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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하비에르 바르뎀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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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그것도 스릴 만점의 저공비행으로. 땅에 발이 닿을 듯 말듯, 어느 때는 엄지발가락으로 땅을 한번 박차고 가속을 붙여 아슬아슬하게 계곡 사이를 누비고 짙푸른 바다 위를 수평선을 보며 날기도 한다. 한참을 비행을 하다 잠에서 설핏 깨고 나면 속이 후련하면서도 못내 아쉽다. 다시 잠을 이어붙여 아쉬운 비행을 마저, 맘껏 하고 싶다. 하늘을 나는 꿈은 삶이 안겨 주는 참가상 상품 같은 그런 사소한 기쁨 같은 게 아닐까. 아주 잠깐 꿈속에서나마 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보렴, 하고 말이다. 대개의 꿈들은 현실도 허황됨도 아닌 뒤죽박죽의 우스꽝스런 스토리를 지녔지만 말이다.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 눈을 감고 하늘을 나는 사람을 만났다. 몸뚱이를 움직여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사내는 상상 속에서 하늘을 날아 바다로 향한다. 26년 전 다이빙으로 전신마비자가 된 라몬 삼베드로.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죽음이지만 그에게는 그 선택을 실현할 능력이 없다. 그리하여 마비된 몸뚱이를 건 그의 투쟁이 시작된다.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권리. 하지만 삶의 예찬론자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삶이라는 게 단지 팔을 움직이거나 뛰어다니는 데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세요. 삶은 뭔가 다른 것이지요. 삶이라는 것은 그 이상'이라고 삶의 예찬을 퍼붓는 라몬과 같은 전신마비 성직자의 설득은 '우리가 무얼 하길 원하나요? 그가 말을 못하도록 재갈을 물릴까요? 아니면 딸랑이를 흔들면서 잠을 재울까요?'라는 26년 간 그를 돌봐온 형수의 말로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들의 죽음'보다 아들이 '죽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더 고통을 느끼는 늙은 아버지의 초점 잃은 눈빛은 아들을 사랑하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살기 위해 죽으려는, 죽기 위해 살고 있는 눈물겨운 라몬의 모습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든다. 목 아래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를 달고 머리통 하나로 살고 있는 그에게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는 말은 법원 앞에 서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제 몸을 움직여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성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한없이 가볍고 또 허망하게 만든다. 그를 지탱하며 동시에 짓누르고 있을 그 말의 무게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느닷없이 얻어맞은 뒷통수의 얼얼한 아픔처럼 혼란스러웠다. 죽음을 선택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갖는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보다 도통 어떤 삶이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 삶이 가진 의미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의무로 살아내는 삶과 자유의지로 택한 죽음은 어느쪽이 더 숭고한 것인가. 가치란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어떤 경우에서도 삶의 순간들과 죽음을 긍정하는 라몬을 지켜보자면 그가 그 상태로 삶에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걸까,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하여 라몬이, 로사가 다녀간 후에 장난스런 눈빛으로 곱아 있던 손가락을 움직이며 슬며시 몸을 일으켜고, 침대 바깥으로 걸어나와 침대를 밀어놓고 복도까지 물러나 전력질주로 도움닫기를 하여 창밖을 향해 날아오르는 장면은 한순간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로사의 아들의 말처럼 라몬은 꾀병이었던 거야?'라는 황당함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라몬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다는 데 대한, 그러니까 '아직도 당신은 삶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무거운 물음에서 고개를 돌리지 말라는 감독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느껴지는 당혹감이라는 거다. 로사처럼 관객은, 라몬의 금붕어처럼 꿈벅거리는 위트 가득한 눈을 들여다보며 그가 삶을 지속하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죽음의 선택이 주는 삶의 존엄을 받아들여 그를 돕는 사람은 로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말이다. 라몬의 삶과 죽음은 슬프지 않지만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니 그의 죽음에 눈물어린 박수를. 그 어딘가의 시공간에서 그가 바다를 향해 자유로운 비행을 할 수 있기를.  

우연찮게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본 후 이 영화를 보았다. '이번에야말로 세상의 끝인 줄 알았음'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또다시 '삶의 지옥'을 선택하는 마츠코와 라몬은 묘한 대조를 이루지만 결국 이 두 영화의 감독이 말하려는 바는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의미없네, 의미없네, 살아가는 게 의미없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이 말처럼 삶에 너무 큰 의미를 두려고 할 때 그순간 삶은 의무가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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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6-0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고 또 멋진 리뷰이옵니다
망설이다 극장에서 놓쳐버렸는데, 찾아 보고 싶어져요 ^^

superfrog 2007-06-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이 영화 꼭 보세요. 정말 봐야 할 영화라고 꼽습니다.^^

2007-06-04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7-06-0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충일님ㅋ, 담에는 좀더 숭고한 날로 잡아볼까요? 일테면, 물의 날이라던가, 지구의 날이라던가, 말복이라던가..^^;;;

치니 2007-06-0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정말 잘 쓰시네요. 포스터가 제 취향이 아니라 접어놨던 영화인데 슬쩍 보고 싶어지는데요? ^-^

superfrog 2007-06-0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시디 케이스의 저 얼굴은 영화 전체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장면이에요.
일전에 카이레님도 쓰셨지만, '슬쩍' 말고요, 진짜 치니님도 꼭 보셨음 좋겠습니다.^^

superfrog 2007-06-0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틀이님, 히힛! 세 편 다 보셔도 절대 후회 안 하실 겁니다.^^

2007-06-16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7-06-16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저와 많이 공명했던 영화에요.
치기어리게도 죽음에 대한 답을 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닥치기까지 끊임없이 품고 있어야 할 생각이 아닌가 해요.
이 영화가 님께 어떻게 읽힐지 많이 궁금해요.
햇살과, 동반한 그늘처럼 조화로운 날들 보내시길.
풍경이 되었다는 표현, 맘에 들어요.^^

2007-06-27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9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