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 슬픔 속에도 기쁨이, 완역특선
진 웹스터 지음, 민병덕 옮김 / 정산미디어(구 문화산업연구소)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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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키다리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언제 읽어도, 몇 번을 읽어도 좋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중 3 영어 실력으로 예전에 이 책을 원서로도 읽었었다. 워낙 많이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단어도 찾지 않고 읽어도 재밌었다. 어쩌면 우울한 어느 날 꺼내서 또 읽어보면 그 우울이 훌쩍 달아나겠지… 

어릴 적에 한번쯤 고아를 꿈꿔 보지 않고 키다리 아저씨 같은 후견인을 꿈꿔 보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사랑을 듬뿍 받고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는 아이라도 어느 날 실수로, 또는 떼를 부리다 야단을 맞았을 때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해볼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늘 마음 한켠에 그런 키다리 아저씨를 꿈꾸는 상상은 남아있을지 모른다.

물론 다른 좋은 고전들도 많이 있지만 언제 읽어도 이 <키다리 아저씨>가 좋은 이유는 주인공 주디가 평범하면서도 원래 천성이 밝고 유쾌한 아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디는 무작정 착한 캐릭터도 아니고 이유도 없이 누구한테나 사랑 받는 캐릭터는 더더군다나 아니고 끝없이 넘쳐나는 고난을 무한한 용기로 다 이겨내는 캐릭터도 아니고 끝에는 친부모를 찾게 되는 그런 고전적인 수법(!)의 캐릭터도 아니고 또 고아라고 언제까지 질질 짜고 있는 아이가 아닌 것이다.

주디는 최대한의 유머를 갖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더 처지가 나은데도!)는 모두 용기를 얻는지도 모른다. 고아라는 운명을 갖고 있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놓고 슬픔에만 잠겨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처지를 이용해 후견인의 도움을 최대한 받는 것도 아니다. 불평 할 일이 있으면 불평도 하고 실수를 하면 우울해하는 게 주디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벌떡 일어나 새로운 계획을 하는 것이 바로 주디의 장점이다. 방학 때 유럽에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는 대목이다.   

‘(...) 그 사람들(샐리와 줄리아)은 둘 다 갓난애였을 때부터 여러 가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행복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들에게 빚이 있어서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어떤 경우에나 세상은 빚이 있다고 인정하고 치러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세상은 아무런 빚도 없습니다. 애초부터 확실히 그렇게 선언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제 요구를 거절할 때가 반드시 닥쳐올 것이므로 외상을 질 권리 같은 것은 제게는 없는 것입니다.’

이 책이 재밌는 또 하나의 장점은 사랑에 대한 대목이다. 처음 읽을 땐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반전도 궁금증 유발에 한 몫을 하고 또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땐 그 반전을 알고 있기에 더 재밌다. 그 모두 우리 인생에 빠뜨릴 수 없는 사랑에 관련된 대목이 아닌가.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게 되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바로 이 작품에 들어 있는 것이다.

곁에 놓아두고 수십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을 책이고 나중(언제? ^^;;)에 내 딸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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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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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마다 침대맡에서 이 시집에 실린 많은 시인들의 많은 시를 읽었다.
그러다 잠이 오면 시집을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시들과 고적한 저녁시간을 함께하며 일주일이 흘렀다.

처음엔 시만 읽었다.
시면 됐지, 무슨 설명… 그랬더랬다. 
그러다 안도현의 설명을 한번 읽어봤다.
그랬더니 더 좋더라.

시인의 시와 함께 안도현의 따스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리고 주말이 마무리되는 이 저녁 시간,
시집에 수록된 씨디를 듣는다.
시인들의 육성과 안도현 시인의 낭송이다.
시인들의 목소리가 이렇구나.

마음 시끄러울 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이 시인들의 낭송을 들어야겠다. 

특히 제일 좋아한 시는 정윤천의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이었다.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시째냐? 악아, 어찌고 사냐. 염치가 참 미제 같다만, 급허게 한 백마넌만 부치야 쓰것다. 요런 말 안헐라고 혔넌디, 요새 이빨이 영판 지랄 가터서 치과럴 댕기넌디, 웬수노무 쩐이 애초에 생각보담 불어나부렀다. 너도 어롤 거신디, 에미가 헐 수 읎어서 전활 들었다야. 정히 심에 부치면 어쩔 수 없고……

(...)

나도 울 어매 폼으로 전활 들었다.

엄니요? 근디 어째사끄라우. 해필 엊그저께 희재 요놈의 가시낭구헌티 멫푼 올려불고 났더니만, 오늘사 말고 딱딱 글거봐도 육십마넌뻬끼 안되야부요야. 메칠만 지둘리먼 한 오십마넌 더 맹글어서 부칠랑께 우선 급헌 대로 땜빵허고 보십시다잉. 모처럼 큰맘 묵고 기별헌 거이 가튼디, 아싸리 못혀줘서 지도 잠 거시기허요야. 어찌겄소. 헐헐, 요사 사는 거이 다 그런단 말이요.

떠그럴, 사십마넌 땜에 그날밤 오래 잠 달아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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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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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그렇다. 열일곱 니은이는 이제 혼자다. 급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삶의 지표도 살아가는 법도 완전히 잃어버린 여자아이였다. 아주 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더라면 일찍부터 ‘고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마 다르게, 어쩌면 용감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니은이는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부모님께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 동안 잘못한 수만 가지 일에 대해 변명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냥 여자아이였다.

이 이야기는 그런 니은이가 조금씩 부모 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홀로 세상 보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는 이야기이다. 많이 아프고 함께 공감하고 조금쯤 걱정을 하며 그리고 속으로 나도 모르게 ‘화이팅’을 외치며 니은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열등감 덩어리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심리를 너무나 적나라하고 자연스럽게 파헤친 <사람풍경>으로 처음 김형경을 만났었다. 그리고 이제 소설, 어떻게 보면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열일곱의 니은이를 주인공으로 보면 청소년 소설이 맞다. 하지만 넓게 보면 이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모든 이, 혼자서 어른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세상은 우리에게 어른이 되라고 강요한다. 그것도 갑자기… 문제는 일단 이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님과 이별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살아생전의 부모,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부모, 아무 생각 없이 예전의 행동을 하다 언뜻 떠오른 부모님의 걱정하는 한 마디를 들은 것 같을 때 아무래도 이별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다 이젠 그 부모님 없이 이 세상을 홀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생각도 행동도 미래의 지표도…

그 모든 걸 니은이는 아빠의 고향인 바닷가 처용포에서 한다. 니은이는 아빠가 해주던 처용포에 얽힌 이야기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고래잡이의 마지막 포수 장포수 할아버지, 도와주는 셈치고 와서 밥 먹으라는 왕고래집 식당 할머니, 아직 부모도 있고 사촌언니도 있고 남자친구도 있는 친구 나무, 번갈아 찾아와 니은이를 걱정해주는 이모와 고모… 결국 따져보면 혼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혼자였던 니은이는 결국 혼자 힘으로 이들을 찾아낸다. 간혹은 그들의 이야기로 또 간혹은 꿈같은 어떤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이런 질문들은 그런 니은이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열일곱살 때 뭐 했어요?”
“할머니는 열일곱살 때 뭐 했어요?”

“울면서,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열다섯살에 시집을 갔고, 할아버지는 열여섯살에 고래배를 탔다. 나는 열일곱살이다. 법적으로는 미성년이지만 나이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니은이의 말대로 그 나이에 유관순 누나는 독립만세를 외쳤고 석봉이는 명필이었고 오성과 한음은 더할 나위 없는 우정을 다졌다. 니은이도 조금씩 세상과 맞설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더디고 얼마나 힘들던지 읽는 나마저 한도 끝도 없는 고개를 사방팔방으로 떨어져나가는 짐을 끌면서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고래 이야기 그리고 바다와 바닷가 사람들 얘기는… 그냥 묻어두련다. 고래가 둑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피를 뿜는 광경을 꽃핀다고 표현하는 고래잡이 들의 얘기에는 ‘시 같다기보다’ 끔찍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 그들처럼 고래잡이가 생활의 수단이고 터전일 경우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는 그대로 그들의 삶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보다 일말의 어떤 판단이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나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단 건 아니다. 니은이의 홀로서기와 병행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처용포 얘기를 안 하는데 대한 내 변명일 뿐이다.   

니은이의 홀로서기엔 혼자 고통을 새기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세상에도 사람들에게도 먼저 기대거나 한없이 요구하는 태도보다는 자신이 어떻게든 먼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에 우뚝 서는 어른이 되려는 그 노력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와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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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06-1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의 글은 늘 마음 아프게 읽혀져서,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읽을까말까 또 망설여지네요.. 너무 맘이 아프지는 않을지..

진달래 2008-06-23 07:5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전 김형경의 소설은 처음이라서...
<사람풍경>을 넘 좋게 읽었는데,
이 작품보다는 그 작품이 더 좋았단 느낌입니다.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만찬] ^^

드디어 알라딘에서 이주의 리뷰에 뽑혔다. ^^;;

알라딘을 젤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서 좀 찔리긴 하지만,

그래도 책은... 알라딘에서도 많이 사려고 노력한다. ^^;;

항상 리뷰도 열심히 올리고 있으니 덜 찔리련다.


[행복한 만찬] 이후에 잡은 공선옥 작가의 책 ^^


알라딘과 함께 기분 좋은 커피 한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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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6-1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진달래 2008-06-17 08: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홍수맘 2008-06-1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

진달래 2008-06-17 08: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 - 제5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지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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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계속 제목을 보면서 내용이 절망적인 소설일 거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언뜻 보기에 꼭 그럴 것 같지 않느냐 말이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망하지 않고도 둑지 않고도 잘 살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 들의 쿨한(!) 연애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연애담이라고 단칼에 자르기엔 당시 상황과도 연결되어 있어, 등장인물들과 결말이 좀 억울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게 보였으니 할 수 없다.

작가 이지형은, 이젠 이지민이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에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를 발표한 작가다. 너무나 현재스러워서 진부하기까지 했던 작품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신선도에 있어서도 이 작품이 훨씬 재밌었다. 물론 20세기 초, 경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고 해서 꼭 그렇게 느낀 것만은 아니다. 신선하면서도 독특하고 그러면서도 사랑과 연애에 대해선 지금이나 그때나 보편적인 감정을 잘 그렸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 같다.

실제로 경성이 그 시절에 어땠는지 난 모른다. 늘 그렇듯이 영상매체나 글로써만 짐작을 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리고 있는 당시 경성은 마치 내가 그 시절을 살았던 것만큼이나 리얼하게 다가온다. 흔히 그 시절은 우리에게 독립투사나 친일 둘 중 하나로써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글을 이끌어가는 이 주인공 이해명은 겉으로 보기엔 친일이다. 부유한 조상에다 제국대학까지 나오고 총독부에 근무하는 잘 생기고 멋진 모던 보이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알고 보니 독립투사다, 뭐, 그런 어설픈 반전 같은 건 없다. 비스무리한 건 조금 있지만…

이해명, 그는 자신을 떠난 여자, 알고 보니 모든 것이 거짓말에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 조난실을 찾아 헤맨다. 곁엔 양심에 찔려하면서도 경성에서 멋쟁이 바람둥이로 통하는 신스케와 총독부 총무국 인사국장의 부인이면서 자신의 부정까지도 우아하고 유쾌하게 즐길 줄 아는 유키코와의 관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랑과 연애, 배신 등등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벌이는 세상이다.        

“여자들은 흔히 남자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데, 완전 사기죠.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운동회 날 비가 올 때나 하는 말이고…… 여자들은 대개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서도 물론 아니고, 다 필요해서 하는 일입니다. 왜, 해명씨는 상처받는 게 두렵습니까? 사람들은 상처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상처 받는 걸 때로는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사랑은 주고받지 못해 환장을 하면서 상처는 당연히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알다니. 넘어온 공을 받아치지 못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다니, 바보들 아닙니까?”

여자가 남자를 왜 배신하느냐는 이해명의 질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을 배반하고 있는 유키코가 대답한 내용이다.

사실 이 책에 모던 보이 모던 걸 들의 연애담만 있는 건 아니다. 그 부분이 제일 커 보여 거기에 초점을 맞춰 읽었을 뿐이다. 당시의 시대적인 멋과 분위기가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어, 독립이냐 친일이냐의 이분법적인 소설에서 벗어난 것이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약점이자 장점처럼 보였다. 결말의 이해명의 태도가 이해가 잘 안 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멋스러운 작품이었다.

‘시간은 언젠가 한번은 기회를 준다’는 말이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마음에 담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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