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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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난생처음으로, 오랫동안 동경해 왔던 미시시피 강을 보았다. 여른 안개 속의 미시시피 강은 가물어서 수위가 낮았고 지독한 냄새가 났다. 미시시피 강은 미국의 몸을 씻어 내리는 강이니, 이건 아마도 미국의 벗은 몸 냄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29쪽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읽어 봤어? 헤밍웨이 작품 중 최고야."-96쪽

맙소사, 집에서 5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대체 여긴 왜 온 거야? 중국으로 가는 느린 보트(*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뜻하는 관용구)는 어디 있지?-124쪽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딘이 경고하듯 말했다. "평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겠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알겠어, 이 친구야?"-199쪽

차를 몰고 떠날 때, 벌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ㅡ너무도 거대한 세계가 우리에게 덮쳐 오는, 그것이 이별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하늘 아래 펼쳐질 또 다른 광기 어린 모험을 향해 돌진한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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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 - 이문열 중단편전집 6 (양장본)
이문열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은 터라 때아닌 이문열 전작주의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주변에서 요즘 어떤 책이 재미있냐 물어와서 <황제를 위하여>를 강력 추천해 주면
하나같이 "이문열은 싫어" 라는 답변이다.
아무리 편견을 없대고 '작가' 말고 '소설' 자체만 보라고 해도 막무가내.
그렇다면, 내가 더 많이 읽고 더 근거 있는 추천을 해주리라, 하던 차에 마침 용산 뿌리서점에서 발견한 거지요 이 책을.

총 6개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최고는 <김씨의 개인전>과 <하늘 길>.

<김씨의 개인전>은 유명 조각가 밑에서 조수 겸 잡역부로 일하던 환갑 다 된 김씨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자기 자신의 개인전을 준비한다는 내용인데, 이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반응이 허, 참.
결국 김씨가 데뷔전에서 선보인 것은.... ! (요 부분이 재미의 7할을 차지하니 비공개)

<하늘 길>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읽는 동화"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가난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너무나도 가난해서 일가족이 다 죽고 홀로 살아남은 한 청년이
왜 가난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기 위해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 주요 축이다.
걷고 걷고 또 걷다, 머리 둘 달린 괴물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던 아가씨를 구해 주고
50년 동안 책 속에서 하늘 길을 찾던 노인과
밤낮으로 취해 하늘을 땅으로 불러내린다는 착각 속에 사는 예술인 집단과
바위 위에 꿈쩍 않고 앉은 채로 마음만 하늘 문을 간신히 기웃거리는 도사와
여의주를 2개나 가지고 하늘로 치솟아보지만 매번 실패하는 이무기를 만나며
점차 하늘 길에 가까워지는데....!
뭐, 애초에 부제가 '동화'였으니 당연히 옥황상제를 만나서 궁금했던 거 다~ 물어보고
처음 만났던 아가씨랑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부자도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약간 뜬금없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반전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100% 동화는 아닌 것이고.

하지만 위의 두 작품 외엔 쏘쏘.
나는 이문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인데
저번에 읽은 장편 <선택>이나
이 중단편집에도 실린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같은 건 내 스타일 아니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이문열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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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 - 이문열 중단편전집 6 (양장본)
이문열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10월
구판절판


옛 글에 이르기를 산은 그 높음으로 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신선이 살면 이름을 얻고, 물은 깊어 칭송 받는 것이 아니라 용이 살면 신령해진다 했다.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中-155쪽

결혼은 사랑을 실용으로 바꾸는 절차다.

<前夜,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中-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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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못난 점은 최대한 숨기고, 조금이라도 잘난척 할 만한 일이 생기면 자랑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예를 들면, 수학 18점 맞은 건 입 꽁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도 영어 96점 맞은 건 "어떡해, 아는 건데 하나 틀렸어."라고 울상짓기 같은 것.
남자친구가 반지를 사주면 일부러 입 탕탕 두드려가면서 하품하는 것. (이것도 20대 중반 이후론 뚝 끊긴 일... ㅠㅠ)
좋은 물건은 일부러 책상에 올려놓고 타인의 질문을 유도해 "이거 어디서 샀어?"라고 물으면 "뉴욕에서" 라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말하기 같은 것.
그러니까,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똑똑하고(?) 예쁘고(??) 센스 있는 거(???) 몰라줄까 봐 안달이 나는 거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옷을 찢고 튀어나오듯이 잘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두각을 나타내는 법이건만,
내가 가진 지식과 인성의 송곳은 너무나도 무디어서 내가 직접 꺼내서 휘둘러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
다시 말하자면, 나는 그르넬가 7번지의 고급 아파트에서 27년째 수위로 일하고 있는 쉰네 살의 르네 아주머니와는
인간 판형 자체가 다른 부류다. 아, 모닥불에 얼굴을 묻은 심정. 화끈화끈.

르네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위 아줌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꽤나 많은 노력을 한다.
이를테면 "<전쟁과 평화>는 역사의 결정론적 관점을 소설화한 것이죠" 라고 말하는 대신에
"쓰레기 창고의 문 경첩에 기름을 치는 게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훌륭한 위장술을 구사하는데,
덕분에 자신의 소중한 18평짜리 방에서 혼자만의 지적 유희를 즐길 자유를 얻는다.
그곳에서 르네는 비디오로 고전영화를 감상하고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다.
심지어 그녀의 고양이 이름은 레옹 톨스토이의 이름을 따서 '레옹'이다.
지식은 충만하고 취미는 고상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2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 어느 누구도 르네의 우아함을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 이사 온 일본인 부호 오즈 씨와 참으로 안나 카레니나적인 운명의 만남을 갖는 르네!
그 집의 전주인에 대해 얘길하면서 르네가 화제를 돌리려 "아시다시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죠"라고 중얼거리는데
오즈 씨가 곧바로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불행한 이유가 다양하지요."라고 맞받아치는 그 순간!
둘 사이에 전류가 찌르르 흐른다!!!
이 대화는 바로 <안나 카레니나>의 첫부분이었던 것! (아, 빨리 제대로 읽어봐야지.)
게다가 오즈의 고양이는 '키티'와 '레빈'!!!
이쯤 되면 '레옹'과 절친 되기는 식은죽 먹기!

그렇게 드디어 르네의 알 껍질이 벗겨지고 오즈와 르네는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우정을 나눴...... 으면 좋았으련만... 
아, 예측하지 못했던 결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러나 시간은 가도 사람은 남는 것.
르네의 우아함, 그러니까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혼자서 조용히 생각할 공간을 찾기 위해 수위실로 찾아들었던 분홍안경테 소녀 팔로마,
호두를 먹을 땐 식탁보를 깔고, 아몬드를 넣은 튈과 마들렌, 튀김과자의 일종인 페드논을 귀부인스럽게 먹을 줄 알았던 파출부 마누엘라,
암으로 기력을 잃어가면서도 마지막 순간 르네와 함께 극장 데이트를 했던 소박한 낭만쟁이 남편뤼시앵,
르네와 쌍둥이인 양 취향을 공유하고, 그녀의 트라우마까지 감싸주었던 엣지있는(?) 일본신사 오즈,
그리고 마약으로 야위어가는 영혼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르네가 안뜰에 심어놓은 동백꽃 덕분에 기적처럼 살아난 장 아르텡스....

거 봐, 낭중지추라니깐.
숨길 수가 없는 우아함이란. 

 

+++
2009년에 읽은 책 중 베스트5 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하다.
별을 5개 밖에 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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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구판절판


식욕을 모르는 자에게 최초의 극심한 허기는 고통인 동시에 개명이다.-54쪽

"아시다시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죠."
나는 화제를 돌리려 중얼거렸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불행한 이유가 다양하지요."
그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데, 나는 또다시 불쑥 소스라쳤다.-184쪽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불행한 이유가 다양하다.'
이것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나는 모든 평범한 수위처럼 이것을 몰라야 했다. 우연히 문장의 두 번째 구절이 내가 말한 첫 부분과 연결되었을 때, 그것이 톨스토이의 문장임을 몰랐더라면 마치 은총의 순간처럼 소스라치게 놀랄 일도 없었을 것이다.-186쪽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닫이문보다 추한 것은 없다. 방의 안쪽에서 보면 여닫이문은 공간의 통일성을 깨는 일종의 단절이다. 반대로 바깥쪽에서 보면 여닫이분은 온전히 벽이어야 할 부분에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함몰된 커다란 균열이다. 즉 여닫이문은 들락날락한다는 기능-이것은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외에는 다른 보상 없이 방이라는 공간을 어지럽힌다.-210쪽

생에는 많은 절망이 있지만, 또 다른 종류의 시간인 아름다움의 몇몇 순간도 있다. 마치 음악의 한 소절이 시간 속에 일종의 괄호와 정지를 만들듯, 바로 여기 속의 다른 곳,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만들듯.
그래, 바로 그거다. '다시는' 속에 있는 '언제나'.-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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