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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 이욱연의 중국 문화기행
이욱연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평점 :
소설만 읽는 나도 요즘 여행기를 꽤 읽을 정도로 여행기가 추세인가 보다. 나름 신선한 시각, 그림 또는 멋진 사진을 갖춘 매력적인 여행기를 만날 때도 있고 개인사에 치중되어 있거나 개인의 취향과 시선을 강요하는 책도 있고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사실로 탈바꿈시키는 꼴불견의 여행기도 있고 유명인이 내는 여행기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본다. 작가들도 간혹 여행을 작품의 소재나 작품을 쓰기 위한 필수품(!)으로 쓰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젠 독특한 시각의 여행기 또는 여행하는 동안 썼던 ‘끄적임’을 수필로 내기도 한다. 가끔은 평범한 사람이 쓴 여행기도 나와 취향이 맞아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중국에 관한 이 문화기행을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 중의 최고의 여행서였다. 읽는 내내 마음이 중국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꽉 차왔다. 이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 책이 있었던가! 그래서 중국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평생 한번 못 가보더라도 원이 없을 것 같다. 그들을 이해하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문화만한 게 있을까.
사실 여행이라면 지치고 지친 내게 만약 전세계에서 제일 나중에 가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코 중국이 될 것이다. 악명 높은 화장실, 대국주의에 젖어있는 사람들, 무지막지한 공산주의, 원료와 조리방법이 의심스러운 음식들, 그들의 고집과 우월주의, 또한 가난을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나오는 앨러지 반응,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속셈, 더러움에 대한 무딤 등등, 이 모두가 가보지 않고도 이미 형성된 내 안의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유 없는 비난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이 이룩한 역사, 문화, 문학, 음악, 건축 등등 인정할 것도 무수하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넘어서기에는 중국은 내게 너무 미지의 나라이고 무서운 나라다.
저자도 그런 얘기를 한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는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나쁜 것만 골라놓은 것 같은 중국의 모습이 한없이 역겹고 불편했다.’라고.
하지만 차근차근 드러나는 저자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선입견과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저자는 중국에 정통한 교수이다. 학생들에게 중국문화 수업을 하면서 함께 토론하고 또 여행한 곳곳에 대한 기록을 적었다. 하지만 장소나 역사에 대한 단순한 기술 이상이다. 중국 영화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 분석 또한 어찌나 맛난 분석이던지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본 영화도 있고 못 본 영화도 많았지만 모두 다시 한번 챙겨보고 싶어진 영화들이었다. 영화를 통해 중국과 중국인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다가갈 수는 있지 않겠는가. <인생>과 현대 중국인을 비교하면서 저자가 하는 생각이다.
‘중국에 살거나 여행하면서 놀랄 때는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가 아니라 고통을 참으면서 끈질기게 버티는 중국인들을 만날 때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런 중국인을 만나면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한심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고 무섭기까지 하다. (...) 중국인의 인내심이란 불만, 불평을 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으며 어떤 고난이라도 묵묵히 참아내는 태도다. 그리고 이런 인내심은 곧잘 끈질김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고, 아무리 댓가가 적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 중국인의 약점인 동시에 강점이 바로 이것이다.’
중국의 삶, 문화, 중국 자체 그리고 중국인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현재와 영화를 통해 나타냈다. 역사, 지리, 정치까지 폭 넓고 다양한 방면을 세심한 필치로 그렸다. 거기에 재미와 진솔함까지 덧붙여져 중국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따스한 미소를 잃지 않고 깊은 애정을 끌어내는 시선이었다. 이해를 넘어 공감까지 가능하게 한 착하고 재미난 책, 감사한 책이다. 자잘한 에피소드도 많아 시종일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또 은근슬쩍 끼워 넣는 작가만의 유머에도 깔깔거리게 된다.
‘중국 컵라면을 하나 사고 바나나를 한근 샀다. 점심용이다. 옆자리에 앉은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거의 1분에 한번씩 선실 바닥에 침을 뱉는다. 뻬이징에서는 올림픽을 앞두고 ‘침 뱉지 않기’ ‘머리 자주 감기’ ‘웃통 벗지 않기’ ‘새치기 안하기’ 같은 문명운동을 펼치는데 뻬이징의 문명화운동이 아직 창강을 타고 채 올라오지 못한 모양이다. 중국에서 여행하다보면 겪기 마련인 더럽고 불편한 것에 어지간히 적응이 되었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컵라면 면발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난 척하면서 선물할 수 있는 책이면서도 선물하고 나서 내가 더 행복해질 책이다. 그럼 이제 중국에 가볼까… 그런데 난 중국어를 못하는데 어쩌지? ^.~ 음… 이 책 들고 가면 되지. 내 시선에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담겨있다면 중국도 중국인들도 그에 화답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