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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 일본 소설은 읽으면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하면 되니 너무 편하다.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자극적이고 적당히 읽을 만하다. 간혹은 너무 기괴한 소설도 있어서 기가 막힐 적도 있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현대물은 유쾌하고 즐겁다.
<스텝파더 스텝>도 비슷하다. 아주 쿨한 얘기이다. 서른다섯 살 노총각 프로도둑이 도둑질하러 들어가다 번개를 맞고 옆집 지붕으로 떨어졌다 깨어나 보니 쌍둥이가 부모가 각자 애인하고 떠나버렸다며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한다. 어떻게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각자의 애인과 떠나지? 게다가 엄마는 아빠가 아이들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빠는 엄마가 아이들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게 말이 되나? 따지고 보면 좀 웃기는 얘기지만, 따지지 말자. 설정이 그러니 그런가보다고 넘어가주자. 그러고 나면 얘기는 정말 정신없이 재밌어진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사실 다른 데 있다. 무지막지 조숙한 쌍둥이와 그런 쌍둥이한테 말려들어 ‘아버지’ 소리가 처음엔 싫지만 나중엔 안 들으면 허전할 정도가 되는 나이보다 유치한 노총각이 함께하는 추리적 감각 때문이다. 대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곳, 근방,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로 인해 노총각 도둑은 아이들과 함께 추리를 하고 사건을 해결한다. 아이들 앞에선 나이보다 유치한 총각이지만,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가끔은 너무 쉽게, 가끔은 또 쫌 황당하게 해결이 나기도 해서 추리치고는 비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설명을 들으면 정말 그럴듯하긴 하다.
대여섯 개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즐겁게, 쿨하게 흘러가다 마지막에 쌍둥이 유괴사건이(그것도 또 동시에~!) 일어나고 해결이 되는 건 좀 정말 오바스럽다 싶지만, 밉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에도 부재하기 쉬운 애정 관계, 가족 관계를 가족도 아닌 더구나, 사회적으로 부도덕하다고 정의된 프로도둑이 이루고 있지 않은가. 부모도 자기들 애정이 더 우선시되는 현대에서 혈연적으로는 전혀 상관없는 노총각과 쌍둥이 아이들의 관계, 그들이 구축해가는 건 인간 사이의 신뢰이며 애정인 것이다. 혹시나 쌍둥이의 부모가 돌아오면 쌍둥이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애정을 쏟던 자신은 황이 될 것을 예상해서 미리 그 애정을 동결시키려다 노총각은 마음을 돌린다.
“쌍둥이의 부모 또한 철저히 에고를 관철시키면서 집으로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인간이 돌아올 거라고 상정해서 쌍둥이와 다투고 마음까지 상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지 말자. 서로 외로운 인간끼리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닌가.”
그렇다. 세상은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매력적이다. 유쾌하고 쿨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