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빛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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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나 종교서적을 보면 죽음은 별 것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가고 있으며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산화라는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아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이번 생에서의 인연이 다음 생에서의 인연으로 이어진다며 괜찮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철학자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지고,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음식을 먹으면서, 혹은 웃고 이야기하면서 난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 많이 먹고, 웃고, 이야기하면서 상주의 슬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거니까 먹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들어서 어느 순간부터 할 수는 있게 됐지만 여전히 하면서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도 든다.

 

또 어떤 사회는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지만 난 그냥 평범한 한국사람이니까 죽음은 여전히 생경하고 불편하고 무엇보다 싫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도 싫지만 아는 사람의 죽음은 더 싫고 아는 사람의 죽음도 싫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정말 끔찍하다. 아직 나는 제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중 가장 끔찍한 것은 바로 자식의 죽음이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게 만든 존재, 바로 나로 인해 탄생한 존재, 그리고 이제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존재가 바로 자식이므로 부모나 형제, 친구의 죽음과는 어떻게 보면 비교할 수 없는 아픔과 상실감을 안긴다.

 

[오래된 빛] 역시 자식의 죽음을 시작으로 필연적으로 얽힌 사람들을 찾아오는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래된 빛]을 읽은 후 보게 된, 자식의 부고를 접하면서 시작되는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마치 소설로 읽은 [오래된 빛] 속 창호 가족의 모습을 영화로 다시 한 번 보는 기분이었다.

 

반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밤 늦게 불려간 산 속에서 실족사한 창호의 부모와 형 창수의 삶은 그 이후 그야말로 보통의 삶에서완전히 멀어진 삶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갖고, 학교를 다니지만 그렇게 겨우겨우 생존을 위한 활동만을 이어갈 뿐 이미 세상 속 보통의 삶과는 완벽하게 동떨어져 있다.

 

여름이면 쉽게 바다에 갔다 돌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우리는 저 보통의 삶에서 얼마나 멀어졌을까. p.94

 

그들은 죽어버린 창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절대 바다나 가족 여행 등을 가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 그렇게 스스로를 잠시도 쉬지 않고 벌하는 창호의 아버지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에게도 벌을 주려 한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창호 아버지와 달리 형 창수는 우연한 기회에 가해 학생을 벌 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가해 학생인 기환은 이미 또 그의 아버지로부터, 슬픔에 젖어버린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끊임없이 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혹했던 나머지 끊임없이 일탈하며 자신을 내버린다.

 

그렇게 소리쳐라. 너는 불행했다고. 행복을 바라지 않았다고. 그것이야말로 네 삶의 자부심이라고. p.200

 

이는,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 중 누가 외쳐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누군가의 불행한 죽음이 야기한 남은 자들의 불행. ‘오래된 빛이 이미 너무 오래돼 빛으로서의 기능과 의미를 잃은 빛인 것처럼, 살아남은 자들의 삶 역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껍데기뿐인 삶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겐 가족도 온전한 의미의 가족이 아니고 그래서 그 흔한 가족 여행은 애초에 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죽음으로 인해 삶과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피해자 측만이 아니다. 가해자와 그의 가족 역시 그 죽음으로 인해 운명적으로 불행을 온 몸에 새기고 정상적인 가족의 범주를 벗어나 각자 삶에서 끊임없이 헤매고 또 헤맨다.

 

모두가 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안쓰럽다. 그래서,

 

전수찬 [오래된 빛]의 미덕은 계획이 결코 실행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실은, 실행하지 못했지만 이미 실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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