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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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책이다. 이상한 책을 읽으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상한 책이 왜 이상한 책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상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이겠고, 그래서 지금 쓰는 이 이야기는 서평이라기보다는 그냥 경험담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10 8 13일이고 다 읽은 것은 2012 10 16. 무려 2 2개월에 걸쳐 책을 읽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서두와 인물들과 궁금한 내막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신나게 책을 읽어 내려가지는 못했다. 조금은 낯선 배경들과 이름들이 주는 무게의 영향이었나.

 

읽기 시작한 책이 잘 안 읽히는데도 끝까지 읽고 난 후 다른 책을 보려고 하면 책 읽기가 조금은 숙제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일단 내려놓고 다른 책도 열어보곤 했다.

 

그 해 10,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최종면접이 있었다. 현재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면접관이 물어봤다. <광대 샬리마르>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운의 땅 카슈미르에 대한 이야기와 그 땅에서 시작된 비장한 복수극에 대한 이야기. 그 면접에서 떨어졌고, 사상검증에 대한 실제의 피해경험과 그로 인한 피해의식으로, 어쩐지 <광대 샬리마르>라는 이 책과 살만 루시디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논리적으로 연결할 수 없어서 분명하게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로 거의 2년 가까이 이 책을 이어보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런 감정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년 후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때 그 이상한 경험을 한 것이다. 일반적인 사건의 형태로 겪은 일이라기보다는 감정적 경험에 가깝긴 하지만, 마치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책의 세월을 함께 겪은 것 같은 강렬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광대 샬리마르>는 광활한 공간과 짧지 않은 시간을 다룬다. 인도 카슈미르 지방 일대와 1990년대의 로스앤젤레스가 주 배경이다. 광대 샬리마르가 막 연애를 시작했던 풋풋했던 시절부터 전 주인도 미국대사 막스 오퓔스의 운전기사가 되어 나타나고, 이후 인디아 오퓔스가 다시 카슈미르에 당도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인도 중에서도 카슈미르, 미국 중에서도 로스앤젤레스라는 구체적인 공간이 드러나있음에도, 몇 대에 걸친 가문의 역사를 다룬 우리나라 대하소설들에 비하면 어쩌면 짧은 시간임에도, 흔히들 이 작품을 평할 때 쓰는 마술적 리얼리즘때문에 어쩐지 더 넓고 긴 시공간을 관통해온 기분이 든다.

 

바로 그 기분이 내가 실제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해 읽기를 끝마치기까지 걸린 2 2개월이라는 시간과 겹쳐져 마치 내가 이 책 속에서 그 인물들과 그 시간을 살아낸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했다.

 

광대 샬리마르와 그의 영원한 사랑 부니, 막스 오퓔스와 인디아 오퓔스 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개인사들은, 그 당시 역사와 오묘하게 맞물린다. 미국의 대 테러리즘 정책 하에 특히 제3세계에서 행해진 수많은 작전(?), 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종교적 갈등과 일시적인 화합, 이후 인도군과 반군 간의 잦은 충돌은 작은 파치감 마을의 평온을 완전히 뒤흔들어놓고 모든 것이 불행과 파국을 향해 교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결국 이 커다란 역사적, 세계사적 프레임은 그저 젊고 발랄한 한 개인인 인디아 오퓔스에게 어느 날 갑자가 충격적이고 불행한 사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의 엄마는 왜 저렇게까지 망가졌을까, 나의 아버지는 왜 이렇게 죽어야 했을까 하는 고민과 번뇌는 일시에 폭발하는 형태를 취하긴 하지만, 그저 자연인으로서의 인디아에게는 결과로 드러난 이 비극 이면에 얼마나 많은 개인들의 희생과 역사의 소용돌이가 존재하는지를 우리 독자들은 안다. 결국은 인디아도 알게 된다.

 

언젠가 올가 시메오노브나는 사랑이란 본래 슬금슬금 기어 들어오는 거라고 경고했다. "고놈은 네가 보고 있는 곳에서 다가오지 않는단다. 네 왼쪽 귀 뒤에서 슬그머니 기어 올라와 돌멩이처럼 냅다 머리를 후려칠 게야."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인디아가 고통 속에 그 많은 진실들과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또 사랑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노만(광대 샬리마르)과 부니의 사랑에서 출발했는데(또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복잡한 역사적 맥락에서 출발했을 텐데), 인디아는 그 비극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는 와중에도 사랑이라 생각되는 감정을 맞닥뜨린다.

 

올가 시메오노브나(책 읽기가 힘들었던 요인 중 하나가 소리 내어 몇 번을 읽어보지 않으면 익숙해지지 않는 이름들이기도 했다)가 말한 것처럼, “왼쪽 귀 뒤에서 슬그머니 기어 올라와 돌멩이처럼 냅다 머리를 후려치는 데에는 도리가 없으니까.

 

"저이는 사는 데 지쳤어. 죽음이 참 잔인도 한 것이, 우리 어린애들이나 한창때인 남정네, 여자들은 잘도 데려가면서 정작 매일같이 자기한테 오라고 비는 사람 소원은 무시한다니까."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한 몸이라고 했던가, 불멸의 사랑이었어야 했을 사랑에서 비롯된 비극은 이렇게 수많은 죽음과 죽음충동과 죽음에 대한 욕망을 낳고, 결국 광대 샬리마르와 인디아는 또다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만이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그야말로 폭력적인 현대사와 비극적인 개인사가 복잡하게 얽힌 대서사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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