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웨어 - 생각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리처드 니스벳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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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벨 경제학상은 특이한 이력의 인물에게 돌아갔다. 그 주인공은 대니얼 카너먼으로 그는 경제학이 아니라 심리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자였다. 이것은 심리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탄 자체로도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성'의 영역만을 점유하던 경제학이 '감성'의 영역에 슬쩍 발을 들이밀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특별했다. 그는 우리 생각의 근원을 두가지 시스템으로 분류했다. 그가 명명하기를 우리 내부에는 시스템1과 2가 존재하는데, 시스템1은 fast thinking이라고 하고 시스템2는 slow thinking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수도를 떠올리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시스템 1의 문제이고, 354X687 처럼 생각을 해야 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시스템 2의 영역이다. 이 시스템의 구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시스템2에 의해 내린다고 생각하는 많은 결론이 사실은 시스템1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의 '마인드 웨어'는 그 출발점이 대니얼 카너먼의 두 가지 시스템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물에 대해 평가하고, 현상에 대해 판단하는 그 모든 과정에 '합리적인' 요소는 얼마나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믿고 생각하는 우리 머릿속 일 중 상당수가 심각하게 잘못되는 경우가 있으며, 오직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 하는 바람에 오히려 원하는 이익을 얻지 못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표를 샀다는 이유로 재미 없고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영화관에 2시간을 더 앉아 있어야 한다는 직관은, 사실 이미 들어간 '매몰비용'은 우리가 앉아 있지 않아도 더 들어가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이성적인 근거에 대항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번 어리석은 직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에 빠져 어리석을 결론을 도출한다. 


마인드웨어는 우리가 쉽게 할 수 없는 '합리적인 추론'을 과연 학습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밝히듯 '합리적인 판단은 학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회자되는 중요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니스벳 교수는 이는 얼마든지 학습할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마인드 웨어'라는 개념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좀더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사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쉽게 결론 내려서도 안되고,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과 현상의 표면적인 이유에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설명한다. 


책에서 예시 된 합리적 추론을 위한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이것은 댄 시로커가 오바마 대선운동 홈페이지 관리에 합류해서 적용한 'A/B 테스트'이다. A/B 테스트는 인접한 두 개의 값을 비교해 더 나은 것을 구분해 내는 방법이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32비트 정수 백만 개를 정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오바마가 답한 '거품정렬'과 비슷한 개념이다. 거품정렬은 바로 옆 데이터를 비교해 큰 데이터를 한쪽으로 몰아가면서 수를 정렬하는 방법이다. 당시 댄 시로커의 과제는 '과연 어떤 홈페이지 디자인이 후원자를 가장 많이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는 이 답을 내기 위해 A/B 테스트를 이용했고, 결과적으로 '자세히 알아보기' 버튼과 '가족사진'의 조합이 가장 많은 클릭을 끌어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이와 같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최선의 답을 내는 것은 일상에서도 얼마든 이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의 저자는 '생각의 지도' 저자로,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은 저자가 얼마나 독창적이면서도 논리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의 지도는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사람들의 편견을 확 뒤집어 놓은 훌륭한 책이었다. 이번 책 '마인드웨어'는 그 내용이 다소 어려운 부분도 없진 않지만, 다양한 예시와 쉽게 이해가는 사례를 통해 우리 생각이 합리화 되는 과정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설명했다. 흠이라면 조금 두꺼운 것과 표지가 다소 사이비 학문의 느낌을 풍기는 것이긴 하지만, 생각의 지도 표지를 생각하면 이 정도도 감사하다고 봐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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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박도봉의 현장 인문학
김종록.박도봉 지음 / 김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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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의 판매량이 어떻게 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지금은 독자들이 자서전에 기대하는 정도가 역대 최저가 아닐까. '자기계발'의 신화가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믿는 것이 지독한 '희망고문'임을 확인했을 때 우리는 한동안 공황에 빠졌다. '시크릿' 같은 세상은 역시 현실에서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서전도 이러한 '현실'의 바람을 타고 내리막을 질주하는 중이다. 그런 우려 때문은 아니겠지만 자서전 류의 책에 '인문학'을 붙인 건 그런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방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김종록 문화국가연구소장이 알루코 그룹 박도봉 회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실어 놓은 책이다. 이전이라면 이 내용들을 묶어서 자서전 형식으로 나왔을 법하지만 굳이 인터뷰 형식으로 나온 이유가 있다. 제목의 '현장인문학'이라는 용어는 책에서는 이런 형태로 쓰여있다. 박 회장이 현장에서 느낀 점이나 평소의 철학을 이야기 하면, 김 소장은 이를 인문학적 사례에 비추어 정리를 하고 그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창업에 대해 너무 낙관하는 것이 아니냐는 김 소장의 질문에, 박 회장은 낙관론자들이 세상을 변화 시켰다고 이야기 한다. 그 때 김 소장의 질문은 이렇다. 


'피그말리온'을 쓴 극작가 버나드 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모두 필요로 한다. 낙관론자가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발명한다.".... 저는 세상이 낙관론자와 비관론자가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해왔다고 봐요. (p. 222)

현장인문학이 그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편인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법으로 '인문학'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했다는 의미가 되겠다. 자칫 책 속의 철학으로 끝날 이야기이거나, 현장의 이야기이기만 할 수 있는 내용을 하나로 엮어 질문하고 답하면서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박 회장은 흙수저 출신으로 지방대를 나오고 대학원을 다니다 현장으로 뛰어들어 회사를 세우고, 지금은 연매출 1조 원 대를 올리는 자주성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야기한다. 지금 머뭇거리지 말고 현장으로 뛰어들라고. 노력여하에 따라 신분 이동이 자유로웠던 근대사회를 '땀이 혈통'인 사회라고 했다. 그것이 지금도 통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지만, 박 회장은 적어도 자신만큼은 땀으로 일군 결실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증거이므로 그의 자신감과 철학 또한 확고하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고, 책상머리의 편한 일자리에서는 그런 답을 결코 찾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책의 구성이나 내용이 맘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지금은 또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은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겠지만. 노력하면 되던 시절, 억지였지만 '하면 된다'는 것이 가끔 실현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한 시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전보다 확률이 희박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앞서 말한것처럼 자서전에 대해 느끼는 공감이 전보다 확연히 떨어지는 것은 그것이 자서전 속의 이야기라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도전정신과 낙관주의, 기업에 대한 철학에 대해 읽을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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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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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의 제목으로 '뭣이 중헌디'만큼 적절한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박웅현은 끊임 없이 인생에서 '뭣이 중헌지' 알기는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이다. 당신이 정신 없이 지하철을 잡으러 뛰어가는 계단 틈새에 그 척박함을 이기고 피어난 풀을 보았습니까. 당신이 가장 바라는 아이의 100점짜리 시험지 말고, 일기장에 적힌 아이의 미치게 순수한 꿈을 보았습니까. 그의 책은 이런식이다. 이 책은 '책은 도끼다'의 속편이다. 전작과 이번 편까지 읽고 나니 그가 책을 낸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것은 바로,


자랑하려고. 


자랑이라. 누구든 책은 그러려고 쓰는 건데 그게 뭐? 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자랑은 좀 특별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봐왔다고 생각하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같이 야구를 보러 간 친구가 적시 안타가 나올 때 깜빡 다른 곳을 보았다면 우리는 우쭐해하며 '야, 그걸 못 봤어? 아 진짜 장난 아니었는데. 절묘하게 1,2간을 갈랐는데 그걸 못보다니 아쉽다야.'라고 할 것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었는데도 그것을 못 본 사람들에게 박웅현은 잊을만하면 책을 써서 '자랑'을 한다. '그 책 못 봤어요? 봤다면서요? 근데 왜 그걸 못 봤어요? 나는 딱 보니까 보이던데.'


이런 말을 들으면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므로 나는 전략을 생각한다. 그가 보물을 발견하는 패턴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려고 그의 책을 열심히 읽어댄다. 나도 발견하고 싶어서. 읽다 보면 점점 내가 저자에게 말려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점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나쁜 점(?)이 되겠다. 이번 책에서도 저자는 수십 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리고 거기서 인용된 문구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책에 이렇게 괜찮은 문구가 있었나.' 선별된 문장을 보는 동안 책읽기의 방법이 하나씩 보인다. 이제는 전편을 볼 때만큼 좌절하지는 않는다. 이제 제법 패턴을 익혔으므로 나는 태연한 척 말한다. '하긴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이제 나도 웬만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았다는 말투다. 


책을 열 명이 읽었다면 열 개의 해석이 나와야 하죠.(p.21) 


같은 지역을 다녀온 사람이 쓴 기행문이라고 해서 같은 내용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은 그 지역의 높은 빌딩이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공원에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은 친절한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한 사람은 뭔가 감추는 듯한 주민들에게 거리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니코스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이 실려있지만 그것 또한 예시일 뿐이다. 기행문만 그럴까. 미술에 대한 책도, 불변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생각도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므로 사람 수만큼의 다른 감상을 갖는다.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클로이와 나는 ..... 같은 침대에서 같은 책을 읽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각기 다른 데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결국 다른 책이었던 셈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

각각의 책에서 각각의 감상을 갖는 것 그것이 저자가 '책은 도끼다' 시리즈에서 계속 주장하는 바이다. 그것은 우리 중 누구라도 '책은 도끼다'의 속편을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박웅현은 광고를 하는 사람이므로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견(見)'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반면에 나는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청(聽)'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당연히 그가 주목하는 부분과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다를 것이다.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끝없이 주장하는 책 읽는 방법이다. 자기만의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순간이야 말로, 우리 인생에서 책이 '도끼'가 되는 순간이다. 전작들을 읽고 저자의 한계를 살짝 느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2~3년에 한번씩 속편이 나와주는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봐도, 책은 도끼다. 여전히, 책은 도끼다, 어쨌거나, 책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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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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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이 있을 리 없지만 리뷰를 쓰는 가장 적절한 순간이 언제일까 생각한다. 특히 이 책 같은 스릴러의 경우가 그렇다. 책의 3분의 2 가량을 읽는 중이라면 그 순간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다. 나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단서는 다 받아 놓은 상태다. 분명히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것이 명백하고, 내가 읽은 내용 중에 그것을 밝혀줄 모든 증거가 숨어있으므로 상상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독자에게는 그 순간이 가장 긴장되고 기대되는 순간이므로 그 순간에 리뷰를 쓸 수 있다면 최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리뷰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에야 쓰이므로 그 감정이 사그라든 후이다. 더 문제는 사건을 전말을 다 알고 난 후에는 이 전의 흩어진 블록들이 어디에 들어갈지 다 알게 되므로 수많은 복선과 암시, 추리와 혼선이 무의미해진다. 사건이 완벽히 정리된 후에 리뷰를 쓰는 것이 매번 아쉽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리오노라'라는 여자가 화자이면서 주인공이다. 과거의 친구들은 그녀를 '리'라고 알고 있지만 그들과 연락을 끊은 후에는 '노라'로만 지내고 있다. 그녀는 10년 동안 연락이 끊긴 '클레어'라는 친구의 결혼 전 싱글파티에 초대를 받는다. 단순히 오래 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녀와 클레어 사이에는 독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 즘에야 드러나지만 노라는 계속 그 점을 생각하며 그 자리를 탐탁지 않아한다. 내키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 '니나'와 같이 가기로 하고 그 둘은 초대받은 숲 속의 유리 별장으로 향한다. 그녀에게 궁금한 것은 왜 클레어는 10년이나 지난 후에 자기에게 연락을 했을까. 왜 결혼식에는 초대하지 않았으면서 싱글파티에는 부른 것일까. 였다. 


그곳에는 클레어를 영웅처럼 떠받들고 그녀의 모든 말을 신봉하는 '플로'라는 친구와, 노라와 니나, 동성애자인 톰과 6개월 된 애를 놓고 온 멜라니가 있다. 철저히 숲 속에 있고, 휴대전화 신호는 잡히지 않고, 유선전화마저 끊긴 공간. 왠지 '살인'하기 딱. 좋은 장소이다. 그들이 모여서 위자보드(우리나라 분신사바 게임 같은) 게임을 할 때 불려들여진 혼령에 의해 쓰인 글자는 다음과 같다. M m mmmmuurderrrrrrrer. '살인자'. 이것은 일어날 살인을 예고하는 혼령의 암시이거나, 살인의 의도를 가진 누군가의 장난이다. 처음부터 을씨년스러웠던 이상한 장소에서의 싱글파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건은 노라가 병원에 눈을 떠서 드문드문한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장면을 따라가면서 서술된다. 이 소설에서 아쉬운 구성을 말하자면 이 점이다. 누군가의 기억이 회복되는 장면의 순서대로 사건이 재구성되는 방법은 흔한 수법이다. 인기를 끌고 있는 '종의 기원'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런 진행이 작가가 원하는 기억만 뽑아내는 방식, 즉 독자가 관심을 끌 수 있을 정도까지만 기억하고 한참 후에 또 그만큼 기억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색하다. 소설의 등장인물이 소설이라는 형식과 분리되어야 함에도, 그런 연결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쉽다. 


물론 그런 구성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소설 자체는 충분히 긴장되고 흥미진진하다. 줄거리 외에도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그들의 상처도 눈여겨 볼만하다. 사실 이 소설 전체가 한 사람의 완벽한 스토리를 위해 쌓아올려진 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인생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타인의 이야기에 우리는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다. 영화로 나온다고 해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장면을 세밀하게 상상하다 보니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리즈위더스푼보다는 제니퍼 로렌스가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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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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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는 순간 생각한다. 이건 보통일이 벌어지고 있는 집은 아니구나. 


'강자'와 '약자'로 나뉘는 순간은 둘 중 하나다. 균형을 이루던 두 사람의 관계에서 한 명의 힘이 강해지거나, 혹은 한 명의 힘이 약해지거나이다.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기가 그랬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는 주인공 오기는 교통사고로 며칠 만에 눈을 뜬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기관이 오직 눈꺼풀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 전까지 교수로 인생의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에게 갑자기 달려든 반전은 감당하기 너무한 고통이다. 


겨우 조금 움직이기 시작한 왼손으로 등긁개를 잡는 일뿐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기억의 반추이다. 그는 자리에 누워서 하나씩 과거의 기억을 꿰맞춰 나간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 생각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아내를 생각한다. 기자의 사명과 공명심이 아닌, 샤넬 슈트를 입은 멋쟁이 오리아나 팔라치를 꿈꾸던 조금은 허영이 있던 여자.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았고 대부분 이뤄내지 못했지만 사랑스러웠던 여자. 그리고 마침내 '동경'과 '욕망'을 구별하고 말게 된 여자. 여기까지가 그가 알던 그녀였다. 거기에는 어떤 오차도 없이 정확한 형태의 아내가 완성되어 있었다. 


'도대체 그 빛은 언제 사그라든 것일까.'(p.28)

책의 제목이 '홀(hole)'인 것은 바로 오기의 완벽한 인생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지점을 스스로 기억해 내기 때문이다. 홀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너무도 여러 번 그에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단 한 번도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간병인을 자청하던 장모에게서 서서히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 이유가. 


어디부터였을까. 아마도 딸의 서재에서 딸이 써왔던 글, 마지막이 될지 모르고 작성했던 '고발문'을 읽고 나서 장모의 마음은 굳어졌을 것이다. 고발문은 오기의 모든 악행에 대한 최종 보고였을 것이므로. 그날부터 장모의 복수가 시작된다. 그것은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복수가 아닌, 피 말리는 폭력이었다. 이 복수의 형태는 그녀의 딸이 오기에게 당했을 고통의 데칼코마니이다. 이미 부부 사이에 커다란 '홀'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영달과 명예만을 향해 내달리던 오기, 그리고 그녀의 불만을 항상 피해의식 정도로 치부해 버렸던 오기. 그런 오기에게 장모는 그가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형식은 유지하지만, 내용은 야비하다. 부부관계는 유지했지만 부인의 존재를 무시했던 것처럼, 간병인의 역할을 하면서도 오기가 '병신'임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장모는 마당에 큰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장모는 문병 온 오기의 동료 에스와 이런 대화를 한다. 


'연못이요? 정원에요?

'산 걸 풀어놔야죠. 

 살아서 꼬리도 치고 숨도 쉬고 헤엄도 치고 그러는 걸 둬야지요.'

'잉어 같은 거요? 근사하겠네요.'

'산 게 근사합니까? 추접하죠. 

 악착같이 그 좁은 구멍에서 살려고 해댈 텐데....' (p.149)

장모에게 오기는 추잡하게 살아남으려는 존재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을 때 한번도 그것을 감사하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다 잃고 나니 이해해달라고 조르는 비열한 존재다. 딸이 그토록 큰 구멍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도 아무것도 못 보았으면서, 자신이 빠져 있는 시궁창에서는 나갈 수 없냐며 눈치를 보는 쓰레기다. 


소설의 마지막엔 과거에 오기가 부인과 했던 어떤 소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간발의 차이로 죽을 고비를 넘긴 어떤 남자가 어느 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아내가 남편을 찾았을 때 다른 도시에서 이름을 바꾸고 살고 있었다. 그 이야기 끝에 그녀는 펑펑 울었다. 그는 그녀가 우는 이유도 몰랐고 달래지도 못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그것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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