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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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현대문명의 편리함과 그것이 인간의 삶을 황폐화 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때였다. 카렐 차페크의 '로봇'은 인간이 결국은 그들이 만든 로봇에 의해 멸종되고 말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담은 SF 희곡이다. 1920년대에 발표된 이 작품은 '로봇'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으로도 유명한데,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이 훗날 쓰여진 모든 로봇, 인조인간, 복제인간을 다룬 작품의 화두를 선점했다는 사실이다.  책의 뒤 표지에 이런 말이 쓰여있다. 

"현대의 모든 SF 작품들은 차페크의 '로봇'에 신세를 지고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오직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면 그것은 태생부터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아일랜드'는 부자들에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복제되어 별도로 관리되는 인간 아닌 인간들이 나온다. 그들이 유토피아라고 알고 있는 곳은 사실은 그들의 신체를 사용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곳이다. 영화는 이를 알게된 복제인간 '링컨'이 '조던'과 그곳을 탈출하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는 지능을 갖게된 컴퓨터 시스템이 인간을 정복한다는 이야기를 테마로 진행된다. 얼마전에 개봉했던 '엑스마키나'도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라는 한계와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영화들은 '로숨의 유니버셜 로봇'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화두를 다루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에서부터 무한한 정보를 바탕으로 생성된 인공지능의 인류에 대한 공격까지 '로봇'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지하면서 무척 현실적이다. 


서막은 과학자 로숨과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가며 로봇을 만들고자 했다는 도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의 방식으로 '로숨 유니버설 로봇'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은 도민과 그의 동료들인데, 헬레나라는 인권운동여성이 그들은 찾아 온다. 그녀는 로봇을 감정없는 존재로 다루고, 목적에 맞지 않거나 오류가 생겼을 때 파쇄하는 행위에 분노하며 이를 당장 멈춰줄 것을 요청한다. 부스만은 로봇의 경제적인 효과를 강조하며 필요성을 내세우고, 도민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류는 이제야 비로소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한다.  1막에서는 도민과 결혼한 헬레나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으며 끝없이 바꾸려는 시도가 그려진다. 종종 지능을 가진 로봇들이 생산되는데, 라디우스는 그 중 대표적으로 곧 파쇄될 위기에 있으면서도 주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한편, 헬레나는 로봇 제조에 핵심적인 설계도를 불에 태워 버린다. 3막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알퀴스트가 로봇의 생산을 종용받는 장면이다. 그러던 중 헬레나와 프라무스가 그동안 로봇에게 없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며 막을 내린다. 


자본이 필요로 하는 노동자


도민은 헬레나에게 로봇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그 중 로봇이 어떤 목적에서 만들어졌는지 말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우선 로봇은 욕구가 적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노동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어야 한다. 이는 로봇의 이야기가 아니라 노동을 하고 있는 모든 현대인에게 자본가가 바라는 모습이다. 결국 인간의 욕구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영혼 없는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창조적인 생각, 불만 따위는 없는 면에서 로봇은 완벽한 존재이다. 인문학적 소양이나 철학적 사고가 뒷받침 되지 않고, 공학 계산에 천재적이거나 회사를 위한 방대한 지식을 가진 인간의 모습은 사실 로봇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 인문학을 선택과목으로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회계학을 필수과목으로 정하려는 한 대학교의 이런 시도는 오직 회사에 필요한 지식을 가진 로봇같은 인재(?)만 필요하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이다. 


로봇은 감정을 느낄 수 없으므로 당연히 사랑 또한 할 수 없다. 이를 대하는 인간의 심리는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갈 박사는 가장 아름다운 로봇 헬레나를 가리키며 하느님도 그렇게 아름다운 피조물은 만들 수 없을 것이라 자부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할 수 없다. 현실에 없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헬레나를 보는 것은 오히려 더 괴로운 일일 것이다. 갈 박사는 그녀를 보며 그렇게 아름답지만 쓸모 없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소름 끼쳐 한다. 로봇이 오직 고유의 기능만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들에게 감정의 전이를 바란다면 그 때부터 로봇은 그야말로 불필요하고 무능한 존재가 된다. 그것을 만들어낸 조물주에게조차도 저주 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로봇, 그리고 우리 이야기 


이 책은 곳곳에 섬뜩한 사고들이 숨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권력자가 피지배자를 조종하는 방법들이다. 로봇이 폭동을 일으키자 도민은 로봇의 국적을 다르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모두 다른 로봇을 만들게 되면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해서부터 죽는날까지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곤 편견을 조장해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개인간의 유대이다. 모든 권력은 유대를 끊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시대가 변할수록 그 방법이 교묘해졌을 뿐이다. 이 작품은 군데군데 이러한 인식을 심어놓고 은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로봇들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흉내내며 폭동을 일으키는 것도 우연이 아닌것이다. 로봇의 폭동은 인간과 로봇의 구도가 아니라 감정을 저지하고, 연대를 끊으려 했던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봐야할 것이다. 


결국 로봇의 행동들은 문명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대체될 수 있다. 기계 부속품처럼 개성과 가치를 상실하는 인간이 로봇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로봇이라는 작품이 갖는 의미는 후에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 아닌 존재를 생각하게 했지만, 사실 그 근간에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누구의 이야기인지 판단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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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09-2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닉에서 하나 찍었는데 맞췄네요. 사지선다 답안지에서 찍는 것도 이렇게 잘 맞췄으면 좋았을 걸.. 그래도 누가 좋아요 눌러주는 사람도 있었네요. 아마도 좋아요 알바

CREBBP 2015-09-24 12:59   좋아요 0 | URL
그리고 북플을 쓰세요. 신세계야요

고군분투 2015-09-28 00:42   좋아요 0 | URL
북플이 먼가요. 알라딘에서는 첫 댓글이네요. 이것도 적반하장으로 바꿨어야 했는데 선정이 된 이후라서 헤깔릴까봐 그냥 뒀어요. 꼭 좋아요 알바라고 해야 하나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