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Wisdom Classic 7
김경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군주론 적령기

 

[군주론]은 제목이나 분위기가 주는 중압감에 비해 사실 어려운 책은 아니다. 지레 겁먹고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았다면 혹시 모를까, 한 장이라도 읽었다면 하루도 못돼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길지도 않고 크게 어렵지도 않은 책이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강렬하고 파격적이기 때문에 지금도 수없이 되읽히면서 논란거리가 되고있다.

 

그런데 왜 저자는 하필 마흔이라면 군주론을 읽으라 했을까?

 

내가 군주론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도서관에서 학습 만화로였다. 사실 그 당시에 그 책이 유명한 지도 몰랐고 읽는 내내 고전이라 그런지 꽤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다.

 

“악행은 한꺼번에, 선행은 조금씩” 이런 말들이 써 있는 책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던 탓인지 조금 거부감이 들었었다.

"이런.. 딱 따돌림 당하기 좋은 책이네" 라는 생각이 그때 내 맘이었다.

 

대학교 때 한번 더 읽었을 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맞는 부분이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직 마흔은 아니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이 때 다시 군주론을 읽으니 이제 그 뜻을 알 것도 같다.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저자도 이런 책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현실의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위험하지만, 특히 군주론은 더 위험하다. 같은 책을 읽고 어떤 이는 독재의 정당성을 얻었고, 어떤 이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적 경험이 부족했을 때는 이 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경험은 있으나 개인적 성찰이 부족했을 때는 이 책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의 경험과 지식이 쌓이자 이 책은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고전은 책들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은 승리자들

 

서문에서 나오는 저자의 말처럼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 하는 자는 비난받는다'는 말이 마키아벨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키아벨리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비록 군주론이 메디치가에 다시 중용되기 위해 쓰여지기는 했지만, 또 한 쪽에서는 군주의 악행을 민중에게 알리는 일을 해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가 책에 담은 내용은 너무도 솔직해서 '불편한 진실'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버리지는 못하지만 안고 가지도 못한 채 여태껏 고전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고전의 가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지만, 그 기본 원리에는 인간이 생물이라는 평범한 이유가 숨겨 있다. 생물의 일차 목표는 ‘생존'이고, 2차 목표는 ‘번식'이다. 이를 사회구성체에 적용하면 번식 대신 ‘확장'이라는 개념이 치환될 뿐 큰 뿌리는 같다. 사마천의 ‘사기'가 2500년이 읽히는 이유도, ‘군주론'이 500년이 지나도 유효한 이유도, 이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설사 마음 속에 남을 향한 칼을 숨기고 있더라도 그 칼을 보여서는 안되며, 남들이 나를 공격했다 하더라도 짐짓 점잖을 빼며 포용력 있는 척 이해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이미 비난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 논란이 되는 문장들을 끄집어 내서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 되는가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 실린 유명한 일화나 사회 저명인사의 이야기는 군주론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맘에 드는 것은 동양의 마키아벨리라 불리는 ‘한비'의 이야기나 사기의 고사가 적절하게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군주' 대신 '나'를 집어 넣고 읽어보자

 

저자는 크게 여섯 장으로 군주론을 분류하고 관련 문구를 인용했다. 1장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알려주며, 그를 위해서는 군주가 그만큼의 실력을 갖거나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신뢰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기존의 생각의 헛점을 알려주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의 생각에 부응하며 들려주는 록펠러나 노량의 이야기가 참 가슴에 와닿는다.

“군주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며 기만책을 쓰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일인가를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경험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군주는 자신의 약속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혼동시키는 데에 능숙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신의에만 입각한 군주들을 압도해왔다.”[군주론 18장]

 

2장 ‘리더를 리더답게 하는 것들’에서는 군주가 선만을 추구할 때 어떻게 파멸할 수 있는 지, 또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이야기 한다.

“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말고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려는 군주는 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군주론 15장]

 

3장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법’에서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다. 두려움과 인센티브가 사람을 움직이는 현실적인 동력이라는 사실은 냉정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군주는 잔인하다기보다는 인자하다는 평판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런 온정도 역시 서투르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잔인한 인간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잔인함은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지방을 통일하여 평화와 충성을 지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군주론 17장]

 

4장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법’에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기만한 군주가 위험에 처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중간하게 승리하기 보단 확실하게 기선을 잡아야 하는 것은 어느 시기 어느 위치에서든 적용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의 내용이 가장 잔인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돼있다고 생각된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군주론 3장]

 

5장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이제 무엇이 현실인 줄 알았으니 그것을 상대에게 적용하면서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상대를 깔보고 짓밟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상대의 전력을 미리 알고 싸움에 대처해야만 한다. 자신의 능력을 뛰어 넘는 싸움은 이겨도 남는 것은 상처 뿐이다.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구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욕망이다. 따라서 능력 있는 자가 이를 수행할 때 그는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비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도 없는 자가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그것을 손에 넣으려 한다면 이는 잘못된 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군주론 3장]

 

마지막 장은 변화를 주도하는 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 '창업이 수성난'이란 말도 있듯이 새로운 과업을 이루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켜 내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일만이 아니고 먼 장래에 있을 분쟁까지도 배려 해야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대처해야한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그냥 보고만 있으면 그병은 악화되어 불치병이 된다."[군주론 3장]

 

‘군주론’에서 ‘군주’라는 말 대신 ‘나’를 집어 넣고 ‘백성, 신하’라는 부분에 ‘남’을 집어 넣고 읽어보면 왜 이 책이 이렇게 오랜 기간 많이 읽히는 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세상은 분명히 더 잔인해졌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으며, 약자에게 더 차가워졌다. 이 책은 군주론을 읽지 않았더라도 먼저 읽기에도 충분히 괜찮은 책이며, 군주론을 읽고 나서 읽는다면 응용 문제를 보여주는 참고서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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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6-2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마침 마키아벨리가 사망한지 493주년 되는 날이더군요.
저도 마침 오늘 우연찮게도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한가하실 때, 한 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wQWzdMKLkw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