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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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일단 스토리 자체가 기막히다. 구성은 상대적으로 단순하지만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지루할 틈이 없고 어디 한 군데 빈 구석이 없다. 큰 줄거리 안에서 작은 이야기 조각들이 차례차례 맞아떨어진다. 또한 말맛이 기막히다. 

이 작품의 무대는 붉은 능소화가 소담스럽게 담장에 떨어지는 기생집, 부용각이다. 부용각의 중심축은 부엌어멈이면서 기생집의 주인인 타박네이고 사랑밖에 모르며 곱게 늙은 소리기생인 오마담이다. 그 뒤를 잇는 춤기생도 있고 오마담의 기둥서방도 있고 순수하면서도 집요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는 집사 정도가 중요 등장인물이다. 그들의 인생과 사랑, 그들이 나름대로 살아온 그들만의 세상이 정말 멋들어진 한판 춤처럼 너울너울 춤춘다.

기생이고 기생집이지만 부용각은 부용각 나름대로의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둑음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기방의 법도는 이제 멀어진지 오래지만 타박네는 기방 음식에서부터 화초 올리는 것까지 세세한 신경을 쓴다. 물론 우리 옛말과 정겨운 욕설 등은 잔칫상의 맛난 보너스다. 차마 사랑하는 이 앞에서 화초를 올릴 수 없어 자살을 하는 오마담의 친구, 채련의 둑음에는 정말 야속할 정도로 안타깝고 자신을 사랑하는 집사 앞에서 다른 남자와 늘펀하게 몸을 섞는 장면에도 술상에 오른 술과 안주에 함께 취하듯 독자들도 함께 취한다.       

타박네의 인생은 이런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면, 몸에 붙은 살이 헐렁해지고 윤기 있던 피부에 주름살이 덮이는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질 줄 알았다. 내주는 게 있는 만큼 받는 것, 얻는 것도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타박네는 늙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나이를 오히려 인생의 훈장처럼 여긴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늙는다는 것은 철저히 손해보는 장사였다. 일흔아홉의 타박네를 기다리고 있는 건 버려도 될 굳은 습관과 쓸데없는 잔소리, 조금씩 풀리는 손목의 힘처럼 근육이완으로 생기는 요실금의 기미들뿐. 늙음의 끝은 완전한 소멸이었다. 적요한 소멸의 늪에 빠지기 전까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마담의 사랑은 또한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만인을 품는 사랑...
<강단 있는 타박네도 말리지 못한 오마담의 행보였다. 키 작은 남자는 아담해서 좋고, 뚱뚱한 남자는 든든해서 좋고, 말라빠진 남자는 예민해서 좋고, 성격 나쁜 남자는 박력 있어 좋고, 얼굴이 찌그러진 남자는 아무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좋고, 돈 없는 남자는 청빈해 보여서 좋은 게 오마담이었다.>

새로 기생의 길로 들어서며 화초를 올리는 춤기생인 민예나의 본명은 “나끝순. 도대체 성의라곤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는 이름이다.”로 정의되는데 그녀의 삶은 어릴 적 동네 풍경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도 이럴 거라. 녹이 슬었거나 곰팡이가 피었거나 내장이 튀어나와 있을 거라고. 따끔따끔한 고추 매운내에 눈은 뜰 수조차 없고, 조심해서 걸어가도 별수 없이 발은 구정물에 빠지고 말 거라고.>

하지만 21세기에 아무리 무형문화재 전수생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고 그 길이 험난하고 힘들다 하더라도 꼭 다른 직업 다 제쳐두고 과연 기생이 되어야 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읽으면서 앞부분에선 계속 배경이 되는 시대가 언제인지 찾아보곤 했었다. 21세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이 질문만 통과하고 나면 나머지는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야기는 술술 풀어지고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 입안 가득 고소함이 퍼지듯이 그 맛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이 현수, 이 작가가 궁금해진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이 작가가... 읽다보니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그녀의 말이 가슴으로... 감성으로 내게 스며들었다. 작가의 사랑이 느껴져서, 그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릿해졌다.
 
<지난 4월, 기생 부용의 산소를 찾았다. 봉분의 잔디가 하도 푸르러 눈이 아팠다. 나는 묏등에 가만히 손을 갖다대었다. 그대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주겠노라고, 그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놓치지 않고 쓰겠노라고, 상상이 아닌 짐작으로. 나, 적지 않은 날들을 살아왔으니 이제 짐작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이 땅에서 이름 없이 살다 간 많은 기생들에게, 그들의 빈손에, 그들의 맨발 위에 이 소설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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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성석제 초대권

 

 

 

 

 

 

 

 

 

 

 

 

 

 

 

 

 

 

 

 

 

언제, 어떤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좋은 생각>인지, <샘이 깊은 물>인지, <샘터>나 <창비문학>인지 그런 책이었을거다.
월간지나 계간지일텐데 그것도 병원에서 읽었다.

누구에게든 특별히 잊기 어려운 해가 있다.
1998년 12월, 나는 당시 척추 디스크 재발로 서산시내의 한 병원에 송장처럼 누워 있었다.
척추 통증 환자가 겪는 또 하나의 고통은 돌바닥처럼 딱딱한 침상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두 발로 온전히 서 있기도 힘들어
집에서 입던 무릎이 튀어나온 주황색 츄리닝을 걸쳐 입고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어 서 있는 내 꼬락서니는
꼭 늦가을 추수가 다 끝나고 11월 가을바람만 썰렁하니
가득 휘모는 들판의 처량맞은 허수아비였다. 
뭐, 산다는건 지지리궁상이나 청승의 절정모드인 그런 순간이
채권자의 짐승같은 발자국 소리처럼 반드시 찾아 올때가 있다.

의사의 사형선고같은 협박을 들으며 간신히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이라고 찾아간 내자리에는 매트리스가 없다.
스프링 침대위에 바로 널판지가 기세등등하게 납작 엎드려 있는게 아닌가.
세상에나, 척추때문에 온 몸이 마비가 된 지경인데
거기에 몸을 착 밀어붙이고 진짜 밀납인형이 되야 했다.
척추통증은 둘째치고 온 몸의 뼈다구가
일제히 제 각각 비명을 지른다.
삐거덕 끼익, 딱..뚝...아득!
관절이 뚝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밤새 귀신 곡소리처럼 들렸다.
우라질!

몸무게 38kg
대단도 하지. 지금은 거기에 십몇킬로가 더 보태졌다.
이튿날, 아침에 들어온 간호사에게 정중한 히스테리를 부리며
퇴원수속을 협박했다. 의사가 왔고, 매트리스가 뒤이어 옵션으로
나중에는 집에서 얇은 모포 한 장까지 보너스로 운송되었다.

그 때 삐꺼덕거리는 스프링 침대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 다마 두 개만 쳐다보다가
성석제의 짧은 글을 읽었다.
어떤 주제라기보다는 이력서같은 걸 읽었는데
기형도와 대학때 친구였고,
기형도가 1989년 스물아홉살의 나이로 종로2가 파고다 극장에서 죽기전에
미리 작성해 놓은 유서에 "내 책은 다 성석제에게 줘라"라고 했다는.   

성석제
이 작가의 이력이란
법학전공에, 전국 팔도 강산 유람에..말년 꿈은 산에 나무를 실컷 심는 일이라고 했던가.
법학을 전공하면 사법고시를 응모해야 하는 이 나라의 취업 수순을
거역(?)하고 일찌감치 시 나부랭이를 썼다.
그러니까 판, 검사 나으리가 될 신분이었는데
집에서 난리도 아니었을 거다.

자신의 전공대로 살아야 하는 고정관념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이 나라의 최고 CEO가 되 있던가
학교 앞에서 장난감 권총과 종이 인형등을 파는 구멍가게는 최소한 갖고 있어야 한다.
내 첫 직장이 S그룹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 곳에서 승승장구 초고속 승진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그들에게 심난한 내 얼굴을 여러 날 보여주고 나서
다 때려치우고 책상서랍을 정리해 집에 돌아왔을 때
세계대전에서 무참하게 깨지고 돌아온 패잔병 보듯 바라봤다.

성석제
그러니 이 작가의 이력에 얽힌 사연은 나보다 더 징글맞은
거머리의 눈총과 입담들과 훈계가
냄비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간장덩어리처럼
아마 모르면 몰랐지 한 세월 끈덕졌을 것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상처자국으로 만든 빗살무늬토기의 고결한 성숙미를 찬양하자고.
아퍼죽겠는 판국에 개뿔 무슨 상처의 미학이냐.
다 시끄럽고
작가가 온전히 글만 써서는 기초생활조차 보장되기 어려운 현실에
작가 책이나 한 권 사주자.
내가 사 주는 작가 책 한 권이 그에게는 일용할 양식이다.
김 훈은 아예 노골적으로 말한다. 자전거 외상값좀 갚게 내 책 좀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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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01-1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정>과 <소풍> 밖에 안 읽었지만, <참말로 좋은 날> 들고 교보 한 켠에 서서,
선생님 옆 모습 훔쳐보다 올 겁니다. ^^ 찹쌀떡...도 먹음 좋구. ^.~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강서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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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유쾌하게 머니를 모았다고? 그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이나 질투를 느낀 것 같으니 말이다. 사실 나오자마자 읽어보고 싶었는데, 하도 읽지 말라는 평이 많다보니, 이차저차 미루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사실 읽다 보면 슬슬 약도 오르고 짜증도 난다. 왜냐? 자꾸 나하고 비교를 하게 되니까.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배운 게 더 많은 거 같지도 않은데, 방송작가를 하면서 그렇게 머니를 많이 번단 말이야? 그럼 난 뭐야? 게다가 아무리 자기가 밤샘노동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세탕이나 뛰어가며 코피를 흘리고 영양실조에 걸려가면서 머니를 모았다고는 해도, 그래도 들에 나가 노동을 했어? 광산에 가서 석탄을 캤어? 부두에서 짐을 하역했어? 아무튼 이래저래 펜대 굴리면서 ‘쉽게’ 번거잖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 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만 하면 이 책에서 볼 것도 배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에는 배울 게 있고, 볼 게 있다. 그래도 뭔가 남보다 나은 점이 있었으니, 남들 못하는 1억을 3년 안에 모았고, 책도 냈지 않느냐 말이다. 누군가가 만약 월급이 3분의 1이 적었다면, 누군가가 그녀보다 2분의 1을 적게 벌었다면, 그녀만큼 억척을 떨면서 3분의 1이 적은 머니, 2분의 1이 적은 머니를 모아갖고 있느냐...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강서재는 그런 면에서 남보다, 나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럼 그녀의 어떤 면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느냐.

강서재는 이 책에서 그녀가 어느 날, 정신 차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으면서 통장 잔고가 겨우 700만원이었단다. 그래서 젊은 날, 미친 듯이 머니를 벌어보고자 했단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다고. 보통 사람들이 머니를 많이 모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게 밖에는 모이지 않는 이유가 목표액을 정해놓지 않고 무작정 머니를 모아서 그렇단다. 딴에는 일리가 있다. 나도 무지 절약하면서 무리를 해서 늘 머니를 모아도 그렇게 빨리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버는 족족 명품으로 휘감고 명품족들이 모인다는 클럽을 싹쓸이하겠다면, 그 길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이 책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저 그런 월급쟁이인데, 언제 머니를 모으나 걱정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둑어라고 일하고 둑어라고 모으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평생 그러라는 게 아니다. 기간과 목표액을 정해놓고 하란다. 모으는 족족 갖다가 은행에 넣고 힘들어질 때마다 통장을 갖고 다니며 보란다. 피곤이 싹 가실테니... 게다가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벌고 모은다는 뿌듯함도 함께 보너스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책이 좋은 점은 머니를 많이 벌고 잘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머니를 모으면서 젊은 날, 자신도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그걸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가진 거라곤 젊음과 일하고자 하는 의욕, 그것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방송작가가 아니라서 강서재만큼 못 벌면 어떤가. 대신 내가 버는 만큼, 벌 수 있는 만큼 목표액과 기간을 정해서 하면 되는 것이다. 평범한 나도...
 
작가는 지갑에 1십만원짜리 수표를 폼으로 넣고 다니며 남들에게 빈대를 붙었다고 하지만 성격상 그것도 할만 해야 하겠지만, 읽다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내 방향 설정이 자연스레 된다.

“왜 절약은 감염되지 않고 다만 질투를 불러일으킬까. 누가 그럴듯한 핸드백이라도 메고 나타날라치면 곧바로 감염돼 다음 날 똑같은 것을 메고 나타나는 힘찬 전투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왜 절약에는 감염되길 거부한 채 다만 몸서리칠 뿐일까. 왜 절약에는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혼자만 절약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난 내 머니 절약하는 만큼 남의 머니도 절약해주려고 애쓴다. 진심으로... 요건 내 얘기고 암튼 강서재는 머니를 모으다 만나게 되는 어려운 복병들도 무시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마치 머니면 다 되는 것처럼, 머니를 제일 사랑하면서 왜 아닌 척하느냐는 말 같은 거엔 동의하지 않는다. ‘돈을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인정하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머니보다 더 좋은 게 꼭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이 세상엔 머니 말고도 더 좋아할 만한 것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애환을 얘기하면서 거짓말로 점철된 자신의 글, 남의 글을 모두 싸잡아 패대기친다. 모두 다 위선이라는 것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뻔한 소리들을 한 죄로 절필을 하고 싶어진다나. 그게 전부 다는 아니다.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신포도’라서 명품백이 싫다고 하는 게 아니라, 명품백 열 개라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지만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없어서 안 사는 사람도 많다. 물론 누가 거저 준다면야 거절하지 않겠지만.

또 ‘라면 먹고 갈래요?’ 대사를 인용하면서 ‘이영애의 미모 때문이었는지 여하튼 괜찮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는 ‘봄날은 간다’에 대한 평가에는 나도 모르게 불끈했다. 방송작가라면서 이 영화를 제대로 보기나 하고 그런 소릴 하나... 머니 모으느라고 책도 제대로 못 읽고 영화도 제대로 못 봤나 봐... 무슨 그런 소릴... 다른 건 그럭저럭 다 봐줄만 하지만, 저런 식의 남의 작품을 평가절하 하는 건 못 견디겠다. 강서재는... 반성하라. (반성하고 있겠지?)

이 책은 작가가 결론 삼아 썼지만, 머니를 모으는 과정에서 “돈을 다시 보게 했고, 인생을 다시 설계하게 했고,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제 막 머니를 벌기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 직장을 몇 년을 다니고도 아직 이렇다하게 모아놓은 게 없는 직장인들, 머니에 대해서 욕심도 개념도 별로 없는 사람들, 미래에 여행을 떠나거나 자신의 힘으로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강서재처럼 누구나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것이고, 강서재처럼 “돈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인생을 올바르게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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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관계 1
안도현 지음, 이혜리 그림 / 계수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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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바람결에 갈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 하나가 있었죠. 
도토리는 홀로 컴컴한 낙엽 속에서 무서움에 떱니다.
하지만 곧 낙엽들의 위로하는 소리가 들리죠.
자연의 순리를 가르치는 소리예요.
자연은 때로 무섭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도토리를 다 주워가는가 하면
쥐들의 먹이가 될까봐 두려움에 떱니다.
자신을 보호해주던 낙엽들이 썩어가자,
도토리는 슬픔에 젖기도 하고,
갈참나무 싹을 틔우기 위한 고통도 겪습니다.
하지만 갈참나무 싹이 하나 나오자,
도토리는 낙엽들이 속삭여주던 말을 이해합니다.

<관계>는 자연 속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시인의 고운 언어와 화가의 살아있는 표정을 지닌 그림을 통해,
따스한 이야기를 곱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세상은 결국 자연입니다.
자연 속엔 무서움도 있고, 공포도 있고,
어려움과 고통도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 속에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겪으며 완성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관계를 순리로 가르칩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낙엽과 도토리처럼 관계를 맺으며 함께하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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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위의 세 남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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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머리에는 이 작품이 영어로 씌어진 최고의 코믹 걸작이라는 말로 이 작품을 표현하고 있지만 ‘코믹’이라는 말을 요즘 말로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코믹’이라는 말은 원래 웃기는 말이나  태도, 또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가.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코믹’이 아닐까. 그런데 이 책의 ‘코믹’은 여느 ‘코믹’과는 약간 다르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황당함이다. 또한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다. 19세기 작품이라, 더구나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처음에는 문화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문장을 읽어도 곧바로 머릿속에 입력이 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유머도 있고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뜻이 확 들어오지 않는 문장이 길긴 왜 또 그렇게 긴지, 호흡을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를 정도다. 들쑥날쑥해 보이는 문체도 19세기를 잘 모르거나, 영국의 문화를 잘 몰라서 생긴 일인지도 모르겠다. 3분의 1가량을 그렇게 헤매고 나자 조금 익숙해져서 ‘골 때리는’ 그들의 유머에 동참해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여기에서 말하는 ‘코믹은’ 단순히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유머가 아니고 블랙 코메디인 것이다. 일단 익숙해지니 그들의 기가 차고 어이없음에 실컷 웃을 수 있었다. 

세 남자와 개 한 마리가 그 동안 너무 과로를 해서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곧이곧대로 믿으면... 글쎄...) 강으로 보트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이 보통 게으른 인간이라고 말하는 바를 간장약 선전을 본 ‘나’는 모두 간의 문제로 돌린다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간장약 광고지 얘기를 하자면, 나에게는 그 증상이 모두 있다. 틀림없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주된 증상은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대체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내키지 않는 상태가 됨’이다.”

그들의 여행의 생각이나 시작은 무척 낙천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들이 보트를 끌고 저으면서 하는 여행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잠재되어 있겠는가. 그 문제들은 여행을 하면서 하나하나 다 수면위로 떠올라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타인들과 또는 세상과 부딪치며 흘러가게 된다. 개도 마찬가지다. 이 녀석을 평가하는 ‘나’의 말을 그대로 세 남자에게 적용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몽모렌시 역시 내내 같이 있었다. 몽모렌시가 삶에서 추구하는 야망은 훼방을 놓고 욕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옴죽거리다가 완벽하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의 대가리에 아무것이나 막 집어던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하루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

어이없음의 정수는 다음 문장에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들 하고 있네. 이 꼴을 하고서 런던 시내로 나가란 말이야?” 시내에 나가기엔 좀 그렇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그들이 당할 괴로움에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해리스가 예의 그 서민적이고 통속적인 투로 말했듯이, 런던 시내가 그것을 참으면 될 일이었다.” 왜 내가 참아? 네가 참으면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세상을 살려다 보니 자신은 편할 거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래서 이해를 못한다.

이처럼 그들 각자는 뭐든 자신 위주고 자신들이 편할 대로 생각해버리고 행동한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이 하면 되고, 자신보다 남이 조금 더 수고하면 세상살이가 편하고, 자신은 일을 사랑하지만 남을 위해 그 사랑을 양보하는 것이다. 자신이 남보다 늘 많이 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일을 더 해야 하고 자신은 좀 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아침에는 변화를 좀 주어 밧줄로 끌지 말고 노를 젓자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해리스는, 조지와 내가 노를 젓고 자기가 진로를 잡는 것을 최고의 역할 분담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해리스가 자신과 조지가 일을 하고 나를 좀 쉬게 해주는 제안을 했더라면 더욱 훌륭한 인격적 소양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 관점에선 내가 이번 여행 동안에 정당한 양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았고 이 문제 때문에 기분이 좀 상했다.”

바로 그렇다. 바로 ‘내 관점’대로 진실을 말하는 태도에 있어선 금메달감이다.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다. 게다가 그 말을 하면서 정말 자신들은 그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 안에 어떤 거짓도 없다. 그들이 하는 생각이나 논의를 보면 그보다 더 진지하고 더 옳은 말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는 다음의 이 말보다 더 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결단코 이 반대로 행동한다. 결국 그들의 여행준비 단계부터 이 책의 목적은 사고와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돼먹지 못한 우리네 인생을 비판하는 게 아닐까.

“인간이여, 잡동사니를 버려라! 당신의 보트 인생을 가볍게 하라, 필요한 것만으로 채우라. 소박한 집과 꾸밈없는 오락거리, 이름값을 하는 친구 한두 명,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고양이 한 마리, 개 한 마리, 그리고 파이프 한두 개, 간소한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 그리고 조금 풍족한 마실 거리. 갈증은 위험한 증상이니까.” 그들이 준비한 보트는 이것과 딱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이 책의 대단한 점은 등장인물 모두 한 번도 자신의 캐릭터대로 일관성 있게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어나가면서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토록 생활철학이 다른 사람들인데... 그러면서 발견하는 그들의 일관성 있는 이기주의는 차라리 웃겨 둑을 지경이다. “물살 흐르는 대로만 가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떡 버티고 앉아서 물살을 거슬러 싸우면서 물살이 아무리 방해할지라도 꿋꿋이 진로를 헤쳐나가는 데서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 (나는 정말이지, 적어도 해리스와 조지가 노를 젓고 내가 진로를 잡을 때 그렇게 느낀다.)”

정말 웃긴 것은 서로 이런 저런 다른 생각을 자기 관점으로만 생각하며 문제에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서로 싸우거나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 좋은 친구들이고 여행 끝에는 정말 즐겁고 뜻 깊은 여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곱씹어볼수록,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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