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바다 냄새 쪽빛문고 7
구도 나오코 지음, 초 신타 그림,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은 이렇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알라딘 페이스북 관리자님이 올린 이 글을 본 겁니다. 파란색 표지와 길지 않은 이 글을 읽고 나니 가슴에 파란 바닷물이 차 출렁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슴에 바닷물이 출렁출렁, 파도가 찰싹찰싹, 하는 기분을 못 참고 책을 사서 읽어보니 그 찰싹, 소리는 "잠 못 이루는 돌고래가 밤 산책을 나"와 "바로 누우면서 꼬리로 물을 두드린 소리"였습니다(아아아아). 철썩, 철썩 소리가 무슨 소리였는지를 아는 기쁨은 직접 책을 읽을 분들에게 양보할게요.

 

이야기는 잠 못 이루던 돌고래가 밤바다를 산책하다가 커다란 검은 벽을 마주치는 데서 시작합니다. 고독한 걸 즐기지만 이런 날이면(이런 날이 어떤 날인지도 직접 확인하시기를 :) 친구와 맥주를 마시고 싶어하는 검은 벽입니다.

 

입매가 야무진 은빛 작은 돌고래와 눈빛이 다정한 새까만 커다란 고래의 우정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시작'이라는 말은 어쩌면 어색합니다. 우정이라는 것은 도처에 원래부터 존재하고 단지 이 친구와 저 친구가 언제 만나느냐만이 관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 신타라는 작가의 그림이 그려진 표지도 예쁘지만 표지를 벗겨봐도 참 예쁩니다. 표지를 벗기는 순간, 마치 고래와 돌고래가 산책을 하거나 맥주와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하거나 잠이 드는 바로 그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저 파란 표지를 넘기면 표지와 꼭같은 느낌의 이야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고래와 돌고래의 이야기가 주축이지만 중간중간 시와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고래의 시도 적혀 있고 돌고래의 운동기구 리스트도 있고 돌고래와 고래가 쓴 편지들도 있고 돌고래가 뽑은 고래 작품 베스트 10도 있습니다.

 

돌고래는 너무 훌륭한 운동선수이고, 고래는 으아아아 정말 멋진 시인입니다. 고래가 쓴 시들을 읽으면서 혼자서 하하하하 웃기도 하고 코끝이 찡해져서 찔끔거리기도 합니다. 정말 아름다워서 '아아아아 너무 아름다워!'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집니다. 실생활의 구어체 대화에서 '아름답다'는 말 보다는 '예쁘다'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고래의 시를 감상하고 나면 또 고래와 돌고래의 대화를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아아아 너무 아름다워!'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립니다.

 

책의 분량 때문에 고래가 쓴 소설은 전문을 읽어볼 수 없었지만 돌고래 선정 고래 작품 베스트 10에서 대략의 줄거리와 제목 정도는 엿볼 수 있습니다. 고래가 쓴 모험소설에 등장하는 악당이 너무 나쁘지가 않아서 돌고래가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새로운 문학의 장르도 탄생합니다. 일명 '운동회소설'입니다.

 

 

혼자 깔깔깔깔 아하하하 웃습니다. 고래의 메모장에 '책갈피, 다시마 숲에서 따 올 것.'이라는 메모를 훔쳐볼 때나 태양에게 '불가사리는 못 됐어'하고 고자질하는 산호나 '나 오징어를 사랑하게 됐어'하고 고백하는 문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처음엔 좋은 구절에 줄을 치며 읽고 너무 좋은 걸 나누고픈 마음에 페이스북에도 옮겨 적고 하다가 곧 포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줄긋지 말 걸, 안 그은 부분이 아쉽고 그렇다고 모든 구절에 다 줄을 긋자니 괜한 짓 같습니다. 모든 이야기, 모든 에피소드, 글자 하나하나를 다 마음에 담고 싶습니다.

 

입을 열면 그 안에 소중한 것들이 다 들어있는 고래처럼 이 책의 모든 글자와 그림과 행간의 비어있는 공간과 행간의 꽉 찬 공간까지 빠짐없이 담고 싶습니다. 엄마가 퍼준 밥처럼 꾹꾹 눌러서 다 담고 싶습니다.

 

 

책띠에는 돌고래가 고래에게 쓴 편지가 적혀 있습니다. 편집자님이 이 책의 수많은 문장들 중에 과연 어떤 걸 책띠에 옮겨적을까를 결정하면서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저라면 머리를 쥐어뜯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각자의 친구를 떠올릴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마침 오랜 친구를 만나 책을 선물하고 집에 돌아와 책을 마저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또 까똑으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예전엔 까똑이나 문자를 많이 하게 되면서 전화로 목소리 듣는 일은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이게 좋기도 합니다. 우선 더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되고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으니까 다시 보고 싶을 때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고래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돌고래는 기분이 좋아지고, 고래는 돌고래 머리를 씀다듬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음에 남은 바닷물의 일렁임을 더 써 봐도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저는 이만하고 친구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직 나가보지 않았지만 밖은 날씨가 좋다고 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