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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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냄새 같은 것도 흘리지 않았고, 한 겹의 주름도 더는 그 자리에 남긴 것이 없었다.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머물렀다.

[대니 드비토] 중-49쪽

가혹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뭐가 가혹해.
예를 들어, 네가 죽어서 나한테 붙는다고 해도 나는 모를 거 아냐.
모를까.
모르지 않을까.
사랑으로, 알아차려봐.
농담이 아니라, 너는 나를 보는데 내가 너를 볼 수 없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쓸쓸하겠지.
그거 봐. 쓸쓸하다느니, 죽어서도 그런 걸 느껴야 한다면 가혹한 게 맞잖아.

[대니 드비토] 중-57쪽

애매한 것을 외우다보면 외로운 것도 애매해지지 않을까. 세 개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 애매한 것을 멍하게 외우며 떨어지는 모습이란 아름답디 않다. 아름답다거나 아름답지 않다거나 봐줄 누군가도 없으므로 아름답지 않은 채로 떨어진다.

[낙하하다] 중-66쪽

몸이고 보니 괴로우면 울었다. 영물이라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운다고 사람들이 이 몸을 쫓았으나 말하자면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압도적으로 이상하게 우는 존재란 인간이라고 이 몸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쫓겨다니는 것이 이상하고 분했다. 밤이고 낮이고 인간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묘씨생] 중-124쪽

파씨는 어제저녁에 추웠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추울 예정입니다, 아저씨도 춥습니까, 거긴 춥습니까, 세계는 춥습니까,

[파씨의 입문] 중-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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