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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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법에 따르면 모든 씨앗에는 탄생 순간 별들의 위치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싹이 나면 농작물들은 자연스레 특정한 별과 직접 연결돼 그 에너지로 성장한다는 것이었다.......(중략)......아저씨만 아는 우주의 비밀 중에는 사과는 목성의 기운으로, 자두는 토성의 기운으로 자란다는 사실도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쩐지 사과는 목성을, 자두는 토성을 닮은 것도 같았다. 자두의 테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저씨는 죽은 땅을 살리는 증폭제라는 걸 만들었다. 예컨대 톱풀꽃 증폭제는 6월 20일경 꽃을 채취해 사슴 방광 속에 넣어 처마 밑에 걸어놓았다가 9월에 땅속에 묻어 다시 육 개월을 둔 뒤......-141쪽

"치료법은 아니야. 병이라고 꼭 치료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병을 달고 산다는 말도 있잖아. 병도 생명의 일부야."-143쪽

"그게 바로 이해라는 것이지. 이해란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야."-164쪽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너는 이미 온전해. 우린 완벽하기 때문에 여기 살아 있는 거야. 생명이란 원래 온전한 것이니까."-184쪽

이따금 출판사에 들렀다가 돌아갈 때, 형이 나를 살짝 안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전기 정도가 아니라 꽃향기를 내뿜는 폭풍에 맞서 혼자 버티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단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버티기는 하지만, 왜 그런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폭풍에 맞서 버텨야만 하는지 이해되지도 않고,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심정이랄까.-185쪽

중학교 1학년 때 과학선생님을 좋아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멀리서 스커트를 입고 걷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뒷줄의 아이들이 스커트 아래쪽으로 거울을 밀어넣어 그 속을 들여다보려다가 들킨 뒤로 선생님은 바지만 입고 출근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원망스러웠다.-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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