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미야베 미유키의 [가모 저택 사건]을 끝냈다.
두께 3cm짜리 문고판. 600페이지 이상.
1학기말에 사서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읽다가 어제 대단원을 맞이했다. 말그대로 [대단원]이었다.
제목에는 [사건]이 들어가있지만, 그것은 살인사건은 아니고...어떻게 보면 보통 미스테리 작가의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사건다운 사건은 없었다. 처음 시작은 좀 지루하기조차 해서 책장을 넘기기 위해 인내심이 약간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에필로그인 [다카시]를 보면서 가슴속에서 확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의 느낌.
주인공 소년 다카시에게 감정이입해버렸다.
다카시의 손에 뱄을 땀, 다카시가 참고 있는 눈물, 복바쳐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간신히 한마디 한마디 이어내는 다카시의 말...
마지막 장면의 무대는 나도 잘 알고 있는 아사쿠사의 카미나리몽 앞. 마치 내가 다카시가 되어 그 거리에 망연자실한 채 서서 그리운 사람의 편지를 쥔 채 그리운 사람의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듣고 있는 거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다카시에게는 2개월전의 일. 하지만 그건 60년전의 일...
[시간을 달리는 소녀] 생각이 났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생각났다.
그런데, 그런 소설들이 다 시시하게 여겨졌다.
1936년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인 2.26사건 당시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소년이 조우하는 사건을 다룬 소설이지만, 단순한 미스테리 소설로도, SF소설로도, 역사 소설로도 정의하기 힘들다.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미스테리는 가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싫어질 때가 있다. [화차]가 가장 그랬다. 읽을 때는 몰입해서 읽었지만 실제 그런 일이 현대사회에 있을 법 하기에 싫었다.
[가모 저택 사건]에서 다카시는 60년전 과거에서 만난 20살 처녀(소작농의 딸로, 저택의 하녀)를 보고 이렇게 느낀다. 현대에는 이런 처녀 없어...라고. [가모 저택 사건]을 읽고 난 내 느낌도 그런 거 같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그 60년(태평양 전쟁 전후의 격동기)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가슴을 울린다. 미야베 미유키의 역사 인식이 바른 것도 더욱 감정이입하기 쉬웠던 원인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역사는 배우지만, 일본이 왜 그런 침략국가로 흘러가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데, 이 책은 조금이나마 그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준다. 그러고보니 미야베 미유키는 결코 사회파 작가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 게 아니다. 주인공 다카시가 과거에서 '미래에서 왔으면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른단 말이야?'라는 말을 듣고 현대로 돌아와서 잘 몰랐던 일본 현대사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것처럼, 많은 독자들이 일본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했을 거 같다.
물론 그런 역사 배경의 것이 가공의 것이라고 해도, 이 소설은 소설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심금을 울린다. 번역이 된다는 거 같은데, 추천한다.
드디어 번역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