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들의 당나귀 귀 - 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 을들의 당나귀 귀 1
손희정 외 지음, 한국여성노동자회 외 기획 / 후마니타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희정 /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어떤 문화 안에서 뭐가 재미있다거나 슬프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는 건 관습적인 문제거든요. 특히나 ‘웃음 코드’ 같은 건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거란 말이죠. 예컨대,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로 생각되는 어떤 사람이 뭔가를 했을 때 웃긴다"라고 한다면, 그건 엄청난 편견 안에서 웃기는 것이고요. (중략) ‘나쁜 웃음’과 연결돼 있는 우리의 관습의 고리를 깨서 다시금 질문하게 만드는 거 (중략) 정말 중요한 작업입니다.

윤옥 / 사실 IMF 이후 남성의 지위가 ‘추락‘하는 건 여성이 남성의 몫을 빼앗아 가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의해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고 남성 노동자의 지위가 허약해졌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그걸 여자들 탓으로 돌리는 거죠. 사실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건 하지 않고요.

윤옥 / 왜 섹시 콘셉트가 이쪽으로 바뀌는 거예요?
지은 / 아무래도 더 무력한 대상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어쨌든 기존의 섹시 콘셉트란 건 좀 더 성인의 느낌이 있고, 나의 섹시함을 보여 주겠다고 하는 주체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이효리 씨의 예전 모습도 그런 느낌이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너희가 보여 주겠다고 하는 건 쾌감이 없다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테니스 스커트도 노출용이라기보다는 운동용인 것인데, 그 안의 속바지를 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거죠. 그렇게 ‘금기‘를 즐기는 것에서 쾌감을 찾는 것이 아닌가.
희정 / 대상화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상화라는 건 상대방의 자율성과 자질을 축소시켜 보려는 태도이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대상화의 주요 내용인데요. 어떻게 보면 성적 주체로서 스스로 이야기하는 10대 여성은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너를 대상화해서 내 구미에 맞게 마음대로 소비하겠다는 심리가 더 커지는 게 아닌가 싶네요.

수경 / 이런 말 있잖아요. 미드는 경찰이 나오면 수사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한다. 일드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교훈을 주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교훈을 준다. 한드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연애하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연애한다. 그러니까 어떤 드라마에서든 또 어떤 여성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 연애 대상으로 그려진다는 거죠.

혜진 / 예컨대 가수 이효리 씨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자, 혹자들은 김제동, 주진우랑 친하게 지내다가 저렇게 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잖아요. 그런 의심은 남성 혁명가들에게는 제기되지 않죠. 식민지 시기의 저명한 남성 문학비평가 김기진은 잡지 「신여성』 1924년 11월호에 이렇게 썼어요. "대체로 여자라는 것은 국수주의자에게로 가면 국수주의자가 되고 공산주의자에게 가면 공산주의자가 되는 모양"이라고요. 그런데최근 페미니스트 연구자 장영은은 김기진의 그 말을 이렇게 바꿔 써야 한다고 주장했죠. "여성은 민족주의자라서 민족주의자에게로 가고 사회주의자라서 사회주의자에게 간다."

윤옥 / 독서 모임이 정말 많았어요. 노동자문학반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토론한 기억이 나요. 노동자들에게 읽고 쓰는 일이 중요했던 건, 자신의 삶이 공론장에서 언어화되어야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건 사회 구성원의 시민권 문제와도 관련돼요. 노동운동의 실천이기 전에,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표시였던 것 같아요.

주희 / 자유주의 시스템에서 자유는 개인에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를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하는 통치술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섹슈얼리티의 자유로운 거래를 보장하는 것이 평등한 성적 거래로 이어진다는 것은 환상이죠. 저는 여성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에로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성 시장의 전제 조건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을 끊임없이 성매매 산업으로 진입시키는 하부의 구조를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가난하게 만들고, 그 가난의 완충지대에 성매매 산업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와 자본의 결탁이 더 큰 문제겠지요. 이 부분을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일 경우에는 ‘업소 종사 여성‘이라든지, 성매매를 하고 있는 여성, 성매매 여성, 성판매 여성 등, 기술적인 용어를 선호하는편이에요.

주희 / 들여다봤더니, 성매매특별법이 문제 삼는 사람들 외부에, 이 산업을 계속 굴러가게 하는 요인들이 존재하고 있더라고요.
윤옥 / 그게 도대체 뭔가요?
주희 / 바로 오늘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여성들에게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드론 회사, 신용카드 회사, 제2금융권, 다양한 일수업자들, 그리고 성형외과 같은 각종 미용 산업들이죠.
희정 / 성 산업과는 무관해 보이는 산업들이네요?
주희 / 그렇죠.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아까 말한 3000만 원이여성들 몸을 타고서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는 거예요. 성매매방지법의 프레임으로 보자면 이 여성은 피해자지만,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들은 돈이 흐르는 중간 매개를 하고 있던 거죠. 그랬을 때 일부 여성이 탈성매매를 한다고 해서 성매매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걸까요? 이 여성들을 매개로 이자와 수수료 등의 수익이 만들어지는 거대한 시장이 있는데요. 그런 매개자 역할로부터 빈민 여성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주희 / 그러니까 자연 상태의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여성 역시 자신이 구입한 몸을 파는 거예요.

혜영 / 원더우먼은 1950년대에 능력을 다 잃고 굉장히 종속적인 여성이 되고요. 나중에는 부티크 숍까지 열어요. 그러면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스스로를 맞추게 되는 거죠.
지혜 / 여전사와 부티크 숍 사이의 괴리는 너무 큰데요.
혜영 / 이렇게 변화된 것에는 1950년대 여성들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려는 가부장제의 흐름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한편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있었죠. 사실 원더우먼이 레즈비언 혹은 양성애자인 건 너무 명백한데, 1950년대 이후의 시리즈에서는 그런 경향을 다 지우고 이성애자라는 것을 강조하게 되는 거죠.
희정 / 아무래도 1950년대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너진 사회질서를 기독교 교리에 근거한 이성애 핵가족 중심으로 다시 세우려고 노력했던 시기인 만큼, 성적으로 보수화되는 시기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원더우먼은 다시 남성과의 사적인 관계 안에 갇히게 되는 거네요.
혜영 / 그렇죠. 그렇게 1960년대가 열리는데요. 1960년대는 그렇게 보수화된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없었던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제2물결을 불러왔던 때잖아요. 그런데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없나 둘러보는데, 정말 너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비롯해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어렸을 때 보고 자랐던 원더우먼을 떠올리게 된 거죠. 그러면서 계속 DC 코믹스에 자기네가 보고 자랐던 영웅 원더우먼을 돌려 달라고 항의 전화를 하게 되요. 그래서 결국 DC가 짜증을 내면서 원더우먼에게 슈퍼 파워를 돌려주게 됩니다.

혜영 / 대중문화에는 정말 여성의 신체적 가능성을 최대한 확장해 보여 주는 재현이 잘 없고, 대체로 ‘어머니 형상‘에만 국한되어 있으니까요. 남자들은 이렇게 슈퍼 슈퍼한 것들을 많이 보고 자라니까 가능성을 상상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겠죠.

희정 / 많은 작품들에서 엄마들이 아이를 언제 잃어버리게 되냐면,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다른 남자랑 섹스를 하거나 연애 감정이 시작될 때, 그럴 때 아이가 납치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해요.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상상력이 언제나 존재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엄마의 욕망과 모성을 배치되는 것으로 놓음으로써 엄마 캐릭터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죄책감 속에서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하고, 엄마 스스로도 자멸해 버리는 방식을 택해요.
윤옥 / 그렇게 본다면 〈비밀은 없다〉는 완전히 다르네요?

태섭 / 훈육자인 어머니가 "게임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는것이 여가부의 셧다운제 이미지와 겹쳐 버렸다는 거예요. 거기에 게임하고 있으면 한심하게 쳐다보는 부인이나 애인의 이미지도 "게임을 금지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속에 있죠. 그러다 보니 뭐랄까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특히 10대 나 20대한테서 볼 수 있는 어떤 여성 혐오적인 반감 중 상당 부분이 게임 규제와 관련되어 있는 거죠.

희정 / 저는 2015년에 처음 메갈리아가 등장했을 때는 지금처럼 본격적인 섬멸전 양상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소수의 여성이 목소리를 냈을 때는요. 그런데 이게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지나면서 여성 보편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자, 안티 페미니스들이 도대체 누구를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 거죠.
태섭 / 「남성 삶에 관한 기초연구 Il」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하나 봤는데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해본 거예요. 조사자 남성의 54.2퍼센트, 그리고 여성의 24.1퍼센트가 인터넷의 여성 혐오 표현을 공감한다고 했어요. 절반 이상인 거죠. 그리고 여성 혐오의 원인이 뭐냐고 물었을 때 여가부가 1위였고, 남성에 의존해 사치를 일삼는 여성, 이른바 "김치녀" "된장녀"가 2위, 여성 단체와 페미니스트 때문이란 게 3위고.
운옥 / 이렇게 원인이 헛다리일 수가.
태섭 / 그런데 이 중에서 정말 웃겼던 게요. "남자에 의존해 사치하는여성"을 만날 가능성이 제일 낮은 게 어쨌든 청소년층이잖아요. 그런데 이 청소년층이 해당 원인을 지목한 경우가 제일 많았어요.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대체 어떻게 남자에 의존해 사치하는 여성을 만난 걸까 너무 궁금하잖아요. 문방구에서 자기 이름 걸고 뭐를 산 건지, 더치페이를 안 해줬는지 모르겠는데.

윤옥 / 소문이나 미디어로부터 본 이야기를 자기 경험담으로 인터넷에올린다는 거죠?
태섭 / 그런데 자기 경험도 아닌 경우가 많고 아는 형, 아는 동생, 내 친동생의 친구 누구 이런 식이고요. 내용도 대체로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하고 있거나 이상한 내용이거든요. 이상한 이야기를 접하면 확인을 해봐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그대로 흡수하는 게죠. 그러다 보니 사치하는 여자에 대한 어떤 편견이 강화되는 거예요. 또 웃긴 게요. 남녀별 유형 집단을 쭉 늘어놓고 누가 가장 싫으냐고 물었는데, 1등이 데이트 비용을 거의 내지 않는 여자, 5점 만점에 4.29예요. 그다음 2위가 시부모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 여자, 4.04. 특히 1위는 웃긴 게 여성들도 높은 수준의 부정평가를 내렸어요. 4.03점.
희정 / 여자도 싫어하고 남자도 싫어하는데, 도대체 누가 돈을 안 내고있는 걸까요?
태섭 /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서 그렇게 사치를 많이 하고 많은 남성에게 상처를 주고 사라지는 전설의 괴도가 된 걸까요? 😀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응답자 특성이에요. 여성 혐오가 강하고 성평등 인식이 낮고 성 역할 갈등이 큰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삶의 만족도, 자존감, 외모 자존감이 낮았다는 거죠. 실제적인 계급보다 만족도와 자존감의 문제가 여성혐오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