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위의 세 남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첫머리에는 이 작품이 영어로 씌어진 최고의 코믹 걸작이라는 말로 이 작품을 표현하고 있지만 ‘코믹’이라는 말을 요즘 말로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코믹’이라는 말은 원래 웃기는 말이나  태도, 또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가.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코믹’이 아닐까. 그런데 이 책의 ‘코믹’은 여느 ‘코믹’과는 약간 다르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황당함이다. 또한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다. 19세기 작품이라, 더구나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처음에는 문화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문장을 읽어도 곧바로 머릿속에 입력이 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유머도 있고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뜻이 확 들어오지 않는 문장이 길긴 왜 또 그렇게 긴지, 호흡을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를 정도다. 들쑥날쑥해 보이는 문체도 19세기를 잘 모르거나, 영국의 문화를 잘 몰라서 생긴 일인지도 모르겠다. 3분의 1가량을 그렇게 헤매고 나자 조금 익숙해져서 ‘골 때리는’ 그들의 유머에 동참해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여기에서 말하는 ‘코믹은’ 단순히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유머가 아니고 블랙 코메디인 것이다. 일단 익숙해지니 그들의 기가 차고 어이없음에 실컷 웃을 수 있었다. 

세 남자와 개 한 마리가 그 동안 너무 과로를 해서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곧이곧대로 믿으면... 글쎄...) 강으로 보트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이 보통 게으른 인간이라고 말하는 바를 간장약 선전을 본 ‘나’는 모두 간의 문제로 돌린다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간장약 광고지 얘기를 하자면, 나에게는 그 증상이 모두 있다. 틀림없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주된 증상은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대체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내키지 않는 상태가 됨’이다.”

그들의 여행의 생각이나 시작은 무척 낙천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들이 보트를 끌고 저으면서 하는 여행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잠재되어 있겠는가. 그 문제들은 여행을 하면서 하나하나 다 수면위로 떠올라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타인들과 또는 세상과 부딪치며 흘러가게 된다. 개도 마찬가지다. 이 녀석을 평가하는 ‘나’의 말을 그대로 세 남자에게 적용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몽모렌시 역시 내내 같이 있었다. 몽모렌시가 삶에서 추구하는 야망은 훼방을 놓고 욕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옴죽거리다가 완벽하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의 대가리에 아무것이나 막 집어던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하루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

어이없음의 정수는 다음 문장에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들 하고 있네. 이 꼴을 하고서 런던 시내로 나가란 말이야?” 시내에 나가기엔 좀 그렇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그들이 당할 괴로움에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해리스가 예의 그 서민적이고 통속적인 투로 말했듯이, 런던 시내가 그것을 참으면 될 일이었다.” 왜 내가 참아? 네가 참으면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세상을 살려다 보니 자신은 편할 거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래서 이해를 못한다.

이처럼 그들 각자는 뭐든 자신 위주고 자신들이 편할 대로 생각해버리고 행동한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이 하면 되고, 자신보다 남이 조금 더 수고하면 세상살이가 편하고, 자신은 일을 사랑하지만 남을 위해 그 사랑을 양보하는 것이다. 자신이 남보다 늘 많이 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일을 더 해야 하고 자신은 좀 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아침에는 변화를 좀 주어 밧줄로 끌지 말고 노를 젓자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해리스는, 조지와 내가 노를 젓고 자기가 진로를 잡는 것을 최고의 역할 분담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해리스가 자신과 조지가 일을 하고 나를 좀 쉬게 해주는 제안을 했더라면 더욱 훌륭한 인격적 소양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 관점에선 내가 이번 여행 동안에 정당한 양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았고 이 문제 때문에 기분이 좀 상했다.”

바로 그렇다. 바로 ‘내 관점’대로 진실을 말하는 태도에 있어선 금메달감이다.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다. 게다가 그 말을 하면서 정말 자신들은 그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 안에 어떤 거짓도 없다. 그들이 하는 생각이나 논의를 보면 그보다 더 진지하고 더 옳은 말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는 다음의 이 말보다 더 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결단코 이 반대로 행동한다. 결국 그들의 여행준비 단계부터 이 책의 목적은 사고와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돼먹지 못한 우리네 인생을 비판하는 게 아닐까.

“인간이여, 잡동사니를 버려라! 당신의 보트 인생을 가볍게 하라, 필요한 것만으로 채우라. 소박한 집과 꾸밈없는 오락거리, 이름값을 하는 친구 한두 명,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고양이 한 마리, 개 한 마리, 그리고 파이프 한두 개, 간소한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 그리고 조금 풍족한 마실 거리. 갈증은 위험한 증상이니까.” 그들이 준비한 보트는 이것과 딱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이 책의 대단한 점은 등장인물 모두 한 번도 자신의 캐릭터대로 일관성 있게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어나가면서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토록 생활철학이 다른 사람들인데... 그러면서 발견하는 그들의 일관성 있는 이기주의는 차라리 웃겨 둑을 지경이다. “물살 흐르는 대로만 가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떡 버티고 앉아서 물살을 거슬러 싸우면서 물살이 아무리 방해할지라도 꿋꿋이 진로를 헤쳐나가는 데서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 (나는 정말이지, 적어도 해리스와 조지가 노를 젓고 내가 진로를 잡을 때 그렇게 느낀다.)”

정말 웃긴 것은 서로 이런 저런 다른 생각을 자기 관점으로만 생각하며 문제에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서로 싸우거나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 좋은 친구들이고 여행 끝에는 정말 즐겁고 뜻 깊은 여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곱씹어볼수록,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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