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 Himalaya, where the wind dwell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가 끝나고 전수일 감독님과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감독님 신성일 닮았다. 영화배우 신성일씨는 실제로 어떠실지 모르지만, 전수일 감독님은 정말 신사였다. 때로 관객들은 돈 내고 영화를 본다는 이유로 주제넘을 정도로 감독의 의지에 개입하고자 한다. 이랬어야 한다, 저랬어야 한다, 왜 이렇게 하지 않느냐. 심지어는 왜 재미 없는 영화를 굳이 찍느냐는 (물론 그런 질문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니까!) 질문에도 감독님은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 본인도 그것이 고민이며,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까지 감출지 늘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 그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는 영화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볼만한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한 영화는 아니니까. 스펙터클한 것은 오직 히말라야라는 대자연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마을 주민들은 신기하게도, 그 대자연 속에서도 크게 나약해보이지 않는다. 대자연 속에 숨거나 안기고자 하기보다 함께 존재하는 것에 익숙해보인다. 그곳에서 토하고, 정신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은 오로지 도시의 삶에 익숙한 '최'뿐이다. 공존하는 법을 알기는커녕, 자기 하나 존재를 지속시키기도 버거운 몸이시니까.
 
'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기업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듯한 인물이다.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위상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상사, 동료, 부하직원'으로서의 명함을 떼내고 온전히 남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쩔줄 몰라한다. 따라서 진작 말했더라면 당사자들은 성숙하게 받아들였을 도르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혼자서만 금기시하고 쉬쉬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덕분에 진실을 알아야할 애꿎은 가족들은 그들이 응당 그래야하는 이상으로 고통스러워진다.
 
그리고 끝끝내 영화 속에서도 그 고통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내 눈에는 그래 보인다. 겨우 하나의 짐을 벗고 영화가 끝날 때 자기는 시작이란다. 마지막 장면에서 '최'는 하산하지 않고 등산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감독님은 이 영화 찍으려고 여기를 여러번 왔다갔다했다고 한다. 물론 이번 영화와 함께 최민식도 영영 보지 못할 뻔도 했다지만 그래도 부러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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