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을 모르는 자에게 최초의 극심한 허기는 고통인 동시에 개명이다.-54쪽
"아시다시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죠." 나는 화제를 돌리려 중얼거렸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불행한 이유가 다양하지요." 그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데, 나는 또다시 불쑥 소스라쳤다.-184쪽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불행한 이유가 다양하다.' 이것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나는 모든 평범한 수위처럼 이것을 몰라야 했다. 우연히 문장의 두 번째 구절이 내가 말한 첫 부분과 연결되었을 때, 그것이 톨스토이의 문장임을 몰랐더라면 마치 은총의 순간처럼 소스라치게 놀랄 일도 없었을 것이다.-186쪽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닫이문보다 추한 것은 없다. 방의 안쪽에서 보면 여닫이문은 공간의 통일성을 깨는 일종의 단절이다. 반대로 바깥쪽에서 보면 여닫이분은 온전히 벽이어야 할 부분에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함몰된 커다란 균열이다. 즉 여닫이문은 들락날락한다는 기능-이것은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외에는 다른 보상 없이 방이라는 공간을 어지럽힌다.-210쪽
생에는 많은 절망이 있지만, 또 다른 종류의 시간인 아름다움의 몇몇 순간도 있다. 마치 음악의 한 소절이 시간 속에 일종의 괄호와 정지를 만들듯, 바로 여기 속의 다른 곳,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만들듯. 그래, 바로 그거다. '다시는' 속에 있는 '언제나'.-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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