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이 책에 대한 소개로 해외판 <엄마 찾아 삼만 리> 또는 또 다른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나 픽션으로 볼 수 없는 면이 있고 한 명의 엔리케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엔리케가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느 문학작품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읽을 때의 느낌이나 읽고 나서의 느낌도 그 여운이 달랐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한 기자가 남미에서 미국으로 오는 많은 불법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왜 남미에서 미국까지 오는지, 그 과정은 어떤지, 어떤 일들을 겪는지 아주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엔리케라는 한 온두라스 소년이 과테말라와 멕시코 전역을 기차와 버스, 도보로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기자가 엔리케에게서 들은 내용, 같은 여행을 통해 만난 다른 불법이민자들을 직접 보고 또 들은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과 얼마나 다른가. 또 한 번만 하고 마는 여행인가. 그 여행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와 눈물, 고통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이 여행은 둑음을 무릅쓴 여행이다. 불법으로 하는 여행이니만큼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여행인데, 성공할 때까지, 또는 장애자가 되거나 둑음에 이르기까지 그 여행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내란, 가난 그리고 해체된 가정으로 인한 불법이민자와 그 가족은 남미에서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나 사회, 가정 모두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다. 더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그 고통은 어른 세대만 겪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이되어 교육이니 일자리니 미래를 꿈꿔볼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다 보면, 이들에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그대로 그 상태를 견디며 생존하거나, 미국이라는 꿈의 나라로 불법이민을 가서 경제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과 몇 년씩이나 헤어져 지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많은 엄마나 아빠들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머니를 벌면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불법이민을 감행한다. 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더구나 불법이민자의 입장에서 머니를 벌어야 얼마나 많이 벌겠는가. 그러다 보면 한 해, 두 해... 아이들은 희미해져가는 엄마 얼굴을 떠올리기도 힘들게 되고 애정이나 교육이 결핍된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엄마를 찾아 그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여정이란 것은... 국경에서 몰래 화물열차를 타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경찰을 피하고 먹을 것을 구해가며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멕시코를 관통하는 그 화물열차는... 강간피해자를 만들고 장애자를 만들고 살인을 저지르는 열차인 것이다. 그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어린 아이들을 폭행하고 강간하고 가진 것 다 빼앗고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마피아나 갱단들... 경찰들도 더 하면 더했지, 마피아와 다를 게 없다. 더구나 열차 지붕에서 하는 여행은 자칫 졸다가 떨어져 둑거나 나뭇가지에 치여 떨어지거나... 숨었다가, 기차가 다시 출발할 때 움직이는 열차에 매달려야 할 때,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인 여행 자체도 위험한 것이다. 물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우정을 쌓기도 하고 간혹 도움을 주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도처에 둑음이 도사리고 있는 여행이 바로 엔리케의 여행이다. 이주민을 돕는 사람들의 외침이다. “우리는 사람이요. 우리는 사람들을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여행을 왜 하는가.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왜 하는가. 목숨까지도 내놓고 하는 그 여행을 왜 하는가. 몇 번이나 붙잡혀서 폭행을 당하고 되돌려지면서도 그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적 끌어안아주던 엄마, 그 엄마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나이키 신발도 멋진 책가방도 커다란 곰 인형도 이들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씩이나 보지 못한 엄마를 보러가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하지만 천행으로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결말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번 해체되었던 가정이 다시 합쳐진다고 그 간극이 엄마와 자식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모두 메워질 수 있는가.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생각하는데, 자식은 나이키 신발을 원한 것이 아니고 원한 것은 돌아온다는 엄마였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회, 흘러간 세월은 한번 해체된 가정의 예전 행복을 그대로 되돌려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외친다. “돈은 필요 없어요. 엄마만 있으면 돼요.”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막히고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었다. 그 도가 얼마나 상상 이상이었던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 같은 마피아들이 판치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경찰은 미친 개였다. 더불어 우리나라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처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근면하게 일해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도우려는 그들을 무시하고 욕하고 때리면서 일시키는 사람들, 제때에 월급도 주지 않고 불법이민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협박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떠올랐다. IMF를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경제대국이라고 무지막지하게 낭비를 해대는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점점 더 짐승이 돼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궂은 일 하면서 우리를 돕고 있는 그 외국인 근로자 한명 한명이 모두 엔리케 같은 아이를 고국에 두고 왔다는 것을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 외국인들이 모두 어느 날 꿈을 이루고 고국으로 돌아가 그들의 아이들과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상봉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 더 이상의 가정해체로 오는 불행은 없을 것이 아닌가.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가난과 고난도 모두 함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 떠나는 것을 막는 방법요? 일자리죠. 돈 벌 수 있는 일자리요. 그게 다예요.”

급히 책을 만드느라 그랬는지, 인쇄의 문제였는지 띄어쓰기나 오타가 눈에 많이 띄어서 읽다가 가끔 막혔던 것이 좀 아쉬운 점이다. 좋은 책이고 계속 읽힐 책이니만큼 교정 잘 된 2쇄, 3쇄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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