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모임이 참 많다. 사서, 평생교육사, 규환 초딩엄마, 독서클럽, 향우회, 교육청, 대학친구, 초딩친구 모임 등등. 퇴직 후에도 일곱개 정도의 모임을 유지하고 있어야 노후를 즐겁게 보낼수 있다고 하지만 모임이 좀 과하다. 이름만 올려 놓고 나가지 않는 대학 동문 모임까지 합하면 10개도 넘을듯. 그 중에는 가고 싶지 않은 모임도 있어 회비만 내고 핑계를 대며 가뭄에 콩나듯 나가고는 한다. 얼마전 법륜 스님의 글에서 모임중에 누군가를 싫어해서 그 사람을 제외하면 또 다른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하면서 내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바람직한 말씀을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지만 모임에서 탈퇴하기도 싶지는 않다. 늘 고민만 하고 있다!
몇년전부터 마음 맞는 성당 엄마들 넷이서 한달에 한번 만나 맛있는 음식 먹고 맥주도 한잔 하며 최종 목적지는 유럽 여행인 모임을 하고 있다. 다행히 네 명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여분의 곡식(?)이 생기면 골고루 나눠주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작은 선물을 챙겨주는 정을 베푼다. 한달에 오만원씩의 회비를 내는데 꽤 모았다. 두 명의 아이가 고3이라 올해는 불가능하고 내년쯤에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여행을 꿈꾸고 있다. 이 중에 나보다 두살 많은 언니가 요즘 '세실아, 좋은 책 추천 해줘!' 하기에 몇권 골라 주었더니 열심히 읽고 있다. 이유는 내년에 50세가 되는데 좀 더 우아한 '내'가 되고 싶단다. 사람들과 대화할때 기본 지식이 없어 막히는 느낌도 들고, 상식도 짧아서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쌓고 싶단다. 성당일도 열심히 하고, 골프도 열심히 치며, 한글학교 봉사도 열심히 하는 언니인데 지적 충족까지 챙기는 마음이 참 예쁘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드는 지인들을 보면 내가 막 자랑스러워지면서 흐뭇하다.
나는 우아한 50대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할까? 요즘 '모던 패밀리' 보면서 듣기 하고 있는데, 여행갔을때 영어만 들려도 좋겠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막 읽고 싶다고 할때 추천하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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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늘, 내일 하기로 했던 도서관 정기 감사가 3월 10일로 연기되어 기분이 다운되었다. 다음주부터 프로그램 개강하면 바빠지고, 감사장을 꾸미려면 부득이 휴강해야 하는 절차들이 내키지 않는다. 감사 담당자에게 전화로 싫은 소리를 했는데 '오죽하면 저희도 바꾸겠어요' 하는 말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우리는 갑이 아닌 을의 관계니까.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는데 책상 위에 은희경 신간이 놓여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는데 이런 '860'번이다. 100번, 200번.....1,000번, 3,000번 이런식으로 선물을 주던데....안.타.깝.다! 나에게 정녕 횡재수는 없는건가? 그래 노력만이 살길이다. 눈 꽃송이가 은박으로 되어 있는 표지가 참 예쁘다. 손만 없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제목과 표지가 잘 어우러진다.
여섯개의 단편이 희미한 연결고리가 되어 하나로 이어진다. '올리브 키터리지' 처럼 보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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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 애랑 같이 내기하며 놀았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하는 내기다. 창문 밖에서 풀풀 나는 눈송이 속에서 각자가 하나씩 눈송이를 뽑는다. 건너편 교실 저 창문 언저리에서 운명적으로 뽑힌 그 눈송이 하나만을 눈으로 줄곧 따라간다. 먼저 눈송이가 땅에 착지해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정했어' 내가 작은 소리로 말하자 '나도' 하고 그애도 말한다. 그애가 뽑은 눈송이가 어느 것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지만 하여튼 제 것을 따라간다.
잠시후 어느 쪽인가 말했다. '떨어졌어'. '내가 이겼네.' 또 하나가 말한다. 거짓말해도 절대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께 야단맞을 때까지 열중했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 사이토 마리코, '눈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