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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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일단 스토리 자체가 기막히다. 구성은 상대적으로 단순하지만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지루할 틈이 없고 어디 한 군데 빈 구석이 없다. 큰 줄거리 안에서 작은 이야기 조각들이 차례차례 맞아떨어진다. 또한 말맛이 기막히다. 

이 작품의 무대는 붉은 능소화가 소담스럽게 담장에 떨어지는 기생집, 부용각이다. 부용각의 중심축은 부엌어멈이면서 기생집의 주인인 타박네이고 사랑밖에 모르며 곱게 늙은 소리기생인 오마담이다. 그 뒤를 잇는 춤기생도 있고 오마담의 기둥서방도 있고 순수하면서도 집요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는 집사 정도가 중요 등장인물이다. 그들의 인생과 사랑, 그들이 나름대로 살아온 그들만의 세상이 정말 멋들어진 한판 춤처럼 너울너울 춤춘다.

기생이고 기생집이지만 부용각은 부용각 나름대로의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둑음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기방의 법도는 이제 멀어진지 오래지만 타박네는 기방 음식에서부터 화초 올리는 것까지 세세한 신경을 쓴다. 물론 우리 옛말과 정겨운 욕설 등은 잔칫상의 맛난 보너스다. 차마 사랑하는 이 앞에서 화초를 올릴 수 없어 자살을 하는 오마담의 친구, 채련의 둑음에는 정말 야속할 정도로 안타깝고 자신을 사랑하는 집사 앞에서 다른 남자와 늘펀하게 몸을 섞는 장면에도 술상에 오른 술과 안주에 함께 취하듯 독자들도 함께 취한다.       

타박네의 인생은 이런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면, 몸에 붙은 살이 헐렁해지고 윤기 있던 피부에 주름살이 덮이는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질 줄 알았다. 내주는 게 있는 만큼 받는 것, 얻는 것도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타박네는 늙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나이를 오히려 인생의 훈장처럼 여긴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늙는다는 것은 철저히 손해보는 장사였다. 일흔아홉의 타박네를 기다리고 있는 건 버려도 될 굳은 습관과 쓸데없는 잔소리, 조금씩 풀리는 손목의 힘처럼 근육이완으로 생기는 요실금의 기미들뿐. 늙음의 끝은 완전한 소멸이었다. 적요한 소멸의 늪에 빠지기 전까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마담의 사랑은 또한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만인을 품는 사랑...
<강단 있는 타박네도 말리지 못한 오마담의 행보였다. 키 작은 남자는 아담해서 좋고, 뚱뚱한 남자는 든든해서 좋고, 말라빠진 남자는 예민해서 좋고, 성격 나쁜 남자는 박력 있어 좋고, 얼굴이 찌그러진 남자는 아무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좋고, 돈 없는 남자는 청빈해 보여서 좋은 게 오마담이었다.>

새로 기생의 길로 들어서며 화초를 올리는 춤기생인 민예나의 본명은 “나끝순. 도대체 성의라곤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는 이름이다.”로 정의되는데 그녀의 삶은 어릴 적 동네 풍경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도 이럴 거라. 녹이 슬었거나 곰팡이가 피었거나 내장이 튀어나와 있을 거라고. 따끔따끔한 고추 매운내에 눈은 뜰 수조차 없고, 조심해서 걸어가도 별수 없이 발은 구정물에 빠지고 말 거라고.>

하지만 21세기에 아무리 무형문화재 전수생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고 그 길이 험난하고 힘들다 하더라도 꼭 다른 직업 다 제쳐두고 과연 기생이 되어야 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읽으면서 앞부분에선 계속 배경이 되는 시대가 언제인지 찾아보곤 했었다. 21세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이 질문만 통과하고 나면 나머지는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야기는 술술 풀어지고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 입안 가득 고소함이 퍼지듯이 그 맛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이 현수, 이 작가가 궁금해진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이 작가가... 읽다보니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그녀의 말이 가슴으로... 감성으로 내게 스며들었다. 작가의 사랑이 느껴져서, 그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릿해졌다.
 
<지난 4월, 기생 부용의 산소를 찾았다. 봉분의 잔디가 하도 푸르러 눈이 아팠다. 나는 묏등에 가만히 손을 갖다대었다. 그대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주겠노라고, 그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놓치지 않고 쓰겠노라고, 상상이 아닌 짐작으로. 나, 적지 않은 날들을 살아왔으니 이제 짐작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이 땅에서 이름 없이 살다 간 많은 기생들에게, 그들의 빈손에, 그들의 맨발 위에 이 소설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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