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을 관람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50여 점의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박래현의 ‘여인’, 장욱진의 ‘나룻배’,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천경자의 ‘노오란 산책길’, 나혜석의 ‘화령전작약’은 특히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던 신여성 나혜석의 불우한 삶과 정조의 사당인 화령전 앞 붉은 빛 작약의 화려함은 처연했다. ‘화령전작약’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명화와 해설이 어우러진 책을 좋아한다. 명화를 감상하고 해설을 읽으면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고, 좋은 그림 한 점은 마음을 정화한다.
도서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의 이주은 저자는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며, 이화여자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책에 스며들어 그림에게 말을 걸고, 나를 되돌아보며,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경험을 한다.‘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라는 부제처럼 그림으로 위로와 치유를 받는다.
나혜석의 삶은 프랑스의 조각가이며 로댕의 여인인 카미유 클로델과 오버랩된다. 오귀스트 로댕의 ‘입맞춤’은 로댕이 클로델과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제작한 작품이다. 클로델은 로뎅의 제자로 오기 전에 이미 조각가로서 재능을 인정 받았지만 로뎅의 그늘에 가리웠다. 로뎅과 헤어져 전시회를 열었는데 스승의 작품 표절 의혹을 받고 로댕과의 스캔들만 이슈가 된다. 결국 클로델은 정신병원에서 30년을 보내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와 ‘우는 여인’ 에는 피카소의 연인 도라가 주인공이다. 피카소는 오랜 동거녀 마리 테레즈와 헤어지고 도라를 만나지만 마리와의 사이에 태어난 갓난아이는 연결고리가 된다. 도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변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우는 여인’의 도라는 유난히 슬퍼 보인다.
쉬잔 발라동의 ‘버려진 인형’은 그림만으로 관계가 좋지 않은 모녀를 떠올린다. 목욕을 마친 딸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엄마에게 딸은 등을 돌리고 거울을 보며 앉아 있다. 거울 속 세계는 타인의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그녀만의 세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르누아르의 작품‘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춤’은 표면적으로 중산층 사람들의 무도회를 떠올린다. 그러나 작품의 무대인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 몽마르트에 있던 대중 댄스홀의 이름으로, 주로 근로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들의 현실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가 대부분으로 고단한 삶은 작품 속에서 불빛을 받으며 한껏 사랑하는 따뜻한 환상으로 보여진다.
“초라한 일상 속에 기억할 만한 좋은 순간이 단 몇 분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얼마 전 충주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지인 집에 초대받아 먹었던 진한 콩국수와 텃밭에서 수확한 신선한 샐러드, 직접 내린 커피 한잔의 시간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샤갈의 작품 ‘산책’ 은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잡고 여인은 무중력 상태처럼 하늘을 날고 있다. 오래전 한가람미술관 사걀전에서 본 작품들이 떠올랐다. 샤갈의 작품은 대부분 하늘을 날고 있다. 저자의 설명처럼 오래도록 좋아했던 여인과 결혼하여 충족감에 젖어 있던 샤갈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했겠지.
책의 서문에 적혀있는 “책과 더불어 풍요로운 혼자가 되는 의식을 치러보시길 기원합니다.” 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일상이 고단하고 단조로운 느낌일 때 가까운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을 보거나, 문화예술 강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은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 문화원에서 금년도에 신규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두드림 문화아카데미’ 여덟 번째 강사로 이주은 교수가 7월 13일(수)에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를 주제로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