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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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집에서 따뜻한 차 한 잔 옆에 두고 책 읽는 시간이 좋다. 오늘은 친정엄마가 볶아준 돼지감자 세 알을 뜨거운 물에 넣은 국산차다. 추운 겨울에는 차 소리,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함박 눈 내린 날의 묵직한 가라앉음이다. 모두 잠들어있는 한밤의 고요는 내게 또 다른 세상이다.   

 

정혜신 정신과 의사의 책 '당신이 옳다(해냄출판사)' 를 읽는데 울림을 주는 구절에 울컥했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작은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일때 담임샘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친구에게 맞아 아파한다고 병원에 가봐야 할것 같다고...온순한 아이고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 맞을 짓도, 싸울 일도 없던 아이였다. 그 순간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7월이었다. 나는 아이를 위로했다. 지금 생각하니 오버할 행동을 많이 했지만,  아이는 그때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꼈다.  

 

요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인기다. 상위 0.1%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를 무대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몸부림하는 부모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진 영재, 부모의 일그러진 교육열에 도벽을 일삼는 예빈 등 민낯도 보여준다. "엄마는 내가 왜 과자를 훔치는지 물어보지 않아" 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예빈의 모습에 먹먹해진다. 도벽이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행동이라고 판단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따뜻한 엄마라면 아이가 왜 과자를 훔쳤을까 고민하고, 대화를 통해 진심으로 위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공감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30년간 경험한 정신과 의사의 시선으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등을 치유한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공감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우리 아이가 재수할 때 수시로 해주었던 '엄마는 너를 믿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가 큰 힘을 주었다는 말과 연결된다.    

 

살아가면서 친구나 지인에게 어설픈 충고를 한 적이 많다. 자신의 아픈 상처를 주저하며 말할때 공감하기 보다는 무언가 결론을 내주려고 조바심했다.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는 저자의 말에 내 충고에 상처 받았을 사람들의  원망 어린 눈길이 되돌아오는 듯하다. 그저 따뜻한 눈길, 부드러운 숨길로 감싸주면 되는데.

 

책에는 기억하면 좋을 보석 같은 구절이 참 많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어째서 우울증인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의 불안과 공포가 왜 우울증인가. 은퇴 후의 무력감과 짜증, 피해 의식 등이 어떻게 우울증인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의 우울과 불안을 뇌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이 초래한 우울증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들은 비정하고 무책임하다. 흔하게 마주하는 삶의 일상적 숙제들이고 서로 도우면서 넘어서야 하는 우리 삶의 고비들이다."

 

조금은 험난한 삶의 일상적 숙제들을 서로 도우면서 풀어가는 용기,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아파하며 집중해서 들어주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이제는 주변사람이 나에게 힘들다고 손을 내밀면 묵직한 목소리로 '네가 옳다!'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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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2-18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잘 지내고 계시죠?
아이에게 공감보다는 ‘충조평판‘ 하는 것이 마치 부모의 역할인양 착각할때가 많아요. 역할 빙자하여 특권처럼 누리고 누군가를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거죠.
‘네가 옳아‘라고,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또 저 자신에게도 가끔 토닥여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실 2018-12-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답글을 바로 달았다 생각했는데...이런
hnine님 잘 지내시지요. 저는 잘 있답니다^^
저도 충조평판...잘 해요. 마치 모든걸 아는것처럼...
그저 들어주면 되는데.
진심으로 공감하는 법을 알려주어 특히 좋았어요.

카알벨루치 2018-12-24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메리크리스마스 하십시오 ^^

세실 2018-12-28 13:57   좋아요 1 | URL
어머 이제 연말이 되었어요^^
새해 복 듬뿍 받으세요~~~ 내년엔 알라딘에 자주 들어오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9-01-07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어느 정도 읽으니깐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 다른 책으로 넘어갔는데 다시 잡고 끝까지 읽을 책입니다. 저의 뇌를 새롭게 스캔해 준 책으로 뽑습니다.

세실 2019-01-10 11:19   좋아요 0 | URL
그쵸? 이 책 읽고나니 제대로 공감하기가 어떤건지 알겠더라구요. 가끔 우리 직원들이 제가 영혼없는 대답한다고 하거든요. 심드렁하게..... 사람 마음알기는 힘들지만, 진심은 통하네요~~~

2019-01-07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0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