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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3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 이라는 에세이집 에필로그에서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1991년 5월 그가 천착했던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소망과 꿈과 희망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 일련의 죽음들이 내게는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소설가의 일)
1991년 많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는 그 배후를 의심했고, 그들이 믿었던(?) 어떤 시인은 의미 없는 죽음을 그만두라고 호통쳤다. 그저 단순히 불온세력의 꼬임에 빠진 것이라고 믿어버리기에는 우리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그가 쓴 소설이 작가 세계문학상을 받게 된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였고, 또 하나는 바로 이 작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그는 그리고 말미에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맨 앞장에 인용된 요한복음 12장 24절을 적는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소설은 어쩌면 그 열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그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은 하나의 밀알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부는 정민과 나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뇌와 성기 사이에’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대학 시절은 시대적 소명과 대의명분에 묻혀 연애의 감정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이는 자연스레 그와 정민의 가족사와도 연결되는데, 그의 할아버지와 정민의 삼촌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체제가 내리치는 폭력의 영향권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할아버지는 기미년의 만세 행렬에서 태어나,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4.19, 5.16 등을 거쳤고, 삼촌은 자신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폭력에 희생되며 기이한 형태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화자인 나 역시 1991년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시위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고난 후 빠져나올 수 없는 역사의 굴레로 영입된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비겁한 자신에 분개하며 스스로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던 중 그는 방북 예비 대표로 베를린에 가게 되고 거기서 우연히 한 비디오를 보게 된다. 강시우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그가 들었던 어떤 이야기보다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광주에 내려간 이길용은 한기복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를 믿고 따르던 중 그의 분신을 예기치 않게 옆에서 목격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이길용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강시우의 삶을 살게 되는데 여기에는 역시 시대의 폭력과 개인의 나약함이 사슬처럼 엮여있다. 이 모든 것은 소설의 후반부에 강시우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밝혀지게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할아버지와, 정민의 삼촌, 강시우, 한기복, 상희 등 모든 인물들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상희의 사랑을 두고 '압도적인 폭력의 시기를 만나서 생기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한 것에서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누구든 그러한 시기를 거친 인물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거대한 권력에 희생된 미약한 존재에 대한 동정일 것이다. 이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느냐면 또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강시우는 그렇다고 그렇게 측은한 마음으로 사랑을 받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존재였다. 작가는 그 속에서 개인 개인의 이야기와 개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소설의 초반에 나온다. 무한한 우주에 무한하게 존재하는 K라는 가상의 존재가 있다. 전 우주에 K는 수없이 존재하고 그들은 서로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 받고 다른 별의 K가 뭘하고 사는 지도 알 수 있다. K는 무한한 우주속에 무한히 존재하므로 외롭지 않다. 하지만, K 앞에 한 여인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K는 더이상 무한한 우주에 무한히 존재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눈앞의 이 여인을 사랑하는 K는 오직 지구에만 있고 지금도 유일하고 앞으로도 유일해야 한다. 어쩌면 작가가 격랑의 시기에서 개인을 구해내는 방법은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무수한 익명의 군중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개별적으로 아파하는 것. 그들이 오직 개별자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처음에는 그저 역사에 묻혀버린 개인의 이야기로 읽히다가 글을 다 읽을 때 즘이면 그들이 유니크한 캐릭터로 각각 살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