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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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박범신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가 쓴 책들을 보다 보니 아는 게 안 보인다. 결국 내가 읽은 그의 책들은 좋은 책에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박범신은 내 어릴 적 유명한 작가였고 뜻도 모르면서 그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난 박범신 작가, 그의 필체가 살아있음이 반갑고 고맙다. 문체에서 옛것이 느껴지기도 해서 간혹 추억을 돌아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감동이 서슴없이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이 시대의 강한 ‘사내다움’을 느낀다.  

<빙우>던가. 유지태와 김하늘이 나온 몇 년 전 영화가 있었다. 당시 극장에 애기들을 데리고 들어온 아줌마들 때문에 제대로 그 재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그 엄청났던 설산은 기억난다. 그 영화는 사랑으로 서로 엇갈린 운명을 그리면서 그 끝을 히말라야 설산에서 마무리하는 영화였는데 영화와는 별개로 그 배우들의 추위와 고통이 손끝까지 전해져 내 가슴까지 얼어붙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슬슬 얼어붙었다. 이 따스한 5월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전기담요를 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두 형제의 산행은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 빙벽이 보통 빙벽인가. 최소한의 장비만 갖고 아버지가 다른 두 형제 상민과 영교,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더 나는 두 형제가 각각의 삶과 그 아픔을 안고 오르던 촐라체. 그 둘을 위해 불을 밝혀놓고, ‘그리워서…’ 산으로 들어간 아들 현우를 생각하며 나는 베이스캠프를 지킨다. 간혹은 산사태가 나기도 하고 간혹은 추락도 일어날 수 있는 촐라체 북벽을 오르며 두 형제는 ‘고독의 맨얼굴’인 정적도 만난다. 또한 엄청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여정을 가면서 먼저 그 길을 갔던 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짧은 인생 동안 겪었던 일들도 다시 떠올리고 인생의 우여곡절을 되새기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정상을 정복했다는 따위가 아니다. 아무리 높은 산의 정상이라고 해봐야 다 똑같을지도 모르니까. 정상으로 향하던 동안의 고통도 아니다. 그런 고통은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응축해놓은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니까. 중요한 건 각자가 품고 갔던 생각의 끝을 봤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사경을 헤매고 심한 부상을 입어 불구가 되어도 또 동상으로 손가락 마디를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그 산행을 꼭 해야만 했던 각자의 이유, 그것이 아니었을까. 각자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 어쩌면 그것이 우리 모두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하나의 촐라체가 아닐까.

‘박상민 형제가 그랬듯이,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갈망을 쫓아 보상 없는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길은 결국 두 갈래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길은 경쟁에 가위눌리면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안락한 일상을 버릴지라도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상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또한 사내들의 강한 의지, 약함도 약점도 받아들이는 그 강함이 이 작품엔 살아있었다. 작품을 읽기 전엔 그 사내들의 열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위험한 산엘 오르는지… 하지만 이젠 안다. 그래야 함을, 그래야 했음을… 존재에 대한 확인, 너무나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도전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감동이 넘친다.

그리고 ‘사랑해,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 미안ㅎ…’라는 뜻을 이해했을 땐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처지에 처했든, 가족은 사랑이다. 이제 나도 떠나고 싶다. 내 마음속 촐라체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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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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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하면 ‘악마인 그녀의 삶과 사랑’일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두 가지가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는 케이블에서 본 ‘스완’이라는 프로였고 또 하나는 예전에 읽었던 ‘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라던 독일 작품이었다. 성형으로 개선된(!) 외모로 다시 태어나는 의미에서 ‘스완’이라는 프로가 떠오른 것이었고, 자신을 떠난 남자에게 복수하는 의미에서 후자의 작품이 떠오른 것이었다.

영화화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꽤 재밌었겠다, 통쾌했겠다 하는 생각과 함께 문학작품으로선 너무 통속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사회의 약자이고 추한 외모로서도 약자인 한 여성이 신(!)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남자로부터 부여받은 여성으로서의 운명에 대항해 일어서는 재기에 관한 이야기로서 페미닌문학의 정수라 할 만하다는 말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 통속과 페미닌문학 사이에 생기는 많은 의문점들은 어찌 할까.

표지에 그려진 대로 주인공 여자의 외모는 정말 추하다. 추한 외모로도 185센티미터가 넘는 등치로도 저절로 남자의 애정이 생겨날 처지는 아니다. 재수(!)가 좋아서 멋지고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해서 두 아이들을 낳아 현모양처로서 살고 있지만 남편은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작가와 바람을 피운다. 그걸 또한 정직이라는 이름 아래 시시콜콜히 아내에게 말하는 남편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못생긴 여자들을 ‘개’라고 부른다. 하지만 개도 살고 있는데……. 그래 나도 살고 있다. 현실이라는 차가운 바람에 몸을 드러내고, 끊임없는 굴욕감 앞에 피부를 악어가죽처럼 두껍고 둔하게 만든 채 살아간다. 그리고 모든 것이 평등해지는 노년만을 기다린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 좋은 노파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감정은 못생긴 여자가 아니더라도 사회나 가정에서 약자인 여자가 느끼기에 충분한 감정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여성’을 대변하는 페미닌문학을 지향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노파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어느 날, 자신을 ‘악녀’라고 정의를 내린 남편의 말에 희열까지 느낀다.

‘하지만 멋지다. 가슴이 뛴다. 악녀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금세 머리가 개운해진다. 기분이 상쾌하다. 부끄러움도 모른다. 죄책감도 필요없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있는 거라고는 내가 원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원하는 것을 빼앗을 수 있다. 악녀니까!’

악녀가 된 그녀는 복수, 힘, 돈,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대가로 돌려주지는 않을 사랑이다. 그리고 차근차근 그 일에 착수한다. 자신이 맡았던 현모양처의 역할을 남편의 애인에게 떠맡기고 남편을 파멸의 길로 내몬다. 읽다보면 처음에는 그녀의 수많은 노력과 복수에 어느 정도 공감했던 안쓰럽던 감정에서 점점 더 오바한다는 불편한 감정으로 흘러간다.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내보이는 사진 한 장.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도대체 페미닌문학을 대표하던 ‘여성’은 어디로 가고 그런 유치한(!) 여성만이 남았는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복수이고 진정한 여성의 모습인가. 그 결말엔 어쩔 수 없는 통속이 못생긴 모습으로 우릴 바라보는 것 같다.

‘스완’이라는 프로를 보다 보면 한편 ‘예쁜이’, ‘날씬이’만 원하는 이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기도 하고 또 한편 조금이라도 개선되고자 애쓰는 그녀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예쁜 것들이 더 예뻐지려고 자꾸 손을 대 오히려 더 이상해지는 많은 여자들에 비하면 추한 것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에게 안쓰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구심도 쏙 들어가 버린다. 그런 게 자본주의의 한 모습일지라도 예뻐지고 자신감을 찾은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해피해진다. 더불어 통속과 페미닌 사이에 있는 이 작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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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임진평 지음 / 위즈덤피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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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아일랜드는 오스카 와일드의 나라,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구교와 신교의 불화와 IRA, 영화 <타이타닉>에서 본 것처럼 미국으로의 수많은 이주민들, 역사적으로 보면, 쥘 베른조차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꼬맹이>(근간, 계수나무)란 작품에서 다뤘듯이 19세기 중반의 감자기근 등이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초록 클로버를 내세워 관광 홍보를 한 초록의 아름다운 나라로 보았고 또 몇 년 전엔 영어학원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 강사가 실업을 걱정했던 나라였다. 그리고 그 모두는 끊임없이 펼쳐지던 음악과 함께였다. 최근에 호평을 얻은 <아일랜드>라는 드라마도, 친구들이 추천해준 영화 <원스>도 아직 못 봤지만 아일랜드는 내 마음속 한구석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자리 잡고 있는 나라다. 

그런 음악의 나라를 우리나라에서 아일랜드 음악을 하는 다섯 명의 밴드, 두 번째 달 바드(BARD)가 여행을 하고 그 바드의 여행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찍은 영화감독 임진평이 아일랜드 곳곳을 다니며 한 여행에 관한 책을 냈다. 책 안에는 수많은 사진들이 아일랜드를 보여준다. 경치, 사람들 그리고 파~아란 하늘 아래, 불빛으로 반짝이는 펍의 맥주와 함께 음악이 흘러넘친다. 덕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나라, 정말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나라, 아일랜드를 마치 내가 다녀온 것처럼 즐겁게 여행했다. 

책에는 특이하면서도(!) 개성 강한 음악을 하는 밴드의 어려움, 아직 목표를 정하기에도 어린 연주자들의 열정, 영화감독이라지만 세상에 제대로 알려진 영화 하나 없고 그나마 찍은 영화도 개봉되지 못한 채 한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설움(!) 등도 그려져 있다. 그럴 땐 잔잔한 슬픔이 마음을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 다시 밝은 웃음을 짓고 음악이 살아 숨 쉬는 아일랜드의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바드, 초록의 들판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멤버들의 자유로움이 드라마 <아일랜드>와 <궁>에서 흐르던 음색 독특한 음악과 함께했다. 또한 작가가 성심을 다해 찍고 편집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도 궁금해졌다.

‘이 꼬마 아이는 아마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동양에서 온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엄마와 즐거이 춤추던 한때를…. 난 그날, 그렇게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고, 또 삶이 되는 음악을 지켜보았다.’

이 책은 여행기이다. 이 책은 음악여행기이다. 이 책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기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아일랜드라는 음악의 나라를 소개하는 관광책자이다. 이 책은 그들이 얼마나 즐겁게, 흥겹게 음악의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뮤지컬 여행기이다. 그 모든 게 담겨 있는 게 이 책이다. 이 책에서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음악이란, 악기란 무엇인가.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피아노를 배우고 바이올린을 집어 들지만 실제 커서도 음악 한 곡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멋으로 드라마에서 간혹 연주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음악 전공자가 아닌 우리에게 음악은 살아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그저 음악 수업 시간에 점수를 따야하기 때문에 잠시 배우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에게 음악은 누구나 즐기고 누구나 함께 사는 무엇이 아니고 이미 전문가의 한 분야로 들어가 버린 것이 아니던가. 그들의 삶속에서 활기차게 숨 쉬고 흥겹게 울려 퍼지는, 그들을 하나 만들어주는 음악이, 길거리의 수많은 연주들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늘 흥이 겨웠던 우리가, 이제 음악에 있어 그저 구경꾼일 뿐이라는 게 참 아쉬운 부분이었다. 노인과 아이가 함께 악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장면, ‘Musician's welcome’이란 말이 언젠가 우리에게도 살아나길 바란다.     

‘음악은 삶의 무늬와도 같다. 어떤 이의 삶은 화려하고 어떤 이는 소박하다. 하지만 다 나름의 무늬가 있다. 음악은 때로 그 삶의 무늬를 진하게 하고 또 기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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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 이욱연의 중국 문화기행
이욱연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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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만 읽는 나도 요즘 여행기를 꽤 읽을 정도로 여행기가 추세인가 보다. 나름 신선한 시각, 그림 또는 멋진 사진을 갖춘 매력적인 여행기를 만날 때도 있고 개인사에 치중되어 있거나 개인의 취향과 시선을 강요하는 책도 있고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사실로 탈바꿈시키는 꼴불견의 여행기도 있고 유명인이 내는 여행기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본다. 작가들도 간혹 여행을 작품의 소재나 작품을 쓰기 위한 필수품(!)으로 쓰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젠 독특한 시각의 여행기 또는 여행하는 동안 썼던 ‘끄적임’을 수필로 내기도 한다. 가끔은 평범한 사람이 쓴 여행기도 나와 취향이 맞아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중국에 관한 이 문화기행을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 중의 최고의 여행서였다. 읽는 내내 마음이 중국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꽉 차왔다. 이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 책이 있었던가! 그래서 중국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평생 한번 못 가보더라도 원이 없을 것 같다. 그들을 이해하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문화만한 게 있을까.  

사실 여행이라면 지치고 지친 내게 만약 전세계에서 제일 나중에 가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코 중국이 될 것이다. 악명 높은 화장실, 대국주의에 젖어있는 사람들, 무지막지한 공산주의, 원료와 조리방법이 의심스러운 음식들, 그들의 고집과 우월주의, 또한 가난을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나오는 앨러지 반응,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속셈, 더러움에 대한 무딤 등등, 이 모두가 가보지 않고도 이미 형성된 내 안의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유 없는 비난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이 이룩한 역사, 문화, 문학, 음악, 건축 등등 인정할 것도 무수하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넘어서기에는 중국은 내게 너무 미지의 나라이고 무서운 나라다.

저자도 그런 얘기를 한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는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나쁜 것만 골라놓은 것 같은 중국의 모습이 한없이 역겹고 불편했다.’라고.

하지만 차근차근 드러나는 저자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선입견과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저자는 중국에 정통한 교수이다. 학생들에게 중국문화 수업을 하면서 함께 토론하고 또 여행한 곳곳에 대한 기록을 적었다. 하지만 장소나 역사에 대한 단순한 기술 이상이다. 중국 영화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 분석 또한 어찌나 맛난 분석이던지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본 영화도 있고 못 본 영화도 많았지만 모두 다시 한번 챙겨보고 싶어진 영화들이었다. 영화를 통해 중국과 중국인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다가갈 수는 있지 않겠는가. <인생>과 현대 중국인을 비교하면서 저자가 하는 생각이다.

‘중국에 살거나 여행하면서 놀랄 때는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가 아니라 고통을 참으면서 끈질기게 버티는 중국인들을 만날 때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런 중국인을 만나면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한심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고 무섭기까지 하다. (...) 중국인의 인내심이란 불만, 불평을 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으며 어떤 고난이라도 묵묵히 참아내는 태도다. 그리고 이런 인내심은 곧잘 끈질김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고, 아무리 댓가가 적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 중국인의 약점인 동시에 강점이 바로 이것이다.’

중국의 삶, 문화, 중국 자체 그리고 중국인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현재와 영화를 통해 나타냈다. 역사, 지리, 정치까지 폭 넓고 다양한 방면을 세심한 필치로 그렸다. 거기에 재미와 진솔함까지 덧붙여져 중국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따스한 미소를 잃지 않고 깊은 애정을 끌어내는 시선이었다. 이해를 넘어 공감까지 가능하게 한 착하고 재미난 책, 감사한 책이다. 자잘한 에피소드도 많아 시종일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또 은근슬쩍 끼워 넣는 작가만의 유머에도 깔깔거리게 된다.

‘중국 컵라면을 하나 사고 바나나를 한근 샀다. 점심용이다. 옆자리에 앉은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거의 1분에 한번씩 선실 바닥에 침을 뱉는다. 뻬이징에서는 올림픽을 앞두고 ‘침 뱉지 않기’ ‘머리 자주 감기’ ‘웃통 벗지 않기’ ‘새치기 안하기’ 같은 문명운동을 펼치는데 뻬이징의 문명화운동이 아직 창강을 타고 채 올라오지 못한 모양이다. 중국에서 여행하다보면 겪기 마련인 더럽고 불편한 것에 어지간히 적응이 되었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컵라면 면발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난 척하면서 선물할 수 있는 책이면서도 선물하고 나서 내가 더 행복해질 책이다. 그럼 이제 중국에 가볼까… 그런데 난 중국어를 못하는데 어쩌지? ^.~ 음… 이 책 들고 가면 되지. 내 시선에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담겨있다면 중국도 중국인들도 그에 화답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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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마녀
마이굴 악셀손 지음, 박현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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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 쪽이 넘는 길고긴 스토리였다. 사월의 마녀가 끌고 가는 길고긴 증오와 복수의 길을 따라, 자매 아닌 자매들의 이야기를 따라 이쪽저쪽으로, 과거와 현재가 복잡한 미로로 꼬인 길을 사방팔방으로 함께 숨차게 달렸다.

입양가정이라는 독특한 가정사와 자매들의 엄마인 엘렌, 입양된 아이들의 각각의 사연, ‘사월의 마녀’라는 새로운 개념, 자매들 간의 오해, 몸은 평생을 침대에서 보냈지만 정신만은 자유자재인 나, 그런 나를 돌보는 의사 후베르트손과의 대화 등등 증오와 사랑이 모두 숨 쉬는 가운데 가끔은 한숨이 가끔은 두려움이 이야기 전체에 나지막이 깔려있는 긴장감과 함께 흘러갔다. 안개 가득한 분위기에 새로이 드러나는 사실들… 그리고 그와 함께 밑바닥에 깔려있는 서스펜스에 반전 아닌 반전…

긴 이야기였지만 그리고 끝에 약간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미스터리가 꼬리를 물고 신비한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그들의 삶에 함께 휘말려 들어가 단숨에 읽었다. 육체적인 장애와 자유로운 정신이 뛰어난 상상력으로 교차하고 끝간 데 모르고 뻗어나가는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강탈해간 자매들을’ 향한 치밀한 복수극을 위해 인간 삶의 종말을 예고한다.

머리에 대망막 주머니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베난단티는 둑음의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 엄마를 향해서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장애아의 증오는 얼마나 클 것인가. 더구나 자신이 4월의 마녀일 때, 그 증오는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렇다, 나는 원한다. 손에 저울을 들고 번쩍이는 왕좌에 앉은 신 앞에서 내 죄를 고백하고 싶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까만 구슬 세 개를 내보일 것이다. 질투의 구슬과 절망의 구슬. 그리고 마지막, 하늘이 내려준 나의 직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구슬을.’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고 의사로서 직분을 다하지만 늘 외로운 자매, 끊임없이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지만 그래도 외로운 자매, 반항을 일삼다 마약과 술로 일생을 보내는 자매 그리고 장애로 평생을 침대에서 지냈던 나, 결국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게 엄마의 사랑이든, 남자의 사랑이든, 인류애 넘치는 한 인간의 사랑이든, 사랑이 없으면 그게 어떤 삶이든 외롭긴 마찬가지니까. 

결국 결론은 사랑이 아닐까.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최고의 반전 아닌 반전이 아닐까. 벤치에 앉아 내가 어둠 속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후베르트손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그래서 그런 삶을 준 신에게 반항한다 해도 이 신의 한마디에 뭐라 답할 것인가.    

“나는 알고 있다. 네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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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5-09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네요. 제가 쓰는 얘기도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방식인데...ㅋㅋ
암튼 나중에라도 읽어보고 싶은군요.^^

진달래 2008-05-13 08:50   좋아요 0 | URL
아, 네,,, 궁금해지는데요. 그 이야기...
이건 좀 어두운 얘기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