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의 법칙 - 조직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무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터의 법칙'을 적용해서, 승진 전까지는 유능했을 거라고 나름 후한 평가를 내려 주더라도 현재의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죠.


살아오면서 보았던 무능력자들(나역시 예외일 순 없지만)에 대해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매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실패할 때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것인가 하면 바로 바로 바로,


'이 실패가 내 탓이 아닌 건 확실해'의 정신 같은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실패의 원인을 다른 무언가로 돌리면서 심적 위안을 찾는 것이죠.

 


나는 처음 몇 명의 직원에서 이러한 점을 발견 했을 때, 그들이 무능력해진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본인이 무능력함이 실패의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가 인정 못 받는 건 인맥이 없어서 그런 것 뿐이야'라든가

'내가 승진 못한 건 고향 선배가 없기 때문이야' 라든가

'지금 과장이 싫어서 일을 대충하는 거지 원래 그런 건 아냐' 라든가

나름의 핑계거리를 만들어 교묘히 책임을 회피하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아 그들이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조금만 진솔하게 생각해 본다면 알 수도 있을텐데, 그 이유들이 모두 외부에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조금 의도적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이 몇 년이 넘어가자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른 이유를 달아주기로 했기 때문이죠.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입니다. 


혹여라도 본인들이 본인의 실패에 대해 본인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변명거리를 만드는 것은 궁지에 몰린 자신의 인생에 대해 탈출구를 마련하는 것이겠죠. 만약, 그것마저 없다면 그들은 자신의 삶의 불완전성에 대해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순간에 다다라서 그들에게 유일한 무기는 주변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 말고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 변화를 줘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어려우므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주변의 상황을 탓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라고 하는데 너무도 흔한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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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는데...많은사람들이 안좋은 기억들이 있잖소.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게 지워지지가 않는 거거든.

근데 그 흔적들은 제거할수가 있단 말이지.

원인제공자들 말이야. "

 

 달콤한 인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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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원인제공자라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내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지.














나는 아무런 장난도 치지 않았어요.

댁이 스스로 선택한 일에 희생된 거예요.


인생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선택을 하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요. 

그게 바로 '인과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린 결정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면,

 남 탓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상황이 안 좋았다거나 사악한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조목조목 따져보면 진정 탓할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걸 알게 되죠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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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금 나일의 범람을 이시스의 눈물 때문이라고 믿고, 그걸 축복으로 여겨 감사와 찬미의 제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류인 이곳에서는 볼 수 없지만 나일의 이 같은 범람은 사실 아득한 상류 지역에 우기가 와서 그 빗물로 불어난 물이 이곳에 이르러 범람을 가져온 것뿐입니다. 결코 이시스의 눈물 때문은 아니며, 더욱이 그 축복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민중들을 속였단 말씀입니까? 이 성스럽고 장엄한 축제가 사실은 커다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단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저들도 알고 있다."

 

"저들도 알고 있다고요?"

 

"..............(중략) 생각해 보아라. 세상이 무자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자연의 폭력에 맡겨져 있다고 믿는 것보다는 제사로 그 노여움을 달랠 수 있고 찬미와 기구로 축복을 빌 수도 있는 신의 질서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는 쪽이 저들에게 얼마나 더 큰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인가를.

우리가 한 일은 다만 그 같은 저들의 믿음을 가로막거나 깨뜨리지 않은 것뿐이었다............"

 

   

종교가 무작정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믿게 한다는 사실은 반감만 살 뿐이지만 저처럼 솔직하게 인간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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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봄날의 곰?"하고 미도리가 얼굴을들었다. 
"그게 무슨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내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곰이 다가오는거야. 그리고 내게 이러는거야 ,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하겠써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 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거야.

 
그거참 멋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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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 미래의 뇌
김대식 지음 / 해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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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체스에서 AI가 인간을 이긴 이후 19년 뒤에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사실 인공 지능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알파고를 언급해야 하나 싶지만 이만큼 상징적인 사건은 찾아보기 힘드므로) 바둑에서만큼은 그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AI에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매우 달랐다. 규칙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인공지능의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다. 인공지능 학문 분야에는 '모라벡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에게는 지극히 쉬운 것(계단 오르기, 사물 인식 등)이 인공지능에게는 너무 어렵고, 기계에게 너무 쉬운 일(계산, 데이터 분석 등)이 인간에게는 어렵다는 모순을 말한다. 


'뇌'에 대한 이야기라면 정말 반복해서 들어도 흥미로운 일들 투성이다. 특히 뇌에 대한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그것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특히 팔을 다치거나 외상을 입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쳐야 할 것으로 여기지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너무 유명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경우에서처럼 사람의 얼굴을 보고도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도 말이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 좌우를 구분할 수 없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잘' 설명하면 그것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보는 한에서 친구에게 오른쪽 왼쪽 설명을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뇌의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뇌 관련 서적이 부족했던 때에 그런 것을 우리가 알았을 리 없다.


책은 크게 세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가장 재미있는 장은 뇌과학의 미래를 다룬 3장이다. 첫 번째 질문은 '과연 우리는 뇌신경의 활동만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까.'이다. 이를 위해 fMRI기술을 이용하는데, 어떤 물체를 보고 느끼는 패턴을 기록한 후 반대로 패턴을 보고 무엇을 보고 있는 유추해 나가는 방식으로 연구했다. 이런 방식으로 데이터가 축적되면 궁극적으로는 뇌 패턴만 보고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쉽게 예를 들어 묵찌빠의 경우 내려고 하는 패턴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손을 내는 방식이다. 다만 이 방식은 아직까지 그 세밀도가 떨어져서 대체로의 형태를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뇌에서 스파이크 신호를 읽는 방식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의수나 의족을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좀 더 복잡한 내용인데 바로 '뇌에 특정 명령을 직접 입력할 수 있는가'이다. 가장 간단한 방식은 TMS라는 '경두개 자기 자극술'이 있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전두엽에서 패턴이 생성되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데, 이때 자극을 주어서 패턴이 쏠리게 하는 방식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TMS로 자극을 주어 기분이 금세 좋아지게 하는 방식이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답을 주는 방식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한 행동이 제재되거나 강요되기 때문에 좋은 경험은 아니다. 이 방식은 사실 좀 투박한 형태의 라이팅이고 실제 광유전자법을 쓰게 되면 좀 더 세밀하게 뇌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쥐에게 특정한 뇌신경에 자극을 주면 쥐는 목이 마르지 않아도 자극 때마다 물을 먹게 되기도 하고, 실제 공간의 환경과 다르게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는 뇌 과학의 미래가 될 수도 있지만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이를 통해 상대의 생각을 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인공지능의 이야기,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딥러닝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인공지능은 과거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 알파고의 경우도 특정한 비법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기보를 죄다 공부하게 해서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에 인간 이상의 실력이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인간을 능가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추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AI는 시간을 두고 우리가 발전시키는 것이 정말 맞을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김대식 교수의 기존의 강의 내용을 한 권으로 정리한 느낌이다. 중복되는 이야기도 있고 여기저기서 들었던 내용이 많고 새로운 내용이 많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저자의 책을 처음 접한다면 보기에 적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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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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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반부에서는 뇌와 관련된 연구 성과나 과학적 사실, 철학적 성취 등을 소개하고 후반부에서는 뇌에서 시작된 우리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구성돼있다. 철학적 질문과 과학적 사실이 적절히 조합되어 흥미를 유발하면서 나름의 주제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쓰였다. 뇌의 무게는 1.4킬로그램이고, 뇌속에는 10의 11승 만큼의 신경세포가 10의 15승 가량의 네트워크 망이 구축되어 있다. 비교적 단순하고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 비하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놀랄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도, 수많은 위협 속에서 여태까지 생존하게 한 것도,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모두 그 1.4킬로그램의 덩어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때문에 뇌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뇌에 대한 생각은 고대 그리스 이전부터 있어왔는데, 그것이 확연하게 갈린 것은 아리스토텔리스 학파와 플라톤 학파였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는 생각이 심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고, 플라톤 학파는 머리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이후 갈렌은 뇌의 빈 공간(뇌실)에 들어찬 공기들이 생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생각이 이뤄지는 부분은 뇌실이 아닌 피질이었다. 데카르트는 육체는 4차원의 공간에 살지만, 정신은 1차원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뇌가 단순한 관찰이나 철학을 넘어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골지 컬러링을 통해 뇌의 신경세포가 처음 눈으로 관찰되었고, 카할은 신경세포는 거미줄 모양이 아닌 나뭇잎 모양의 단일세포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과학은 불행히도 역사적으로 처참한 시기에 발달했다. 수술을 잘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를 연구할 수 있을 때는 오직 전쟁때 뿐이었기 때문이다. 1870년, 1914년, 1939년 등 큰 전쟁이 일어났을 때 뇌과학은 괄목할 성장을 이룩했다. 


뇌과학의 역사를 접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이는 어느 정도 답이 나왔다고 해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특히 딥러닝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의 지능이 급가속도로 발전하는 지금 인간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저자는 데카르트에서 인도철학, 마야콥스키 시에서 수많은 이들이 그렸던 자화상까지를 등장시키며 '나'라는 존재에 천착하는 인간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는 과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정말 '나'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카프카의 '변신' 우디엘런의 '젤리그' 등으로 계속된다. 특히 나치의 박해 속에 자신의 존재를 알고자 했던 유대인의 이야기, 그 중에서 유대인임을 부정하고 그들의 반대편에 섰지만 결국 죽음을 면하지 못했던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는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과학적으로는 우리 몸의 세포는 시간당 3~4만 개가 죽어나가 내가 나라는 정체성을 증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나의 존재를 계속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뇌세포 때문이다. 뇌세포는 거의 새로 만들어지지 않고 어릴 때의 신경세포가 늙어서까지 유지된다. 이와 함께 '이성'은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데, 우리가 매번 이성적일 수 없기 때문에 순간 순간에 과거 DNA의 선택지를 참고하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이성적이기보다 동물적인 답을 내놓는다. 이후 저자는 내가 의미있는 존재인지, 나는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과학자다운 사례와 생각들을 이야기 한다. 마지막 장에서 몇 가지 물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밝히고 글을 맺는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 분야의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주제가 잘 조합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이유는 이야기가 더 진행될듯 하다 끝난듯한 느낌 때문이다. 김대식 교수님의 글은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글이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대중성을 생각한 배려 같은데 조금 더 전문적으로 들어갔으면 더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운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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