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말처럼 우연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렇기에 193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베르트 폰 센트죄르지Albert von Szent-Györgyi가 말했듯 발견은 누구나 보는 사실을 보는 것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식은 있지만 소뇌나 중추신경의 손상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환자는 사고로 외계 행성에 홀로 남은 탐사 대원이 지구의 소식은 듣고 있지만 송신기 고장으로 자신의 생사를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지금은 이들을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이제는 감금증후군처럼 몸의 반응만으로 의식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경우, 뇌 활동으로 의식 상태를 판단하고 있다.

마취 중 각성이나 감금증후군을 통해서 우리는 몸이 깨어 있는 것과 의식적 경험이 서로 분리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1년에 약 4000만 명이 수술로 일반 마취를 하는데, 그중 0.1퍼센트(약 4만 명)가 중간에 의식이 깨어나는 마취 중 각성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시건대학교 의과대학 조지 매슈어George Mashour는 인간과 동일하게 행동하지만 의식은 없는 철학적 좀비Philosophical Zombie를 본떠 이를 역좀비inverse-Zombie 상태라고 불렀다.

특히 육각수에 대해서는 지금도 소비자를 속이는 모 대학 교수가 있다. 한 뉴스 탐사 프로그램에서 허위 사실을 집중 보도했다. 그 교수는 육각수가 기억력이 탁월하여 어떤 약품의 정보를 입력시키기만 하면 그 약효가 영원히 지속된다고 주장했다.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을 물에 타고 수만 배로 희석해도 그 약효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약재의 효능을 기억시키기만 하면 물만으로 어떤 질병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나쁜 경험을 한 물은 우리에게 나쁘게 작용하지 않겠나? 욕을 들려준 물과 칭찬한 물을 식물에 주고는 성장 정도를 비교하는 바보들의 실험도 있었다.
현대인은 만성 탈수증에 시달리고 있어 하루에 물 2리터 이상 마시라는 황당한 주장도 있다. 하루 물 7~8잔 마시라는 건 영국 BBC가 6대 의학 미신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물은 목마를 때 마시면 된다. 물로 물먹이는 속임수에 속지 마시길.

유명한 가짜 학술지 중 대표적인 것이 <와셋WASET〉과 〈오믹스 OMICS>다. 한국 교수들이 많이 이용하기로 소문났다. 조사해보니 1400여 건이 넘는 논문이 이 가짜 학술지에 실렸다. 통계에 서울대교수가 가장 많았다. 교육부가 정도가 심한 교수에게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얼마 전 과기부 장관 후보자가 이런 논문이 탄로나 낙마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음식을 몸에 좋으라고 먹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 거다. 몸에 특별히 좋은 음식은 없다.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좋고, 넘치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게 식품이다. 사람 먹으라고 동식물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모두 천적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어책을 갖고 있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비교적 덜 해로운 동식물을 우리의 먹거리로 선택했다. 식품마다 나름의 장단점이 다 있다.

인터넷은 종종 가짜뉴스와 비합리적인 신념을 전파하는 온상으로 비난을 받는다. 이런 비난에는 확실히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백신을 향한 불신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타고 강화될 수 있다.
인터넷 사용자는 뇌가 빠지기 쉬운 일련의 함정이나 인터넷이 만드는 강력한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악명 높은 확증편향으로 인해 사용자는 선입견에 따라 검색 결과와 사이트를 찾아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찾게 된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는 이런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우리는 아무리 이상한 신념이더라도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메아리방에 살고 있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들은 태곳적부터 인간을 괴롭혔다. 2700년 전에 "죽은 자들이 일어나 산 자를 먹어치워 결국 산 자보다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토판은 되살아난 시체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는 약 300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TV 시리즈 〈워킹 데드Walking Dead>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한 듯하다.
각 지역의 민담을 조사해보면 되살아난 시체 이야기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망령이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은 아니다. 슬라브 계통의 흡혈귀를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영화에서처럼 망토를 걸치고 성에 사는 근사한 귀족이 아니라 부패한 몸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죽은 농부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 민담에 등장하는 브리콜라카스vrykolakas는 선혈로 인해 붉은 색을 띠는 송장으로 그려진다.

바이킹들은 악랄하고 몸이 부풀어 오른 드라우그Draugr를 두려워했다. 게르만 문화권에는 수의를 갉아먹은 다음 시신의 피를 빨아먹는 나흐체러nachzehrer가 있다. 또한 중국에는 콩콩 뛰어다니는 흡혈귀인 강시가 있고, 아랍어권에는 식시귀ghuil가 있다. 필리핀의 공동묘지에서는 그날 매장된 시신을 먹는다고 전해지는 칼락kalag이나 아스왕aswang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6만 2000년 전 다른 인류와 분리된 호주 원주민들도 야라마야후yara-ma-yha-who라고 불리는 흡혈귀를 두려워했다. 살아난 시체는 그저 민담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날 거라는 생각에 시체 매장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와 관련해 많은 고고학 증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에서는 거대한 쟁기의 날이 몸통을 관통하고 있는 700년 된 해골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는 목 위에 낫이 올려진 시체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좀비들이 움직이면 목이 잘리도록 만든 부비트랩이었다. 아일랜드에서 발견된 8세기경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좀비‘는 누구도 물지 못하게 입안에 자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또한 ‘베네치아의 뱀파이어‘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커다란 벽돌이 박혀 있었다. 이외에도 시체가 살아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여러 예방책이 시행되었다. 중세 영국의 한 마을인 워람 퍼시Wharram Percy에 살던 농부들은 시체 10구를 사지와 머리를 잘라 태워버렸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중세 고고학 교수 앤드루레이놀즈Andrew Reynolds는 "그 주요 목적이 시체가 되돌아와 산 자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자는 동안 꿈을 꾸는 수면과 꿈을 꾸지 않는 수면이 번갈아 일어난다. 그런데 꿈을 꾸는 수면 상태로 너무 빨리 진입하거나 꿈을 꾸는 상태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빠져나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생리적 기능이 잠들어 있는데도 다른 기능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가령 완전한 수면마비 상태에서 눈이 떠질 수 있다. 이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포를 느낀다. 당황해 숨이 차고 수면마비 때문에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가슴을 짓누르고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더군다나 뇌가 완전히 잠들지 않으면 꿈의 세계가 깨어 있는 삶과 겹쳐지면서 입면환각hypnagogic hallucination을 일으킨다. 이러한 환각은 직감에 틈을 일으키고, 뇌는 그 틈을 메우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위협적인 존재가 몸을 짓누르거나 목을 조르는 환영을 보게 된다. 게다가 기억은 정상적인 수면 상태에서처럼 억제되지 않으므로 당시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

심리적 성향, 주술적 사고,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탐색하는 성향 역시 감정적 스트레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가위눌림은 전염병이 돌 때 더욱 빈번해지고,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으로 가위눌림을 탓한다.

"완벽함은 잊어. 틈은 어디에나 있지. 그렇기 때문에 빛이 들어오는 거야."
-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하지만 우리 사회에 구석구석 스며든 포스트모더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가짜 뉴스를 둘러싼 싸움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언론이 가짜 뉴스를 쏟아낸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기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트럼프가 하고 싶은 말은 정체성 정치론자들이 사회가 특권층 위주로 짜여진다고 지적하면서 주장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트럼프의 속내는 언론이 자신들이 가진 편견을 진실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메타서사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이상한 글을 남기는 것도 메타서사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전까지 이념 다툼은 황량한 벌판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전장이 소셜미디어로 바뀌면서 이제는 모든 룸펜이 싸움에 나서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사도 도마는 예수의 부활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공언했다. 예수가 자신의 상처를 증거로 보여주자 도마는 그 상처에 손을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즉,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보다 더 축복을 받으므로, 이제 회의주의자들이 구원을 받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반대자들로부터 맹비난을 받는 이유는 어쩌면 그 반대자들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의심하는 대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폭로하는 도구가 되어 사실상 모든 사회 질서를 해체할 수도 있다. 즉, 사회 질서를 구축하는 의미체계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내부에서 창조된 것이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어떠한 사회 질서든지 쉽게 해체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정치적 메타서사(이데올로기)가 일종의 지적 구속이라고 믿었다.

비판이론가인 테어도어 아도르노Theodore Adorno와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처음에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사회 지배 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정치적 분열이 없더라도 사회 지배는 지속된다고 결론 내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은 비판이론가들의 후세대인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스트post-structuralist postmodernist‘들이었다(이 용어 때문에 기가 차더라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어찌되었든 학술지는 순찰대가 아니다. 학술지의 더 큰 목적은 학자들 사이의 대화를 유도해 창의성과 혁신의 기회를 이끄는 것이다. 패션쇼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집단에서든 그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구성원들이 있는 한, 이들은 경쟁자가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위계질서를 부패시키고 폐쇄적 시스템을 만든다. 모든 위계가 부정직하다는 말이 아니다. 외부의 견제 세력이 없다면 부패할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위계의 바탕에는 보통 여러 전제들이 숨어 있게 되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숨은 전제들을 폭로함으로써 위계가 은밀히 부패되는 것을 막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 백인 남성 이성애자가 정말 유능하기 때문에 큰 사무실을 독차지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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