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성석제 초대권

 

 

 

 

 

 

 

 

 

 

 

 

 

 

 

 

 

 

 

 

 

언제, 어떤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좋은 생각>인지, <샘이 깊은 물>인지, <샘터>나 <창비문학>인지 그런 책이었을거다.
월간지나 계간지일텐데 그것도 병원에서 읽었다.

누구에게든 특별히 잊기 어려운 해가 있다.
1998년 12월, 나는 당시 척추 디스크 재발로 서산시내의 한 병원에 송장처럼 누워 있었다.
척추 통증 환자가 겪는 또 하나의 고통은 돌바닥처럼 딱딱한 침상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두 발로 온전히 서 있기도 힘들어
집에서 입던 무릎이 튀어나온 주황색 츄리닝을 걸쳐 입고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어 서 있는 내 꼬락서니는
꼭 늦가을 추수가 다 끝나고 11월 가을바람만 썰렁하니
가득 휘모는 들판의 처량맞은 허수아비였다. 
뭐, 산다는건 지지리궁상이나 청승의 절정모드인 그런 순간이
채권자의 짐승같은 발자국 소리처럼 반드시 찾아 올때가 있다.

의사의 사형선고같은 협박을 들으며 간신히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이라고 찾아간 내자리에는 매트리스가 없다.
스프링 침대위에 바로 널판지가 기세등등하게 납작 엎드려 있는게 아닌가.
세상에나, 척추때문에 온 몸이 마비가 된 지경인데
거기에 몸을 착 밀어붙이고 진짜 밀납인형이 되야 했다.
척추통증은 둘째치고 온 몸의 뼈다구가
일제히 제 각각 비명을 지른다.
삐거덕 끼익, 딱..뚝...아득!
관절이 뚝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밤새 귀신 곡소리처럼 들렸다.
우라질!

몸무게 38kg
대단도 하지. 지금은 거기에 십몇킬로가 더 보태졌다.
이튿날, 아침에 들어온 간호사에게 정중한 히스테리를 부리며
퇴원수속을 협박했다. 의사가 왔고, 매트리스가 뒤이어 옵션으로
나중에는 집에서 얇은 모포 한 장까지 보너스로 운송되었다.

그 때 삐꺼덕거리는 스프링 침대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 다마 두 개만 쳐다보다가
성석제의 짧은 글을 읽었다.
어떤 주제라기보다는 이력서같은 걸 읽었는데
기형도와 대학때 친구였고,
기형도가 1989년 스물아홉살의 나이로 종로2가 파고다 극장에서 죽기전에
미리 작성해 놓은 유서에 "내 책은 다 성석제에게 줘라"라고 했다는.   

성석제
이 작가의 이력이란
법학전공에, 전국 팔도 강산 유람에..말년 꿈은 산에 나무를 실컷 심는 일이라고 했던가.
법학을 전공하면 사법고시를 응모해야 하는 이 나라의 취업 수순을
거역(?)하고 일찌감치 시 나부랭이를 썼다.
그러니까 판, 검사 나으리가 될 신분이었는데
집에서 난리도 아니었을 거다.

자신의 전공대로 살아야 하는 고정관념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이 나라의 최고 CEO가 되 있던가
학교 앞에서 장난감 권총과 종이 인형등을 파는 구멍가게는 최소한 갖고 있어야 한다.
내 첫 직장이 S그룹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 곳에서 승승장구 초고속 승진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그들에게 심난한 내 얼굴을 여러 날 보여주고 나서
다 때려치우고 책상서랍을 정리해 집에 돌아왔을 때
세계대전에서 무참하게 깨지고 돌아온 패잔병 보듯 바라봤다.

성석제
그러니 이 작가의 이력에 얽힌 사연은 나보다 더 징글맞은
거머리의 눈총과 입담들과 훈계가
냄비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간장덩어리처럼
아마 모르면 몰랐지 한 세월 끈덕졌을 것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상처자국으로 만든 빗살무늬토기의 고결한 성숙미를 찬양하자고.
아퍼죽겠는 판국에 개뿔 무슨 상처의 미학이냐.
다 시끄럽고
작가가 온전히 글만 써서는 기초생활조차 보장되기 어려운 현실에
작가 책이나 한 권 사주자.
내가 사 주는 작가 책 한 권이 그에게는 일용할 양식이다.
김 훈은 아예 노골적으로 말한다. 자전거 외상값좀 갚게 내 책 좀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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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01-1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정>과 <소풍> 밖에 안 읽었지만, <참말로 좋은 날> 들고 교보 한 켠에 서서,
선생님 옆 모습 훔쳐보다 올 겁니다. ^^ 찹쌀떡...도 먹음 좋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