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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설득시키거나 내 뜻을 주장하기 너무 터무니 없다고 느껴질 때, 어떤 일이 달성되기에는 너무 막연할 때, 내가 떠올리는 두 이야기가 있다.














5.18 시위대에 참여하려는 진수에게 태수(최민수)가 설사 너가 가더라도 독재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린다. 그 때 진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워츠케하냐고라. 참말로 몰라서 묻는것이요?

고로케하면 안된다고 말해야지라.

그 총이 무신 총이냐. 우리가 세금내서 산 총이다.

우리가 누구냐. 국민이다. 국민한테 고로케하면 안된다고 보여줘야지라.

가만 놔두면 고자식들이 또 그럴게 아니요.

요로코롬 해두 되는구나 할거 아니요이 나 말이 틀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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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그리고 쉽게 뭔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포기하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조차 포기한다. 하지만, 하다 못해 악이라도 쓰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어짜피 지금 상황은 바뀔 수 없겠지만 최소한 가해자가 죄책감을 가지게는 해야한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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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바닷가를 걸으면서 밀물에 밀려온 조개를 하나씩 바다로 던져 주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궁금해서 물었다.

 

"어르신, 지금 나와 있는 조개가 수 천개가 되는데 그거 하나씩 던져 준다고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인이 답했다.

 

"물론 나한테는 수 천개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저 조개에게는 그렇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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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알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떤 일이 한없이 사소하게만 느껴질 때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린다. 비록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다툴만큼 절박한 어떤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나를 벗어나면 답은 쉽게 찾아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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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하게도 이 강좌의 까다로움은 여러분이 이미 아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당연했던 것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는데, 그 방법은 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친숙한 것들이 낯설어진 뒤에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인식은 순수함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인식으로 불안을 느낀다고 해도
생각과 지식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 마이크 샌델 '정의' 첫 번째 시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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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겁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떤 한 시기에 달성되어야만 할 것이

 

달성되지 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나는 정말 알알하게 내 온몸으로 느낄수 있는 생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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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사베드라는 안헤도니아라고 진단했다.

영국 의학협회에서는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나오는 것으로,

고산병과 아주 흡사하다고 규정한 병이다.

스페인의 이 지역에서는 여행자들 사이에

흔한 병이라고 했다.

이곳의 전원적인 풍경에 들어오게 되면서,

그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서

격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 워낙 희귀하기

때문에 눈앞에 다가오면 무시무시하고 불안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클로이와 나는 약간은 무의식적으로

헤도니아(행복)를 기억이나 기대 속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행복의 추구는 중심적 목표로 공공연히 인정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이런 아리스텔레스주의의 실현이

아주 먼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암묵적 믿음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 믿음이 우리가 아라스 데 알푸엔테에서

그리고 그 보다는 덜하지만 서로의 품에서

발견한 전원 풍경에 의해서 도전을 받은 것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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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항상 꿈꿔오던 환상이 눈앞의 현실로 펼쳐질 때

나는 의연하게 그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는 항상 그 자체를 과분하게 여기고,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행복을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내려보낸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또 행복을 찾아 떠나는

어리석은 여행을 우리는 오늘도 하고 있다.

 

한번쯤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인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저 부인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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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내가 인생에서 두려운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 거라는 거야. - 마크 로스코- 

로스코가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다. 화염이 몰아치는 듯한 주홍빛, 마치 화장터의 불길을 연상케 한다. 일명 '피로 그린 그림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미술사가이자 신학자인 제인 딜렌버거의 일화는 유명하다. 

딜렌버거에게는 마크 로스코의 마지막 그림인 RED 작품을 본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1969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허전함을 채우고자 로스코의 그림을 사기로 한다. 그의 작업실로 찾아갔지만 당시 로스코는 말버러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작품을 살 수 없었다. 갤러리로 직접 찾아간 제인은 로스코의 작품들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통곡했다. 

그녀가 그곳에서 본 것은 지나치게 선명한 레드 캔버스였다. 

"난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꼼짝 못하고 눈물만 흘린 채 자리에만 앉아 있었어요."라고 그녀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가 느끼기에 그 그림은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제인은 갤러리 주인에게 가서 말했다. 
"누군가가 지금 당장 그를 잡아 줘야만 해요! 제발.."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예언같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여길 뿐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얼마 후 뉴욕의 신문들은 위대한 20세기 화가의 자살을 일면 톱기사로 다루었다. 로스코는 당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명이었다. 1970년 2월 25일 로스코는 작업실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 

죽음을 깊이 인식하고 몰입하면 새로운 생명 에너지가 솟아오른다고 로스코는 느꼈다. 자살을 계획하고 죽음을 인지하던 화가가 새로운 생명 에너지와 충돌하는 인간적 고뇌와 연민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이 그림은 후에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그림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면도칼로 동맥을 그어 자살했던 당시의 모습과도 너무도 닮아있다. '피로 그린 그림'은 섬뜩하고도 로스코의 당시의 깊은 외로움을 공감할 수 있는 현대회화의 수작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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