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구판절판


집을 떠나 있을 때 그리워지는 게 뭔지 생각해 보면 재미있지 않나요. 나는 커피 향하고...... 아침에 맡는 베이컨 굽는 냄새가 그립다오.-15쪽

"있잖아요, 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요. 만약 누가 루스를 해치려 한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죽여 버릴 거예요."
"오, 이지, 말만 들어도 끔찍해."
"아뇨, 그렇지 않아요. 증오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사랑 떄문에 죽이는 편이 낫지 않아요?"-119쪽

늘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루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지가 환하게 웃으며 벌꿀이 든 병을 건네주려 했을 때, 그토록 억제하려 했던 감정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이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안 것도 바로 그때였다.-121쪽

뉴욕 발 뉴올리언스 행 7시 40분 실버 크레센트 호가 딱 저녁 먹을 시간에 지나갔는데, 아, 에벌린도 그걸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빳빳하게 풀을 먹인 흰색 재킷 차림에 검정 가죽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웨이터들, 고급 은 식기들과 은제 커피포트 그리고 테이블마다 아기의 숨결을 지닌 싱싱한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었죠. 또 갓이 씌워진 작은 램프도 놓여 있었고요.
물론 그 시절 여자들은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다녔어요. 모자에 모피까지 말이죠. 푸른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아주 근사해 보였답니다. 실버 크레센트 호에는 창문마다 작고 귀여운 블라인드까지 설치되어 있었어요. 마치 레스토랑에 앉아서 밤을 달리는 것 같았죠. 나는 클레오에게 말하곤 했어요. 먹는 일과 어디론가 떠나는 일을 동시에 한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인 것 같다고 말이에요.-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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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절판


언젠가 아버지는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고.-11쪽

"네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을 담은 사진이 있다고 상상해 봐. 첫 아이, 결혼, 가족의 죽음, 첫 직장, 자동차 사고, 아팠을 때, 경쟁에서 승리한 날 밤, 시합에서 졌을 때, 그 밖의 이런저런 일들...... 그 사진들을 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생각해 봐. 사진의 무게는 사건의 중요도에 따라 더 가볍게 느껴질 수도, 더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어. 사진이 무거울수록 엄청난 사건인 거지. 세월이 흐르다 보면 몇몇 사진은 너무 가벼워져서 자신이 그것을 더 이상 꺼내 보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된단다. 그런 사진들은 결국 네 호주머니 밖으로 떨어져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지. 하지만 수많은 사진 가운데 어느 한 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거워져서 절대로 잃어버릴 일이 없을 거다. 그 사진은 늘 네 호주머니 속에 남아 점점 무게가 늘어 가지. 급기야 너는 그 사진만 생각하면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거야, 그렇게 떨어진 심장은 결코 다시 주워 올릴 수 없을 거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31쪽

너는 사진을 모두 잃어버리게 돼. 사진들은 점점 무게를 잃어 공기처럼 변하지. 네가 품었던 꿈이나 머릿속에 그렸던 장소처럼 헛된 것이 돼 버리는 거야. 하지만 가장 무거운 사진 한 장만은 끝까지 없어지지 않아. 나한테 그 사진은 타우토나란다."-32쪽

나는 늘 궁금했다. 왜 우리는 자신이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지 못하고,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니, 거의 어른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일까?-147쪽

영국 해안의 흰 절벽을 보자 아버지가 왜 절벽이 흰색인지 알려주었던 것이 기억났다. 수십 억 년 동안 쌓인 뼈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설명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골들이 해류에 휩쓸려 곳곳에 모이고, 파도에 의해 단단히 다져졌다. 세월에 압력이 더해져 백악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충분한 시간에 충분한 압력을 더하면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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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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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소설가지만 에세이를 쓸 때 더 대단해 보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매번 그의 책을 읽기 전에 간단한 오일 파스타라든가 미소된장국에 야채절임이라든가

오이치즈샌드위치라든가 하는 간단명료한 음식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은

나만 느끼는 건 아닐 거다. 하얀 식빵 사러 가야지.

 

그나저나 이번 에세이에서 하루키는 몇 명의 노르웨이인에게

뭉크의 <멜랑콜리>에 나오는 그림 속 주인공의 얼굴과

아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고백을 했는데, 구글에 검색해보니 어머 대박!

 

 

 

 이럴 땐 전생을 믿어야 하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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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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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 '사랑은 가도 친절은 남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도 아주 멋있죠.-23쪽

여행작가이자 소설가인 폴 서루가 버스와 열차와 배를 갈아타며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반년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한 여행기 <아프리카 방랑>은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책으로, "이야, 잘도 이런!"하고 감탄하면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나도 지금까지 꽤 위험한 여행을 해왔지만, 그런 여행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52쪽

여행을 수없이 하다보면 약간의 철학이 생겨나는데, '편리한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불편해진다'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75쪽

일본 드라마라면 여름 신에서 반드시 계절을 나타내는 매미 소리가 들리지만, 해외에 수출하는 경우는 그 매미 소리를 지운다고 한다. 매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텔레비전이 고장났는가 오해해서 문제가 생긴다고.
이솝우화 중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있다. 그건 원래 '개미와 매미' 이야기였다. 그리스에는 매미가 서식하므로 이솝은 아주 자연스럽게 매미를 등장시켰다. 그런데 그러면 북유럽 사람들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매미를 베짱이로 바꿔버렸다.-100쪽

나이 먹는 것을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뭔가 좀 건방진 소리 같지만.-115쪽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라는 T.S.엘리엇의 유명한 시가 있는데, 아시는지?
'그건 단순히 휴일의 시간 때우기가 아닙니다'라고 이어진다. 그 시에서 엘리엇 씨는 고양이는 세 개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개는 평소 부르는 간단한 이름. 이를테면 '나비'라든가. 또 하나는 평소 사용하지는 않아도 하나쯤은 가져야 할 생색용으로 고양이다운 점잖은 이름. 이를테면 음, '흑진주'라든가 '물망초'라든가. 그리고 또 하나는 고양이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 이름. 그것은 절대 남에게 발설되는 일이 없다.
시인은 참 여러 가지로 세심하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러느 그렇게까지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면 고양이에게 이름을 짓는 것은 거의 일대 사업이 돼버린다.-164쪽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가능성의 저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저축의 온기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때로 우리의 춥디추운 인생을 서서히 훈훈하게 해준다.-191쪽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요전에 무역풍에 기분 좋게 흔들리는 야자수를 멍하니 바라보던 중에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그렇게 대단한 명제도 아니지만, 자기 머리로 어떤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아르키메데스나 뉴턴의 기분을 알겠다, 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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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더 월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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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역시 지극히 미국적인 소설.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은 언제나, '언제나'라고 해봐야 빅픽처, 템테이션, 행복의 추구가

내가 읽은 그의 소설의 전부지만, 하여튼 언제나 미국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고,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 역시 그의 신작이 나올 떄마다 귀가 쫑긋하는 걸 보면

그의 소설엔 '미국적'인 것을 넘어선 무언가 '우주적'인 감정이 잠재되어 있는 듯.

 

리빙 더 월드의 주인공은

부조리하고 부당하고,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미국여자다.

맨날 엄마랑 싸우기만 하던 아빠는 주인공이 열세 살 생일에 레스토랑에서 내뱉은

"난 절대로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을 거예요"란 말에 그 다음날 바로 영영 가출을 하고

그럭저럭 공부는 어지간히 해서 하버드 박사과정에 다니지만

바보같이 지도교수인 유부남이랑 사랑에 빠지고

자기는 처신 잘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둘의 불륜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사기꾼인 아버지를 사기꾼인지도 모르고 도우려다 직장에서 짤리고

누가 봐도 사기인 게 뻔한 애인의 꼬임에 넘어가 재산을 탕진하고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까지 땄으면서도 결국은 시골 도서관 직원으로 일하면서 살짝 안정을 찾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유괴 살인 사건에 대책없이 뛰어든다.

하지만 결국은 호수를 바라보며 캄 다운, 캄 다운. (어머, 나 스포일러?)

 

뭐야 이 바보같은 여자는! 이라고 내뱉으면서 이 미국여자의 이야기를

비행기로 열몇시간이나 떨어진 한국의 내가 책장을 꾸겨가며 열심히 읽고 있다.

그녀의 바보 같은 인생을 보듬어주고 싶고, 국제전화를 걸어 위로해주고 싶다.

'공감'은 우주적인 감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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