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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작은 나무는 인디언인 체로키 족의 피가 섞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 속에서 살게 된다. 과묵하지만 따스한 시선으로, 말없는 한 번의 쓰다듬으로 작은 나무는 그렇게 자연 속에서 개들과 함께 커나간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단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젊은 것도 아니지만, 작은 나무에게 생활을 보여주고 함께 더불어 살면서 자연을 가르친다. 더 없는 가족 간의 사랑에 입가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 줄어들면 그만큼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줄어들 거라는 게 할아버지의 지론이셨다. (...) 할아버지는 말의 뜻보다는 소리, 즉 말투를 더 마음에 새겨들으셨다.>
작은 나무는 인디언의 피가 아주 조금 섞였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인디언 식으로 먹고 생활하고 그 방식대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수많은 동족들이 백인들의 총칼 앞에 쓰러지고, 더 먼 곳으로 쫓겨나거나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살 수밖에 없는 부당함에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자신들의 방식대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대신,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다>며 인디언 종족에 대한 옛날 일들에 대한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영혼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져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지만 평생 욕심 부리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고 나면 밤톨만한 영혼만 남아 다시 태어나도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가들의 속셈을 꿰뚫는 인디언들의 조롱과 유머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고 불법(!)으로 산속에서 몰래 위스키를 제조하며 조마조마한 순간을 넘길 때는 함께 그 스릴을 즐기고 ‘정의의 불법’을 지킨다. 또한 인디언의 삶의 방식은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를 동안은 사냥을 하지 않음은 물론, 절대 취미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도 않는 것이다. 오직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사냥을 하거나 쌓아두기 위해서 더 많은 짐승을 잡지 않는 것이 인디언의 현명함이다.
사람 좋자고 만든 제도로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을 떼어놓는 것은 모두 물론이고 가족인데도 법을 위한 법 앞에선 꼼짝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고아원엔 사랑 대신 무관심과 벌 그리고 매가 판을 친다. 그에 반해,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마음속에 사랑의 불씨를 간직한 인디언 이웃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를 고아원에서 구하기 위해 위험도 무릅쓴다. 그 사랑의 불씨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인 것이다. 또한 그들의 사랑은 이해로 충분하다.
인디언 할아버지, 할머니의 교육은 교육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그들은 작은 나무에게 지식도 지혜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자연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인디언들의 생활방식이 가끔은 미신적으로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 자손 대대로 그들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온 모습이다. 순진해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은 결국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은 나무가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오히려 작은 나무는 자신에게 남은 개들까지도 보살피는 사랑의 대물림까지 실천한다고 하겠다. <할아버지는, 남에게 무언가를 그냥 주기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훨씬 좋은 일이다, 받는 사람이 제힘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면 필요할 때마다 만들면 되지만, 뭔가를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남이 주는 것을 받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인격이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을 도둑질당하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하면 그 사람에게 친절한 것이 도리어 불친절한 것이 되고 만다고 하셨다.>
그들의 사랑에는 슬픔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작은 나무야, 늑대별 알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보이는 별 말이야. 어디에 있든지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 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로 인해 억지로 생이별을 하는 순간에 할머니가 작은 나무에게 하는 말이었고 작은 나무는 한 번도 그걸 잊지 않았다.
둑음도 그들을 갈라놓지는 못했다. 웃으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또 다시 만날 것이었으므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둑음의 인사가 있을까.
할아버지는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라고 하셨고 할머니는 목에 편지를 꽂고 오두막 앞에 앉아계셨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다 잘될 거다. 할머니가.”
읽는 내내 미소를 짓거나 웃었고, 다 읽어갈 즈음에는 작은 나무도 의연히 대처하는데, 난 슬픔을 주체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슬픔은 감동의 눈물이었다. 마음속까지 젖어드는 따스한 감동... 이 겨울이 포근한 눈에 감싸이듯이 내 영혼도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