장실까지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인도하려 했던 그 경찰이 마지막에 한 행동을 이 이야기의 주요 맥락으로 연결짓지는 못했습니다. 소녀시대 광고판은 그저 소변이 마려운데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심심해서 가미된 소재 같이 느껴졌습니다(물론, 그 날 그 장소에 가게 된 일종의 원인인 선을 통해 만난 평범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긴 했습니다). 마지막에 커다란 외침을 내뱉은 외손 경찰의 존재 역시 다소 관념적으로 삽입된 인상을 받았습니다.


재밌긴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G20 정상회의와 맞선을 봐서 어떻게든 결혼할 만한 여자를 찾는 자신의 모습과 또 자본주의 시대의 아이돌이라는 소재와 길 잃은 자신을 안내하는 경찰의 정체와 현실 등, 단편 소설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싶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어쨌든 젊은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이렇게 읽는다는 것은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작가 세계에서는 젊다는 기준이 현실에서보다 더욱 관대하다는 것은 큰 위로입니다. 


동시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며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지를 이렇게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제가 뭐라고 이렇게 후기를 혼자만의 공간이 아닌 그래도 몇 명은 와서 볼 이런 공간에 남길 수 있다는 것, 다 고통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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