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빨리 우리나라에서 다카라즈카 가극단 내한 공연을 볼 수 있을 줄 몰랐다. 일문학 전공인 여동생이 10년전에 이 극단의 주역 배우 팬이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 유학 중이었던 나는 자료 모아 보내주고 공연 표 예약해주고 하다가 따라서 팬이 되었었다. 엄마 또한 우리가 사다 나른 비디오랑 NHK위성방송의 공연실황방송 등을 통해 이 극단의 공연을 즐기게 되었고.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전원 미혼 여성으로만 이루워진, 이를테면 우리나라 여성국극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랄까? 일본 전통극, 창작극, 해외유명뮤지컬 등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해외 공연을 많이 한 가극단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정서상의 문제 등등으로 내한공연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10년전에 대학원에서 일본국제교류기금 이사를 초청하여 계절학기 강좌를 들었는데 '한국측에서 문화교류로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와주길 희망하고 있지만, 여러가지 여건상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우리가 좋아했던 배우들도 다 은퇴했지만(실력은 그 때 배우들이 좋았는데, 아쉽다), 성사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내한공연이 '한일 우정의 해'를 기념하여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이루어지게 되어서 옛 추억을 되살려 보러갔다. 한류 덕도 봤겠지. 세상 많이 변했다.
경희대 평화의 전당은 고딕양식의 교회당같은 건물이었다. 안팎으로 대리석 장식, 샹들리에에 빨간 카펫. 공연 일정이 뒤늦게 잡혀 시내 대형 공연장을 못잡았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딱 어울리는 공연장 아니었나 싶다.
평화의 전당 앞
공연장은 예상했던 대로 일본에서 단체로 날아온 골수 일본 여성 팬 부대가 많았다. 주인공의 의상(로코코풍 드레스에 금색 가발!)을 입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예상외로 우리같이 숨은 팬들이 많은지, 초대권으로 온 것 같은 가족동반이나 부부동반 관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역시나 여성. 처음에 아빠도 같이 가겠다고 해서 난감했었는데, 일이 생겨서 못오신게 다행.
극작가, 작곡가와 연출가는 여전히 70년대 취향을 못 벗어나고 있어서 무척 안타까왔지만, 그들의 팬 서비스 정신과 프로 의식에는 감탄! 솔직히 유명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극색한 가극 공연은 기대 안했던 대로(? 그 좋은 원작 가지고 이것 밖에 못하냐! )였으나, 2부의 레뷔 쇼 '소울 오브 시바'는 좋았다. 옛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
배우들도 중가중간 우리말 대사를 집어넣고, 우리말로 '천국의 계단' 주제가를 부르고, 우리곡에 맞춰 춤을 추고, 한국어 인삿말도 길게 하는 등 . 일본에서 날아온 팬도 많았지만, 국내 팬(물론 대부분 여성)들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배우들도 즐거워했을 거다. 2번의 커튼콜이 끝나고 일부 관객들은 퇴장하기 시작하는데, R석 관객들을 중심으로 2002 축구 월드컵 때 응원하던 것처럼 박수를 치며 '대한민국!'대신 '호시구미(星組)~'를 연호했더니, 3번째로 막이 올라갔다. 그리고 주역 배우인 코즈키 와타루가 '기억해둔 한국말 인사 다 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한국 최고! 한국 만세! 다시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다카라즈카에 놀러 오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앞으로는 좀더 좋은 레파토리를 가지고, 가극단 소속 다른 팀들도 내한공연해줬으면 좋겠다.
다카라즈카 내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