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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에 박범신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가 쓴 책들을 보다 보니 아는 게 안 보인다. 결국 내가 읽은 그의 책들은 좋은 책에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박범신은 내 어릴 적 유명한 작가였고 뜻도 모르면서 그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난 박범신 작가, 그의 필체가 살아있음이 반갑고 고맙다. 문체에서 옛것이 느껴지기도 해서 간혹 추억을 돌아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감동이 서슴없이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이 시대의 강한 ‘사내다움’을 느낀다.
<빙우>던가. 유지태와 김하늘이 나온 몇 년 전 영화가 있었다. 당시 극장에 애기들을 데리고 들어온 아줌마들 때문에 제대로 그 재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그 엄청났던 설산은 기억난다. 그 영화는 사랑으로 서로 엇갈린 운명을 그리면서 그 끝을 히말라야 설산에서 마무리하는 영화였는데 영화와는 별개로 그 배우들의 추위와 고통이 손끝까지 전해져 내 가슴까지 얼어붙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슬슬 얼어붙었다. 이 따스한 5월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전기담요를 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두 형제의 산행은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 빙벽이 보통 빙벽인가. 최소한의 장비만 갖고 아버지가 다른 두 형제 상민과 영교,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더 나는 두 형제가 각각의 삶과 그 아픔을 안고 오르던 촐라체. 그 둘을 위해 불을 밝혀놓고, ‘그리워서…’ 산으로 들어간 아들 현우를 생각하며 나는 베이스캠프를 지킨다. 간혹은 산사태가 나기도 하고 간혹은 추락도 일어날 수 있는 촐라체 북벽을 오르며 두 형제는 ‘고독의 맨얼굴’인 정적도 만난다. 또한 엄청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여정을 가면서 먼저 그 길을 갔던 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짧은 인생 동안 겪었던 일들도 다시 떠올리고 인생의 우여곡절을 되새기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정상을 정복했다는 따위가 아니다. 아무리 높은 산의 정상이라고 해봐야 다 똑같을지도 모르니까. 정상으로 향하던 동안의 고통도 아니다. 그런 고통은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응축해놓은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니까. 중요한 건 각자가 품고 갔던 생각의 끝을 봤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사경을 헤매고 심한 부상을 입어 불구가 되어도 또 동상으로 손가락 마디를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그 산행을 꼭 해야만 했던 각자의 이유, 그것이 아니었을까. 각자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 어쩌면 그것이 우리 모두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하나의 촐라체가 아닐까.
‘박상민 형제가 그랬듯이,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갈망을 쫓아 보상 없는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길은 결국 두 갈래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길은 경쟁에 가위눌리면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안락한 일상을 버릴지라도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상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또한 사내들의 강한 의지, 약함도 약점도 받아들이는 그 강함이 이 작품엔 살아있었다. 작품을 읽기 전엔 그 사내들의 열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위험한 산엘 오르는지… 하지만 이젠 안다. 그래야 함을, 그래야 했음을… 존재에 대한 확인, 너무나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도전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감동이 넘친다.
그리고 ‘사랑해,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 미안ㅎ…’라는 뜻을 이해했을 땐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처지에 처했든, 가족은 사랑이다. 이제 나도 떠나고 싶다. 내 마음속 촐라체를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