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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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에 대한 소개로 해외판 <엄마 찾아 삼만 리> 또는 또 다른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나 픽션으로 볼 수 없는 면이 있고 한 명의 엔리케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엔리케가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느 문학작품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읽을 때의 느낌이나 읽고 나서의 느낌도 그 여운이 달랐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한 기자가 남미에서 미국으로 오는 많은 불법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왜 남미에서 미국까지 오는지, 그 과정은 어떤지, 어떤 일들을 겪는지 아주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엔리케라는 한 온두라스 소년이 과테말라와 멕시코 전역을 기차와 버스, 도보로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기자가 엔리케에게서 들은 내용, 같은 여행을 통해 만난 다른 불법이민자들을 직접 보고 또 들은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과 얼마나 다른가. 또 한 번만 하고 마는 여행인가. 그 여행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와 눈물, 고통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이 여행은 둑음을 무릅쓴 여행이다. 불법으로 하는 여행이니만큼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여행인데, 성공할 때까지, 또는 장애자가 되거나 둑음에 이르기까지 그 여행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내란, 가난 그리고 해체된 가정으로 인한 불법이민자와 그 가족은 남미에서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나 사회, 가정 모두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다. 더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그 고통은 어른 세대만 겪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이되어 교육이니 일자리니 미래를 꿈꿔볼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다 보면, 이들에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그대로 그 상태를 견디며 생존하거나, 미국이라는 꿈의 나라로 불법이민을 가서 경제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과 몇 년씩이나 헤어져 지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많은 엄마나 아빠들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머니를 벌면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불법이민을 감행한다. 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더구나 불법이민자의 입장에서 머니를 벌어야 얼마나 많이 벌겠는가. 그러다 보면 한 해, 두 해... 아이들은 희미해져가는 엄마 얼굴을 떠올리기도 힘들게 되고 애정이나 교육이 결핍된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엄마를 찾아 그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여정이란 것은... 국경에서 몰래 화물열차를 타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경찰을 피하고 먹을 것을 구해가며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멕시코를 관통하는 그 화물열차는... 강간피해자를 만들고 장애자를 만들고 살인을 저지르는 열차인 것이다. 그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어린 아이들을 폭행하고 강간하고 가진 것 다 빼앗고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마피아나 갱단들... 경찰들도 더 하면 더했지, 마피아와 다를 게 없다. 더구나 열차 지붕에서 하는 여행은 자칫 졸다가 떨어져 둑거나 나뭇가지에 치여 떨어지거나... 숨었다가, 기차가 다시 출발할 때 움직이는 열차에 매달려야 할 때,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인 여행 자체도 위험한 것이다. 물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우정을 쌓기도 하고 간혹 도움을 주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도처에 둑음이 도사리고 있는 여행이 바로 엔리케의 여행이다. 이주민을 돕는 사람들의 외침이다. “우리는 사람이요. 우리는 사람들을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여행을 왜 하는가.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왜 하는가. 목숨까지도 내놓고 하는 그 여행을 왜 하는가. 몇 번이나 붙잡혀서 폭행을 당하고 되돌려지면서도 그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적 끌어안아주던 엄마, 그 엄마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나이키 신발도 멋진 책가방도 커다란 곰 인형도 이들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씩이나 보지 못한 엄마를 보러가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하지만 천행으로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결말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번 해체되었던 가정이 다시 합쳐진다고 그 간극이 엄마와 자식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모두 메워질 수 있는가.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생각하는데, 자식은 나이키 신발을 원한 것이 아니고 원한 것은 돌아온다는 엄마였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회, 흘러간 세월은 한번 해체된 가정의 예전 행복을 그대로 되돌려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외친다. “돈은 필요 없어요. 엄마만 있으면 돼요.”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막히고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었다. 그 도가 얼마나 상상 이상이었던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 같은 마피아들이 판치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경찰은 미친 개였다. 더불어 우리나라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처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근면하게 일해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도우려는 그들을 무시하고 욕하고 때리면서 일시키는 사람들, 제때에 월급도 주지 않고 불법이민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협박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떠올랐다. IMF를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경제대국이라고 무지막지하게 낭비를 해대는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점점 더 짐승이 돼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궂은 일 하면서 우리를 돕고 있는 그 외국인 근로자 한명 한명이 모두 엔리케 같은 아이를 고국에 두고 왔다는 것을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 외국인들이 모두 어느 날 꿈을 이루고 고국으로 돌아가 그들의 아이들과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상봉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 더 이상의 가정해체로 오는 불행은 없을 것이 아닌가.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가난과 고난도 모두 함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 떠나는 것을 막는 방법요? 일자리죠. 돈 벌 수 있는 일자리요. 그게 다예요.”

급히 책을 만드느라 그랬는지, 인쇄의 문제였는지 띄어쓰기나 오타가 눈에 많이 띄어서 읽다가 가끔 막혔던 것이 좀 아쉬운 점이다. 좋은 책이고 계속 읽힐 책이니만큼 교정 잘 된 2쇄, 3쇄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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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웃기지 않게 생긴 사람이 웃길 때, 정말 웃음이 터진다.
무심하게 웃기는 윤대녕, 그 덕분에 요즘 내가 웃는다.

다음은 <어머니의 수저> 가운데 나오는 대목이다.

- 어느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내가 낚시로 물고기를 잡는 걸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날도 그는 내게 낚시를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요즘 낚시꾼들 사이에서 ‘2525 릴리즈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 거 아시죠?”
“모릅니다. 근데 그게 뭐죠?”
“감성돔 25센티미터 이하, 벵에돔 25센티미터 이하는 잡더라도 서로 놓아주자는 운동이죠. 저도 물론 거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조금 낫군요. 하지만 아예 잡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세상은 둥근 법입니다.”
“?”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죠.”

세상이 둥글댄다. 난 이런 윤대녕의 무심한 유머에 푹 빠졌다. 미친다.

- 자동차 부품을 하는 부천 사람과의 대화


“형씨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둘러댈 말이 마땅치 않아 나는 사실대로 고백했다.
“문필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문필업, 이라면...... 대서소 말입니까?”
“뭐, 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혹시, 당신 소설가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입조심해야지, 이거 자칫하다간 형씨 소설에 조폭 나부랭이로 등장하겠네.”
“요즘은 조폭 업계에서 자동차 부품업에까지 손을 대나 보죠?”
“왜 아니겠소.”
(...)
“소설엔 쓰지 않기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장담은 못하겠군요.”

남들은 이게 뭐 그리 우스운 유머냐고 하겠지만 윤대녕의 글을 읽다가 이런 대목이 나오면 난 주체를 못하고 깔깔대고 웃는다. 그리고 보고 또 보고 또 웃는다. 길을 가다가도 생각나면 웃는다. 배실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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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수저 - 윤대녕 맛 산문집
윤대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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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윤대녕 소설의 글맛을 조금씩 느끼면서 당연히 찾아본 게 그의 산문집이었다. 무심한 듯 멋드러진 그의 문체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멋이 자연스레 스미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수저>는 그 맛과 멋이 절대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최고봉이었다. 강하지 않으면서 진한 맛이 느껴지고 가볍지 않으면서 산뜻한 맛을 간직한 그런 글맛, 음식 맛이었다.

음식에 대한 산문을 낸 작가는 많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든, 개인적인 경험이든, 여행에서 보고 들은 박학다식한 지식이든 나름 재미도 있고 그 존재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약간 독자를 호도하는 듯한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느낌이 좋은 분위기가 났다.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초반에 조금, 끝부분에 조금 나오고 나머지 글은 각각의 우리 음식에 대한 윤대녕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결한 음식에 대한 지식과 억지로 멋 부리지 않은 윤대녕의 글과 함께 정말 멋진 분위기를 던져준 것은 책의 전체적인 톤이었다. 칼라도 아니면서 완전 흑백도 아닌 ‘정갈한’ 사진들이 각각의 음식에 맞게 들어가 있었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정갈하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어느 것과도 섞이지 않은 음식 제대로의 맛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글과 사진이 한 쌍의 숟가락과 젓가락처럼 딱 들어맞게 들어가 있었다고나 할까.

이 책 속에는 웬만한 한국음식이 모두 들어가 있다. 한국음식의 기본이 되는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부터 소, 돼지, 닭 그리고 갖가지 생선, 젓갈 등등 또한 윤대녕의 글에 빠지지 않는 술 종류, 윤대녕이 좋아하는 제주도, 섬진강변의 먹을거리가 때로는 봄내음과 함께 또 때로는 가을바람과 함께 밥상에 차려진다. 그래서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이 음식 산문집의 또 다른 특징은 윤대녕이 그냥 생각난 대로 끼적거린 글자나 경험만이 아니란 것이다. 앞서도 썼지만 각각의 먹을거리에 대한 간결한 음식에 대한 지식이 아주 자연스레 펼쳐지고 그 지식이 윤대녕의 펜 아래에서 윤대녕의 문체가 된 것이다. ‘팀채-딤채-짐채-김채’가 김치라는 말로 굳어진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장 해변에서 열리는 멸치축제에서 어부들이 그물털이를 하는 동안 그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멸치들을 주워담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지역 토박이나 시장장사꾼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며 마음이 한 켠 싸했었다. 갖가지 음식에 대한 기원부터 지역 특성, 다르게 해먹는 음식 요리법도 볼 수 있고 때로는 윤대녕이 되어 함께 염치가 없기도 한다. 팔자에 없는 다금바리회에 얽힌 이야기에는 함께 얼굴 들기가 민망한 것이다.

윤대녕이 말하는 어머니는 또한 우리의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겠다. 아무도 없고 혼자 식사를 하게 되면 아무것도 없는 밥상으로 식사를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하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왜 그런 식사를 하시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변명조로 말한다.
“늙은 여자가 혼자 먹는 밥상은 다 이런 거란다. 어느 어미가 저 혼자 배불리 먹겠다고 따로 밥상을 차린다더냐. 그저 밥 한 그릇과 짠지 한 가지면 되지.”

그에 윤대녕은 말한다.
“어머니, 이제 내가 여기 한 밥상 차렸으니 함께 드셔보십시다. 그리고 우리 그때 헤어진 뒤로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오랜만에 터놓고 얘기도 좀 나눠봅시다. 나는 이렇듯 매양 속절없이 살아왔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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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달래 2007-02-13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그래도 어머니한테는 늘 그런 마음이... ^^
사진, 정말 좋았어요. ^^

아, 그 책이군요. 아직 읽어본 게 없네요. 읽어보겠습니다. ^^;;
 
풋 2006년 가을호 - 통권 2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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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학잡지이면서 전반적인 청소년 문화도 함께 다루고 있는 문학동네의 청소년 잡지 2호다. 여름호가 신선하고 풋풋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던 면이 있었다고 이번 가을호는 벌써 그 짜임새나 구성이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여름호로 이미 그 구성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만큼 이번호가 꽉 짜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 부문이나 소설 부문에서도 여름호와는 다르게 당선작도 많고 소재나 주제도 다양했다. 

가을호는 계절에도 맞고 청소년들이 쉽게 한번쯤은 꿈꿔봤음직한 테마인 도망이 특집으로 실려 있다. 기존의 작가 대담이나 인터뷰, 직접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화 등등 젊은 문학가들과 기존 문학인들의 작품 등 다양한 흥밋거리도 있고, 영화 만화 게임 전위 예술 등으로 다양한 장르를 청소년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읽기에 대한 흥미를 주는 짧은 글 소개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이나 글쓰기에 대한 짧은 강의도 쉬우면서도 청소년들의 수준에 맞게 충고로도 담겨있다. 김영하, 이적, 윤대녕, 성석제, 이창동, 도종환 등등 청소년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들의 솔직한 삶과 그들의 문학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게임이나 만화 같은 소재는 어른들이 읽어도 재밌을 정도였고, 청소년들이 직접 꾸미고 글을 쓰는 코너는 여전히 신선한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영화 촬영소를 찾아간다거나 자원봉사 장소인 인도를 다녀온 글 등도 청소년들에게 한번쯤 해봐도 좋을 듯한 경험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망’은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의 생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화두다. 실제로 저지르는 청소년들보다 못 저지르는 청소년이 대다수라 하더라도, 도망에 대한 달콤한 상상은 즐겁기만 하다. 그런 즐거움을 여러 작품, 작가, 그리고 실생활을 통해 다양하게 꾸며놓았다. 청소년들 뿐 아니라 마치 나도 함께 그 꿈을 꾸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땡땡이치는 기술(!)까지 적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망명문학’에 대한 글 가운데 발터 벤야민과 브레히트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끌렸고, 그들의 작품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전체적으로 청소년에 맞춰나가는 문학, 예술 그리고 생활을 기조로 하는 청소년 잡지의 느낌이 물씬 드는 가을호였다. 그리고 여름호와 마찬가지로 불량소녀 김현진 언니의 연애상담, 정말 재밌다. 청소년 문학상에 당선된 시나 소설도 여름호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아마 많은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더 많이 쓰고, 또 더 많이 응모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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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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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다. <은어낚시통신> 이후에 윤대녕을 잠시 잊고 지냈었다. 생각보다 그 작품이 내겐 좀 이해하기 어려웠고, 공감도 좀 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몇 년이 훌쩍 흘렀다.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전작의 아우라가 그렇게 컸던 것일까. 하지만 이번에 다시 만난 윤대녕은... 그 동안 잊고 지낸 걸 후회라도 하게 하려는 듯이... 그렇게 멋진 작품집으로 다가왔다. 

그가 그 동안 변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고 세상이 변하면서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졌는지,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흡입력으로 읽을 수 있었다. 단편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끌려들어가고 단숨에 빠져들었다. 겉보기엔 고요한 수면 같은 일상 속에 굴레를 뒤집어쓴 씁쓸한 인생이 행복과 기쁨과는 다른 억눌린 고통과 무의식 속에 갇혀 불안과 허무로 드러난다. 하.지.만. 단절된 삶에서 과거가 그리움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열정과 숙명의 삶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간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듯한 글이 이렇듯 흡입력이 있다는 건 무슨 연유일까.  

문학적 감성 안에서 가려운 데를 착착 긁어주듯 한 표현력과 슬쩍슬쩍 드러나는 그의 유머와 재치(윤대녕의 무심한 유머!)를 곁들인 것도 일조를 했을 터이다. 뭐지, 뭐지? 하고 있을 때 탁 드러나는 그 순간의 공감이 작가와 나 사이에 존재한다.

이번 작품집엔 이별과 둑음(death- 원래 단어는 느낌이 강해 개인적으로 쓰지 않으니, 양해를...)의 테마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이별과 둑음은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부정적이고 무섭고 싫은 느낌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강하게 연결해주는 느낌이다. 불행한 삶을 산 듯 보이지만 더 크나큰 행복한 삶이었음을, 또는 그렇게 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탱자>에서 고모가 말하는 “이제 됐다 싶더라.”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 작품집엔 <연>,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있다. 그리움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또한 삶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표제작인 <제비를 기르다>는 제비에 대한 ‘상사병’을 평생 앓은 어머니, 그로 인해 외롭고 고독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가을에 강남으로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이듬해 봄까지, 어머니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운명적으로 그리움을 타고난 어머니는 자신이 고독해지는 만큼 남도 고독하게 하는 팔자를 타고났다.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여자인 술집 작부 문희와 비교되는 어머니. 아들이 만난 또 다른 문희의 영혼 속엔 언제나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회귀하는 제비처럼 영원의 나라로 가서 부디 부디 머무 있을까.

작품집 가운데 내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작품은 <탱자>와 <고래등>이었다. 하나는 마치 ‘여자의 일생’을 보는 듯했고 또 하나는 ‘남자의 일생’을 보는 듯했기에 두 작품이 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일주문까지 걸어올라가긴 힘들었지만 불국사에 들어가니 나 같은 무지렁이도 저절로 마음이 거룩해지더라.”> 불국사에 그렇게 가보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고모가 하는 말이다. <“왜 아니겠냐. 열다섯 살 때부터였으니 오십년 만에 원을 푼 셈이지. 게다가 맨날 동전에서만 보던 다보탑에다 석가탑까지 보았으니 이제 됐다 싶더라.”>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더니라.> 탱자가 귤로 변하지 않을까... 그게 고모의 ‘기다림의 사랑’이었다. <(...) 어두워지는 저녁에 앞에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그만 가슴이 미어지더라. (...) 이렇게 병신처럼 계속 절룩거리며 걷지 말고 차라리 내 등에 업혀 함께 어디든 가자고 말이다.> 바로 이것이 바로 고모의 숙명적인 ‘열정의 사랑’이었다.

<고래등>에서는 삶에 대한 허영기로 일관한 아버지와 그에 희생당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다. <삶은 뜻하지 않은 각도로 사람을 바꿔놓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계기로 작용해 생의 전모를 바꿔놓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자 저마다 이면에 감춰진 속박이자 굴레이기도 하다.> 결말 부분의 아버지와 아들에 대화가 참 씁쓸했다. “그렇지? 참으로 안됐지?” “그렇죠 뭐.” 인생은 그렇다. 이 작품은... 남자,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일종의 해답을 주는 작품이다. 이해와 공감을 선물로 주는 작품이다. 

<연>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다 초라해진 옛사람과 다시 만나 그보다 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겠지. 그리고 오히려 이쪽에서 또 매달렸겠지. 그게 삶의 굴레라는 것이다.>
<그 감옥 같은 방에서 넷이 꾸부정하게 모여앉아 밥을 먹었다. 갑자기 입이 하나 늘어 밥상은 더욱 비좁았다. 김치에 아욱국, 멸치볶음에 오이무침이 전부였으나 밥맛은 유난히 좋았다. 그저 시장기 때문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 먹어보는 쌀이었다. 보기에도 기름질뿐더러 밥알이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뒷맛이 남았다. 묵은 김치도 깊은 맛이 배어 있었다. 남의 집 밥을 축내는 것은 미안했으나 나는 미선에게 밥을 더 달라고 빈 공기를 내밀었다.> 바로 그 고소한 맛이 바로 삶의 굴레에서 나오는 맛이었다.

<못자국>에서 사랑은 작은 우연에서 시작되고 그 우연의 고리가 끊길 듯 이어질 듯 인연을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틈틈이 지나가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 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당신의 입속에서 스며나오는 치약냄새를 나는 사랑했던 거야. 우리 무지갯빛 피라미들처럼 함께 춤을 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게 얘기해줘. 가끔은 자유와 이상과 고독에 대해서도 우리 얘기해. 화병처럼 나는 주인만을 사랑해. 나도 너의 주인이 되고 싶어. 당신이 먼저 잠든 밤마다 나는 이렇게 한줄씩 쓰고 있어요.> 함께 사는 인생은 <못자국>을 남기면서도 이렇듯 치약냄새로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윤대녕의 <어머니의 수저>,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의 산문집도 읽었다. 나중에 물론(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으므로...) 감상문을 쓰겠지만, 간단히 보면, 전작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과 사고에 바탕하여 쓴 것이며 후작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정도로 아련하며 잔잔한 로맨스 감정을 그린 산문집이다. 음식에 대한 산문집도 많고 로맨스 감정을 그린 산문집도 많지만, 이 두 작품은 다른 어느 작가들과의 작품들과도 다르다. 다소 까칠해 보이는 윤대녕이 오히려 무덤덤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그를 좀 더 가깝게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인 것은 물론이다. 또한 그의 무덤덤하고 잔잔한 문체가 마치 차가워진 가을 날 아침에 호수를 적시는 안개처럼 나를 가볍고 상쾌하게 감싸고도는 느낌으로 꽉 채워준다.  

자의식 강해보이는 그가 이렇듯 담담하고 절제된 문체의 글을 쓰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그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듯하다. 강한 스토리나 플롯으로 한번 독자를 끌기는 쉽다. 하지만 스토리나 짜임새가 이렇듯 느슨해 보이면서, 또 평범하면서도 독자를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윤대녕의 글이야말로 그 맛을 형용하기 어렵다.      

술, 담배, 자판기 커피... 선생님 책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기호식품이면서 선생님께서 참 좋아하는 것들로 보인다. 하.지.만. 몸에 좋지는 않을 것들이다. 조금씩만 줄이시고... 건강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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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02-0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제 컴퓨터로는 수정이 안 되어서, 오타가 몇 개 보이는데도... 고칠 수가 없네요. 양해 바랍니다. ^^ 참고로 제목의 '둑음'은 오타가 아니고 제가 쓰는 고유 명사처럼 봐주시기 바랍니다...

로드무비 2007-02-0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둑음', 어감이 좋은데요?
멋진 리뷰입니다.

이게다예요 2007-02-0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온지 얼마 안된 아주 따끈한 책이네요. 대학교때는 윤대녕을 많이 읽었었는데 그 뒤론 잊고 지냈던 거 같아요. 그의 서정적인 문체가 참 멋드러졌었는데 말이죠. 이번 책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저도 언젠가 리뷰를...ㅋ

진달래 2007-02-0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만큼 잘 쓰지 못해서 좀 안타까웠는데.. ^^ 객관화를 시킨다고 하다 보니, 많이 희석되더라구요...

이게 다예요님, 네~ 신작입니다. ^^ 전 <은어낚시통신> 이후로 좀 잊고 지내다 다시 잡았는데, 이번엔 완전히 푹 빠졌어요... ^^ 그래서 작품들, 다 찾아보고 있어요.

레인보우 2007-02-0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오래간만이예요...^^

진달래 2007-02-0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잘 지내시죠? ^^

프레이야 2007-02-1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인님^^ 전 둑음을 득음으로 잘못 읽을 뻔했네요...
좋은 리뷰입니다.

진달래 2007-02-1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경님, 그거 좋으네요... 득음... ^^ 의미 전달이 되겠어요.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